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7일 경북 안동시 ‘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의 한 스마트팜에서 ‘에이팩’ 관계자가 재배 중인 대마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김연진

“대마 냄새 계속 맡다가 중독되는 건 아니겠죠?”

지난 6월 17일 경북 안동시 ‘산업용헴프(Hemp)규제자유특구’ 재배실증구역의 한 스마트팜에 들어서자 알싸한 대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를 내는 테르펜(terpene) 성분에는 마약 성분이 없기 때문에 중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멈췄던 숨을 들이마셨다. 특구에서 대마를 재배하는 업체 중 하나인 ‘에이팩’의 스마트팜에선 총 1000여개의 대마초가 자라고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에 따라 마약류로 분류되는 대마를 어떻게 키우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대마 하면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이라는 환각 성분이 있는 ‘마리화나’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여기서 재배되는 것은 THC가 0.3% 이하인 ‘헴프’로, 산업용·의료용으로 쓰이는 대마다. 헴프에 다량 함유된 ‘칸나비디올(CBD)’이라는 성분은 소아뇌전증 치료제를 비롯해 다양한 의약품의 원료가 된다.

마리화나와는 다른 의료용 대마 ‘헴프’

우리나라에는 아직 헴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마리화나와 헴프를 구분하는 추세다. 미국은 2018년 농업법을 개정해 대마를 헴프와 마리화나로 분류하고 헴프를 합법화했다. 또한 지난 5월 미국 법무부는 대마를 가장 높은 마약류 등급인 ‘스케줄1’에서 ‘스케줄3’로 낮추기 위한 규칙 제정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UN 산하 마약위원회는 2020년 60년 만에 대마초를 마약에서 제외했다. 일본도 지난해 말 환각 성분이 있는 대마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고 의료용 대마를 전면 합법화했다.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국내에서 의료용 대마(헴프)의 산업화는 막혀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의료용 대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7월 안동시가 헴프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헴프의 미수정 암꽃과 잎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재배, CBD 추출·제조·수출을 비롯해 헴프 관리에 대한 실증 특례를 받은 사업자의 대마 재배와 연구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현재 30개의 특구사업자가 참여하고 있다.

에이팩 관계자는 “스마트팜은 태양광, LED, LED와 에어컨(저온)으로 키우는 3동으로 나뉘는데 2달 반 정도를 키우면 꽃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수확한 대마 꽃은 이곳에서 약 35㎞ 떨어진 경북 안동시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의 연구소로 옮겨진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술출자회사인 ‘네오켄바이오’는 이곳에서 국내 유일의 마이크로웨이브 가공 기술을 이용해 헴프 잎과 꽃으로부터 CBD를 대량으로 추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CBD 성분 의약품 국산화를 노리는 네오켄바이오는 현재까지 25㎏의 CBD를 추출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안동에 헴프규제자유특구가 만들어지던 당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헴프가 “규제자유특구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린 아이템”이라며 적극적으로 밀어줬다고 한다. 현재까지 투입된 사업비는 국비 268억원을 포함해 약 469억원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이번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업계에선 의료용 대마에 대한 규제 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헴프규제자유특구는 약 5개월 뒤인 11월 30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지역특구법에 따라 이미 한 번 실증 특례 연장이 이뤄졌기 때문에 재연장은 불가하다. 임시허가를 받지 않으면 그동안의 연구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국 네오켄바이오 사장은 “2021년 창업 당시 헴프규제자유특구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서 “특구에만 들어오면 다 허용해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오히려 규제가 더 강화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임시허가에 방점을 두고 식약처와 세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마약류 관리 주무 부처인 식약처는 2022년 8월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 중 하나로 대마 성분 의약품 제조·수입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식약처는 ‘식약처 규제혁신 추진현황’에 신산업 지원 차원에서 올해 12월 31일까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명시했지만 실제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년 대비 마약사범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사회적으로 엄격한 관리가 요구되는 상황이 있어 대마의 활용 여부에 대하여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향후 사회상황, 오남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마 성분 의약품 한 병에 168만원

우리나라에선 2019년 3월부터 희귀·난치 질환자를 대상으로 소아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를 비롯해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경련 완화에 쓰는 ‘사티벡스’, 항암치료 후 구역 및 구토하는 환자에게 쓰는 ‘마리놀’과 ‘세사메트’ 등 의료용 대마 4종에 대한 사용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환자들은 대체 치료제가 없다는 전문의의 소견서를 바탕으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수입된 의료용 대마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가격으로 인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는 “참기름 100mL에 CBD 성분 10g을 녹이면 에피디올렉스가 되는데 한 병에 비급여 기준 168만원”이라며 “한 환자가 1년에 20병을 써야 하니 3600만원 넘게 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오켄바이오는 국산화를 통해 가격을 3분의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마약류관리법’부터 개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중균 한국대마산업협회장은 “마리화나와 헴프를 구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경북 안동시예천군)은 21대 국회에서 환각 성분인 THC 함유량이 0.3% 이하인 대마는 마약류에서 제외해 의료·산업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마약류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마리화나와 헴프의 구분 없이 모든 대마초의 종자, 뿌리 및 성숙한 대마 줄기를 제외한 대마초의 잎과 꽃은 마약류로 분류한다.

김 의원은 “헴프를 마약류에서 제외하면 의료용 대마의 산업화가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기조와 충돌하는 부분이 없을 것”이라며 “기존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외에도 ‘산업용 대마의 육성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민생 법안들이 해결된 후 7월 초 정도에 대마 관련 법안을 다시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의료용 대마 규제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에피디올렉스를 비롯한 대마 성분 의약품을 국내에서 못 쓰는 것도 아닌데 산업계에서 CBD를 추출해 의약품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건 미리 선점해서 돈 벌려는 것 아니냐”라며 “여기서 더 풀면 ‘마약 소굴’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CBD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 THC가 포함된 의약품에 대한 규제도 풀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한 번 무너진 둑은 절대로 다시 메우지 못한다”고 했다.

반면 박진실 마약 전문 변호사는 “제대로 검증해서 의학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면 산업적으로 키우는 것이 맞다”며 “의료용에 대한 규제를 풀면 오락용 대마까지 퍼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의학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제대로 못 가게 차단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수입해오는 대마 성분 의약품이 굉장히 비싼데 환자 가족들은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고통을 견디고 있다”며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고, 불법적으로 유통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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