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차 코나 전기차가 잇따른 화재로 대규모 리콜 조치된데 이어 지난 9일 서울 한 아파트에서 미국의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 모델X 충돌·화재로 차량 소유주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년은 유럽의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원년으로 완성차 업계가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한 해다. 전기차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전기차, 믿고 탈 수 있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전기차의 화재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다.
◇화재 빈도는 낮지만… 한번 불나면 더 위험할 수도
전문가들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화재 빈도를 비교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판매량이 전체 자동차 시장의 2%에 불과해 유의미하게 누적된 통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테슬라는 테슬라의 화재 빈도가 일반 차 평균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2012~2019년 미국 전체 자동차 화재는 주행거리 1900만 마일당 1건 발생했는데, 테슬라는 1억7500만 마일당 1건 발생했다는 것. 그러나 이 통계에는 차량 결함뿐 아니라 방화 등 외부 요인에 의한 것도 모두 포함돼 있어 단순 비교는 무리다. 특히 전기차 화재는 거의 대부분 배터리에서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배터리에서 불이 나면 내연기관차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의 핵심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열과 충격에 취약하다. 리튬이온은 양극에서 음극으로 가면서 전기를 충전시키는데 이때 열이 발생한다. 그런데 리튬이온이 녹아있는 전해질은 불이 잘 붙는다. 열을 잘 식혀주지 못하거나 충격이 발생해 공기 중에 노출되거나, 내부 분리막 손상으로 음극과 양극이 만나 단락 현상이 발생하면 화재와 폭발로 이어진다. 갑작스럽게 발열이 가속되는 ‘열폭주’ 현상이다. 열폭주는 주변 배터리 온도까지 급상승시키며 연쇄 확산된다. 테슬라를 비롯한 미래형 전기차는 배터리가 차량 하부에 넓게 깔려 있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반면 내연기관차는 대형 충돌이 아니라면, 주로 고온의 엔진룸에서 누유나 합선 등이 원인이 돼 화재가 발생한다. 불이 나더라도 강철로 된 엔진박스까지 태워 대형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불길이 확산되기 전 탈출 또는 구조 시간이 상대적으로 확보되는 편이다.
현대차 코나EV는 국내외에서 14건의 화재가 보고됐다. 특히 충돌한 것도 아닌데 충전 중 또는 충전 이후 주차 중 화재가 발생해 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원인은 두 가지로 추정된다. 배터리 셀의 불량 또는 배터리를 한계치에 가깝게 충전을 반복하게 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소프트웨어) 문제다. 코나EV는 한계치의 97%를 충전하도록 설정돼 있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인데,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발열 등 문제가 감지되면 충전을 정지시키는 리콜을 시행한 후 화재 사고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과충전을 반복시키는 실험에서도 불이 나지 않고 있어 과충전 문제가 화재 원인이라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부 배터리 셀 불량과 과충전 문제가 결합돼 발생한 화재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최신 배터리는 절연재에 세라믹 코팅을 해 분리막이 고온에 손상되는 걸 최소화한다”며 “코나EV 배터리는 이 코팅이 안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코나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를 개조한 것이라 배터리가 뒷좌석과 트렁크쪽에 분산 배치돼 있다. 충돌로 배터리가 직접 충격받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테슬라보다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못 사겠다 VS 지나친 우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전기차에 지나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배터리 화재가 쉽게 발생하지는 않는 데다 용산 사고의 경우 테슬라의 전동식 손잡이 때문에 피해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 모델X는 문에 손잡이가 없고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전자식으로 화재로 전기가 끊겨 밖에서는 열 수 없었다. 구조가 늦어진 이유다. 현대차 넥쏘 등 손잡이가 매립돼 있는 대다수 차는 충돌 사고가 나면 잠금장치가 풀리고 손잡이가 튀어나오도록 설계돼 있다.
배터리 화재 가능성 역시 배터리 업체나 완성차 업체의 ‘방화 시스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테슬라의 배터리 셀은 파나소닉이 공급하지만 그 셀을 감싸는 ‘팩’은 테슬라가 설계한다. 테슬라는 이 팩의 무게를 줄임으로써 주행거리를 높여왔는데 이 때문에 팩 자체가 충돌이나 화재에 취약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차를 만드는 입장에선 절대 불이 나지 않도록 이중 삼중 장치를 마련한다”며 “배터리를 초고장력 강판으로 둘러싸고 구조적으로도 배터리에 가해지는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설계한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향후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면 충돌 위험이 크게 줄어들고 전고체 배터리가 개발되면 화재 위험도 확 낮아질 것”이라며 “과도기인 현시점에선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대한 안전 시스템을 더 확실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