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가 26일 임시대의원회의를 열어 쟁의대책을 논의하고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쟁의조정 신청은 파업을 위한 첫 번째 수순으로 약 열흘간 중노위의 조정 이후 조정 중지 결정이 내려지면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권을 얻게 된다. 앞서 기아차 노사는 지난 22일 진행한 9차 본교섭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채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사측에 일괄 제시안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실무 협상을 지속하자는 입장을 고수하며 교섭이 결렬됐다. 노조는 기본급 12만원 인상, 영업이익 30% 성과급 배분, 정년 연장(60세에서 65세), 전기차 핵심 부품 생산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노조는 지난 23일부터 특근과 잔업을 거부하며 실질적으로 ‘부분파업’과 비슷한 타격을 회사에 입히고 있다. 업계에선 ‘파업’이라는 형식은 피해갔지만, 실질적인 생산 차질을 야기하는 ‘사실상의 파업’을 벌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현재 하루 잔업 1시간씩, 주말엔 특근 8시간 정도 라인을 돌리지 않고 있다. 또 지난 23일에는 주간·야간 근무시간 16시간 중 8시간을 근무하지 않았다. 노조에 주어진 ‘조합원 총회’ 시간을 활용해 조기 퇴근을 하는 ‘퇴근 투쟁’을 한 것이다.
한국GM은 특히 트레일블레이저 신차 효과로 대 미국 수출이 크게 늘고 있지만, 잔업·특근 거부로 인한 생산 차질로 가뭄 속 단비처럼 찾아온 이번 기회가 반감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GM은 분기당 생산량이 지난 1분기 8만3000대, 2분기 7만6000대 수준이었지만 3분기 미국과 유럽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10만3000대로 크게 늘었다.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지난달 업계 관계자에게 “또다시 생산 차질이 빚어진다면, GM본사는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할 생각을 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이날 자료를 내고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노사갈등은 커녕 인력감축과 구조조정 등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치열하게 전개 중”이라며 “일부 완성차업체의 노사 갈등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업체에서 올해 파업은 1건도 없었고, 폴크스바겐은 코로나 위기를 고려해 노사 임단협 협약의 유효 기간을 연장했다. 도요타는 연공서열 호봉제를 폐지하고, 차등적 임금인상제를 도입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임금협상이 무분규 타결됐다.
닛산은 글로벌 공장에서 2만명 감축을 검토하고, 르노는 1만5000명을 감축하기로 하는 등 전세계 완성차업계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
노사 갈등으로 국내 부품업체의 어려움도 가중될 우려가 있다. 올해 상반기 자동차 부품업계는 84개 상장기업 영업이익이 111.3% 감소했고, 이중 적자 기업도 절반이 넘는 49개에 달했다.
정만기 협회장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미래차 전환을 위한 기존 구조조정 계획에 더해 코로나 위기로 인한 인력감축과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노사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내도 어려운 시기에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으로 압박하는 노조는 전세계에서 한국 자동차 노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특히 유동성 위기를 겪는 부품업체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며 “지금은 소집단 이기주의보다는 미국 시장 회복세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 위한 양보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