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프런티어급(챗GPT·제미나이·딥시크 등) 생성형 AI(인공지능)를 만들려면 공공기관·공기업이 가진 고품질 데이터를 제한 없이 쓸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합니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를 창업한 김성훈 대표는 지난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AI 모델 개발을 위해선 무엇보다 공공 데이터 개방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언론에 자주 나서지 않는 김 대표는 이날 정부의 AI 정책에 대한 견해도 처음 밝혔다. 네이버에서 AI 개발을 총괄하던 그는 2020년 업스테이지를 창업해 자체 대형 언어 모델(LLM) ‘솔라’를 개발했다. 업스테이지는 최근 독립 AI 성능 분석 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가 발표한 세계 10대 프런티어 모델 개발사에 한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선정됐다.
김 대표는 “현재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세계 6위권”이라며 “미국·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공공 데이터 확보가 시급하다”고 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 좋은 교재를 활용해야 하는 것처럼 AI가 고품질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달라는 얘기다. 그는 “민감한 얘기지만 중국 업체들은 몰래 국내 데이터를 가져다 쓰면서 나중에 소송이 걸리면 그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라며 “법을 지켜가며 AI를 개발하는 우리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데이터 확보 싸움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공기업 정보, 각종 교과서 데이터 등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프런티어급 AI를 따라잡기 위한 골든타임은 길어야 2년 남았기 때문에 투자도 데이터 개방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지원 정책에 대해 조언도 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 지원을 보면 ‘형평성’이라는 논리가 적용됐다”며 “공무원들은 스타트업에 조금씩 고르게 돈을 주고 여러 업체를 육성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AI 개발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 예산 100억원을 1억원씩 나눠줄 게 아니라 유망한 스타트업 몇 개를 골라서 수십억 원씩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김 대표는 “정치·경제·외교·국방 등 모든 면에서 독자 AI가 없는 나라는 외국 기술에 종속돼 마치 반려동물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독자 AI 모델을 보유하지 못하면 한국은 지급할 수 있는 가장 비싼 돈을 주고 외국 AI를 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소버린 AI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AI 주도권’부터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양강(미·중)에 버금갈 수준의 AI 모델을 개발해야 AI 주도권도 쥐고 AI 주권도 지킬 수 있다. 1·2등과 현격하게 기술 차이가 나는 3등은 아무 의미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 정책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였다. 그는 “무엇을 해야 AI 3강에 들어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이 아직 비어 있는 것 같아서 기다려 보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대통령실에 AI미래기획수석 자리를 만든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7년부터 3년간 네이버에서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같은 팀에서 일하며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했다.
김 대표는 현 정부 출범 후 하 수석에 대한 추천서를 직접 작성해서 인사혁신처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 수석은 하이퍼클로바X를 세계 1위로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태도를 가진 열정이 있는 친구였다. 분명히 나라에서 일을 맡겨도 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며 “이번에는 정부가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인 문제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