지난 1일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기업 3개가 현대오토에버로 통합돼 새롭게 출범했다. SI(시스템통합) 업체인 현대오토에버에 내비게이션을 개발해온 현대엠엔소프트, 차량용 반도체 설계 사업을 해온 현대오트론이 흡수합병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관련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3개사를 통합하면서, 현대차 ICT 본부장이던 서정식 전무를 대표(부사장)로 임명했다. 업계에선 그의 ‘고속 승진’이 화제가 됐다. KT 출신인 그를 2018년 현대차가 정보기술본부장(상무)으로 영입한 지 1년도 안 돼 전무로 승진시켰는데 다시 2년 반 만에 대표이사로 발령낸 것이다.

서정식 현대오토에버 신임 대표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과거 IT는 비용 절감을 위한 ‘적기 도입’이 대세였지만 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지금은 ‘선제적 도입’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게티이미지

현대차그룹 내 ‘최고 IT 전문가’로 신임을 받고 있는 서 대표는 의외로 ‘문과' 출신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 MBA를 졸업했다. IT 분야에 발을 들인 건 1995~2003년 컨설팅회사 아서디리틀에서 통신을 담당하면서부터였다. 2003년 KT의 전신인 하나로통신에 입사한 뒤 15년간 KT에 몸담았다. 2010년 클라우드추진본부장을 맡아 KT에서 국내 최초의 클라우드를 도입한 주역으로 주목받았고, 2014~2018년 KT클라우드웨어 대표를 지냈다.

서 대표가 처음 현대차에 왔을 땐 사내에서 노트북도 안 쓰고 데스크톱만 쓸 정도로 IT문화가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변화가 줄을 이었다. 그가 현대차에 SAP·서비스나우 같은 클라우드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면서 2년 만에 임원의 50%도 재택근무 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정의선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도 이제 화상회의가 기본이 됐다. 소프트웨어도 클라우드에 접속해 필요한 만큼 구독해 쓰는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내 소통프로그램인 ‘팀즈’를 도입해 올 연말이면 현대차그룹 절반이 쓰게 된다. 현대차 자동차 주행시험과 같은 신차 개발을 위한 빅데이터 연구용 수퍼컴퓨터도 ‘리스케일’이라는 클라우드 컴퓨터를 활용한다. 서 대표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선제적으로 클라우드 시스템을 도입한 게 ‘신의 한 수’였다”며 “이후 화상회의나 재택근무 등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IT는 비용절감을 위한 ‘적기 도입’이 대세였지만 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지금은 ‘선제적 도입’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이제 현대차뿐 아니라 현대차그룹 전체의 디지털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 자리를 맡았다. 현대오토에버의 합병이 완료된 지난 1일 그는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2021년을 미래 성장의 중요한 기점으로 삼고, 만반의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자동차는 이제 다양한 사물·사람과 연결된 첨단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고 자동차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점점 더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면서 “현대오토에버가 ‘모빌리티 소프트웨어’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이를 위해 인재들이 몰려드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능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며 “각자의 전문성이 상호 존중받는, 디지털 인재들이 모여드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합리적인 성과 보상과 처우 등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달 중순 관련 설명회를 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신사업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그는 “첨단 소프트웨어, 스마트 팩토리와 모빌리티 관련 소프트웨어 등 신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하기 위해 자체 연구개발뿐 아니라 M&A(인수·합병) 등 개방적인 초(超)협업으로 변화의 속도를 끌어올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