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7위까지 밀려났던 한국 자동차 생산량이 올해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4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15년까지 5위였던 한국은 2016년 인도에 밀려 6위, 2018년 멕시코에 밀려 7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 공장이 셧다운을 반복한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방역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1~8월 생산량(220만대)이 멕시코(186만대)와 인도(176만대)를 제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4위인 독일 생산량이 최종 집계되지 않았지만, 잘만 하면 사상 최초로 전통 자동차 강국 독일마저 제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최근 주요 완성차 업체 노조들은 ‘파업 압박’을 반복하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카마겟돈(carmageddon·자동차산업 대혼돈)’으로 불리는 산업 대전환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겹치면서 뼈를 깎는 생존 경쟁에 돌입했지만, 한국의 자동차 노조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업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GM ‘사실상 파업’… 기아차는 파업 준비
한국GM 노조는 파업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파업으로 사 측에 ‘생산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지난 22일 하루 잔업 1시간, 주말엔 특근 8시간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또 지난 23일에는 주간·야간 근무 시간 16시간 중 8시간을 근무하지 않았다. ‘퇴근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노조에 주어진 ‘조합원 총회’ 시간을 활용해 조기 퇴근을 한 것이다.
올해 한국GM이 코로나 사태로 입은 누적 생산 손실은 6만대에 달한다. 부품 조달 차질, 수요 급감 등으로 수시로 공장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접어들어 신차 트레일블레이저의 미국 수출 증가로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지만, 물이 들어오면서 한창 노를 저어야 할 시점에 노조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사 측은 이번 노조의 결정으로 1700대 이상의 추가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최근 파업권을 얻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 26일 중앙노동위에 조정 신청을 한 것이다. 중노위가 10일간 조정을 거쳐 ‘조정중지’ 결정을 내리면 노조는 파업권을 얻게 된다. 올해 온건 집행부로 바뀐 현대차는 지난달 ‘임금 동결’로 올해 임단협을 무분규 타결했지만, 기아차는 여전히 강성 노조가 주도하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12만원 인상, 영업이익 30% 성과급 배분, 정년 연장(60→65세), 통상임금 확대 적용, 전기차 핵심 부품 생산 등 사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노조는 기아차가 세타2 엔진 관련 1조원대 품질 비용이 발생해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에도 반발하고 있다. 회사 잘못으로 성과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회사의 경영상 발생한 이익과 손실은 임직원 전체가 공유하는 것인데 이런 걸 문제 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기아차는 적자도 아니어서 직원들에게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줄 여력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르노삼성 노조 역시 지난 16일 파업권을 확보한 뒤 협상을 끌고 있다. 르노삼성은 최근 판매량이 반 토막 나면서 두 달치(1만2000여대) 재고가 쌓여 있다. 이 때문에 지난 9~10월 10영업일간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다음 달엔 주간·야간 2교대를 주간 1교대로 전환하기로 했다. A조와 B조가 각각 일주일씩 일하고 일주일은 쉬는 구조로, 1교대 전환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부품사들은 피 말리는 위기를 겪으며 노조의 파업 압박에 따른 불안까지 가중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자동차 부품 상장사 84개의 영업이익은 111.3% 감소했고, 이 중 적자 기업은 절반이 넘는 49개에 달했다. 문승 한국GM 부품사협회장은 “코로나로 너무 어려웠던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는 그나마 반등하는 분위기라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노조가 이런 식으로 가면 정말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임러·닛산 2만명 감원… 생존 몸부림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수요 급감과 미래차 전환에 따른 필요 생산 인력 감소 흐름에 맞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지난해 “2022년까지 1만명을 감원하겠다”고 했던 다임러는 올 들어 2025년까지 1만명 추가 감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닛산은 올해 글로벌 생산 인력 2만명을 일시 해고했고, 르노그룹은 2022년까지 1만5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폴크스바겐 노사는 코로나 사태로 팽배해진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올해 임금을 동결했다. 2018년 2월에 맺었던 2년 2개월짜리 기존 협약을 올해 말까지 유효하도록 연장한 것이다. 도요타는 사 측이 연공서열 호봉제를 폐지하고, 차등적 임금인상제를 도입하기로 했음에도 노조가 이에 동의해 올해 임금 협상이 무분규 타결됐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전 세계 제조업 노사는 위기의식으로 똘똘 뭉치는 분위기지만, 파업 몽니를 부리는 노조는 한국, 그중에서도 사실상 자동차 업종이 유일하다”면서 “코로나 사태로 판이 흔들리는 현 위기는 어찌 보면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노조의 구태로 이런 기회를 놓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