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헌 신임 SK텔레콤 최고경영자(CEO)

30일 SK그룹 사장단 인사가 있었습니다. 보통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있던 그룹 사장단 인사인데, 올해는 한 달 정도 당겨졌습니다. 이날 인사에서 최대 관심은 SK텔레콤 CEO(최고경영자)였는데요. 결과적으로 현 유영상 대표이사가 사실상 경질되고, 정재헌 대외협력 담당 사장이 새 대표이사에 내정됐습니다. 올해 개인 정보 유출 사건 등으로 워낙 시끄러웠던 SK텔레콤이어서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대표이사 교체가 유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례적으로 법원에서 부장판사를 하다 2020년 기업으로 옮겨 온 정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에 선임된 겁니다. 그동안 공학을 전공하거나 회사 내부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온 인사들이 대표이사에 올랐는데 처음으로 법조 출신 인사가 CEO를 맡게 된 겁니다. 법조인 출신이 통신사 CEO를 맡으면서 그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정 사장이 위기에 빠진 SK텔레콤의 구원투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2021년부터 CEO로 일해온 통신 전문가 유 사장 대신 SK텔레콤 대외협력 담당 사장으로 일한 정 사장을 신임 CEO로 임명했습니다. 정 사장은 2000년부터 20년간 판사로 일했고, 2020년 4월 SK텔레콤 법무 부사장으로 영입됐습니다. 2023년 12월부터는 대외협력 담당 사장으로 일해 왔습니다.

통신업계는 이번 인사를 지난 4월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태 이후 분위기 쇄신 차원의 인사라고 보고 있습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2700만명에 달하는 고객 정보가 유출되면서 SK텔레콤의 가입자 점유율 40%가 붕괴했다”면서 “여기에 5000억원에 달하는 고객 보상 프로그램, 해지 위약금 면제 조치까지 시행하면서 SK텔레콤의 실적이 급락하면서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해킹 사태를 겪으면서 법무 대응, 정보 보호 등의 분야에서 약점이 드러난 만큼 이를 강화하기 위해 정 사장을 CEO에 앉혔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정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에 내정된 것을 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과 연결 짓는 이들도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정 사장은 SK텔레콤 대외협력 담당 사장이면서 동시에 그룹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법무 총괄 격인 거버넌스위원장으로도 일해왔다”면서 “최 회장이 별도로 로펌을 고용해 이혼 소송을 진행해 왔지만, 회사 경영권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만큼 정 사장이 이혼 소송에 깊게 관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이혼 소송 대법원 상고심에서 최 회장이 사실상 승소한 점도 고려된 인사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또 다른 한편에선 SK그룹이 현 정부를 고려한 인사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 사장이 판사로 있을 때 이력 탓인데요. 사법연수원 29기 출신인 정 사장은 판사 재직 때 소위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법원행정처가 판사 뒷조사를 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 의혹을 조사하는 3차 조사단 조사위원 6명 중 한 명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이었던 정 사장은 대표적인 김명수 라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원 고위 인사들이 무더기 기소됐지만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정 사장은 법원을 그만두고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에 대해 SKT 관계자는 “이혼 소송과 법원 재직 당시 경력과 이번 인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SKT 입사 5년 동안 보여준 능력을 고려한 인사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SK텔레콤에는 해킹 사태 수습, AI(인공지능) 중심 사업 구조 전환, 통신 점유율 회복 등 각종 과제가 쌓여 있습니다. 결국 정 사장이 앞으로 어떤 경영 능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적재적소 인사’였는지 평가가 갈릴 것 같습니다. 정 신임 대표의 앞으로 경영 능력을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