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기. /로이터 뉴스1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한국을 22년 만에 앞지르게 됐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대만의 성장을 압도했다. 1인당 GDP를 보면, 한국은 2003년 대만을 추월한 후 일찌감치 2007년 ‘2만달러’, 2016년 ‘3만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대만보다 각각 4년, 5년이나 앞선다. 그런데 최근 전세가 뒤집혔고, 결국 대만이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4만달러’를 뚫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김의균

◇성장 동력 잃은 韓, 신성장 동력 찾은 대만

한국이 대만에 크게 뒤처진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첫손에 꼽는다. 한국은 2016년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돌파할 때까지는 반도체를 비롯해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라는 확실한 성장 엔진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새 먹거리를 찾지 못했다. 20년 전과 현재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을 비교하면 9개가 같다. 반도체를 빼면 자동차, 석유 제품 등 모두 1970~80년대 집중 육성했던 중화학 공업 제품들이다.

반면 대만은 반도체 부문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성장 엔진을 발굴했다. 대만은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손을 댔다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고, 파운드리(위탁생산)에 올인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나아갔는데 이 분야는 박리다매로 이겨야 하는 시장”이라고 했다. 이종환 상명대 교수는 “파운드리가 메모리 시장보다 2배 이상 크다”며 “삼성이 10여 년 전부터 파운드리에 투자했지만 격차를 못 줄였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대만, 한발 앞선 AI 지원

대만 정부가 반도체와 함께 인공지능(AI)을 일찌감치 ‘미래 핵심 산업’으로 지정해 전폭 지원을 해온 것도 한국을 제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이잉원 전 대만 총통은 “대만을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며 2016년부터 AI·반도체에 집중 투자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대만을 ‘AI 아일랜드(AI 섬)’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GDP의 1% 이상을 AI에 투자해 왔다. AI 스타트업에 세제 혜택을 주고, 대만 최대 반도체 기업인 TSMC와 협력해 AI 칩 생산 인프라를 대폭 늘렸다.

반면 한국은 이제야 ‘AI G3(주요 3국)’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정부는 최근 ‘초혁신경제’ 전략을 발표하며 AI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은 3조원에 불과하다. 중국(50조원)의 6%, 미국(30조원)의 10% 수준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교수는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대만은 한국처럼 공급망이나 노동 경직성에 영향을 크게 안 받는다”고 말했다.

젠슨 황·대만 IT 거물들 한자리에 지난 5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IT 전시회 ‘컴퓨텍스’에 참석한 IT업계 거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대만 팹리스 분야 1위 기업 미디어텍의 CEO 릭 차이,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 웨이저자 회장, 엔비디아의 회장인 대만 출신 미국인 젠슨 황, AI 서버 제조사인 콴타의 배리 람 창업자. /로이터 연합뉴스

◇인재 경쟁력 높인 대만

대만은 최근 스위스 IMD(국제경영대학원)의 ‘세계 인재 경쟁력 보고서’에서 인재 경쟁력이 17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37위), 중국(38위), 일본(40위) 등 아시아 제조업 중심국들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으로 아시아에서는 홍콩(4위), 싱가포르(7위)에 이어 3위다.

대만은 공대 열풍이 부는 중국처럼 우수 인재들이 반도체, AI 등의 분야를 가장 선호한다. 이런 직종에 근무할 경우 급여 수준도 높고 사회적으로 우대해주는 분위기도 확실하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다. 과학기술 분야 핵심 인재들은 기업이나 학계의 열악한 처우 등 문제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이공계 박사 학위 취득자 중 해외 체류 비율은 2020년 15.3%에서 작년 22.7%로 급증했다. 반면 대만은 같은 기간 8.5%에서 7.2%로 감소했다. 이종환 교수는 “우리나라는 반도체 학과를 만들어도 자퇴하고 의대로 가는 나라”라며 “AI로 가야 할 우수 인재가 해외와 의대로 유출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