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해외로 돈을 보낼 때 증빙서류 없이 송금할 수 있는 한도가 대폭 늘어나고, 은행을 하나로 정해야 하는 불편도 사라진다.

기획재정부는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무증빙 해외송금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1999년 외국환거래법 제정 이후 26년간 유지돼온 ‘지정거래은행’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은행 환전소에서 여행객들이 환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은행·비은행 구분 없이 연 10만달러까지

현재는 해외로 돈을 보낼 때 증빙서류 없이 송금할 수 있는 한도가 은행과 비은행(소액해외송금업체, 증권사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은행을 통하면 연간 10만달러(약 1억4700만원)까지 가능하지만, 소액송금업체를 이용하면 업체당 연 5만달러(약 7340만원)로 제한된다.

내년부터는 이 한도가 통합된다. 은행이든 소액송금업체든 관계없이 모든 금융기관을 합쳐 연 10만달러까지 증빙 없이 송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은행에서 6만달러, B소액송금업체에서 4만달러를 보내는 식으로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다.

◇‘지정거래은행’ 제도 26년 만에 폐지

가장 큰 변화는 지정거래은행 제도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한 번에 5000달러(약 734만원)가 넘는 금액을 증빙 없이 보내려면 반드시 ‘지정거래은행’을 정해야 했다. 예를 들어 하나은행을 지정거래은행으로 정하면, 5000달러 이상은 하나은행을 통해서만 송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제약이 사라진다. 지정거래은행을 정할 필요 없이 여러 은행을 자유롭게 이용해 연 10만달러까지 보낼 수 있다. 유학생 학비나 생활비, 해외 직구 대금, 소규모 무역 대금 등을 보낼 때 훨씬 편리해진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소액송금업체를 이용할 때도 편의성이 크게 높아진다. 지금은 업체당 연 5만달러까지만 가능했지만, 내년부터는 여러 업체를 합쳐 연 10만달러까지 쓸 수 있다. 소액송금업체는 은행보다 수수료가 저렴하고 송금 시간도 짧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연간 10만달러 한도를 다 쓴 뒤에도 은행을 통해 건당 5000달러 이내 금액은 증빙 없이 보낼 수 있다. 다만 이런 소액 송금이 반복되면 외환 규제 회피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세청과 관세청에 관련 내역을 통보한다.

◇‘해외송금 통합모니터링시스템’ 내년 1월 가동

정부가 이처럼 대폭적인 개편을 추진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은행과 비은행을 통틀어 모든 금융기관의 무증빙 송금 내역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해외송금 통합모니터링시스템(ORIS)’을 개발했다.

현재는 은행과 비은행의 송금 내역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일부에서 여러 금융기관을 통해 분할 송금하는 방식으로 외환 규제를 피하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내년 1월부터 이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면 이런 편법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새 시스템 도입으로 외환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민들의 일상적인 해외송금 편의를 대폭 개선할 수 있게 됐다”며 “이번 달 입법예고와 행정예고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금융기관 간 고객 확보 경쟁이 심화돼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는 등 전반적인 해외송금 서비스의 질과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