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 지나갈게요.” 지난 6월 5일 서울 서초구의 보도 한복판에서 자율주행 로봇 업체 ‘뉴빌리티’가 만든 배달로봇 ‘뉴비’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로봇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자 로봇은 사람들을 피해 앞으로 나아갔다. 겉모습만 사람과 다른 형태일 뿐 횡단보도 앞에선 멈춰 서고 보행자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다. 혼자서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니는 로봇을 보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한 아이가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우와, 누가 조종하는 거지?”
자율주행 로봇이기 때문에 조종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관제센터에서 로봇의 운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그동안 자율주행 로봇은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제도를 통해 제한된 공간 내에서만 운행할 수 있었고, 현장 안전요원의 동행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과 11월 도로교통법과 지능형로봇법이 각각 개정·시행되면서 운행안전인증을 받고 보험에 가입한 로봇은 보행자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져 지역 제한 없이 보도 주행이 가능해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배달 로봇이 상용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보행자 지위 얻은 배달로봇
보행자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되면서 배달로봇 상업 서비스가 강남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시작됐다. 삼성물산은 뉴빌리티와 협업해 서울 서초구 래미안 리더스원 입주민을 대상으로 지난 6월 3일부터 실외 로봇 배송 서비스인 ‘딜리픽미’를 진행하고 있다. 입주민이 인근 상가의 식음료를 카카오톡 딜리픽미 채널을 통해 주문하면 배달로봇이 해당 입주민의 주거동 1층 출입문 앞까지 배달해 준다. 한식, 샐러드, 분식, 커피 등 인근 상가 8곳과 제휴를 맺어 최소 주문금액 제한 없이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뉴빌리티 관계자에 따르면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이틀간 총 25건의 배달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날 오후 래미안 리더스원을 찾은 기자가 직접 근처 가게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배달로봇의 뒤를 따라갔다.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를 한 번 건너야 하는 까다로운 경로였다. 오후 3시18분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주문하자 뉴비가 대기 장소에서 바로 출발했다.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넌 후 도로와 보도 사이의 턱을 무리 없이 올라갔다. 뉴비는 평균 3~4㎞/h로 주행하며 최대 속력은 5.76㎞/h다. 보도에 사람이 많을 때는 속도가 느려졌고, 사람이 없을 때는 울퉁불퉁한 보도를 빠르게 지나갔다. 가게에 도착한 뉴비는 직원이 음료를 가지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직원이 뉴비의 뚜껑을 열어 음료를 담고 뚜껑을 닫자 로봇은 다시 신나는 노래와 함께 아파트단지로 향했다.
만약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람이 로봇 앞을 막아선다면 어떨까? 기자가 뉴비 앞에 뛰어들자 로봇은 잠시 멈춰 서더니 기자를 빙 둘러 지나갔다. 주문부터 음료를 원하는 장소에서 받기까지 26분이 소요됐다. 아파트단지에서 가게는 도보로 왕복 14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가게 직원은 “배달 시간이 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괜찮았다”며 “사람이 많으면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기 때문에 상용화를 위해선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지에서 어떻게 빠르게 배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뉴빌리티는 오는 8월부터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인근과 서현동 일원에서 로봇 배달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뉴빌리티와 함께 국내 최초로 실외이동로봇 운행안전인증을 받은 기업 ‘로보티즈’도 자율주행 로봇 ‘개미’를 이용한 상업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로보티즈는 전국 1200개 점포를 운영 중인 커피 프랜차이즈 ‘커피에 반하다’와 지난 3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3분기부터 로봇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미를 순차적으로 최대 100대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로보티즈는 2019년 규제 샌드박스 1호 실증 특례로 선정돼 서울 강서구 마곡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해왔다. 규제가 풀린 뒤에는 자체 배달 플랫폼 ‘개미로봇배달’을 리뉴얼해 실증특례 없이 로봇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7일 서울 강서구의 로보티즈 배달 서비스 지역을 찾았다. 로보티즈 본사 앞에는 11대의 배달로봇 개미가 대기하고 있었다. 로보티즈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부터 이 지역에서의 누적 주문 건수는 300건을 넘어섰다. 하루에 약 10건 정도의 로봇 배달이 이뤄지는 것이다.
여러 대의 로봇이 배달 서비스를 수행하다 보니 보도 한가운데에서 두 로봇이 만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날도 한 건물 주차장 입구에서 마주친 두 로봇이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를 보내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배달로봇 서비스를 이용하는 한 가게 점주는 “회사원 입장에선 최소 주문금액이 없고 배달비가 무료라는 것이 로봇 배달의 장점이고, 가게 입장에선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만족하면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것”이라며 “지금은 최소 주문금액이 없다 보니 쿠팡이츠를 통한 주문보다 3배 정도 더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배민도 뛰어든 배달로봇 시장
우리나라에서 배달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자체 배달로봇 ‘딜리’를 통해 상용화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테헤란로 로봇거리 조성사업’에 투입된 딜리는 이 지역에서 배달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7월에 자체 배달로봇에 대한 운행안전인증을 받을 계획”이라며 “현재 개발한 모델과 동일한 기술력으로 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상용화 모델을 생산하려 개발 중이다”라고 밝혔다. 김대영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기술 발전과 상용화는 조금 다른 문제”라며 “시장에서 배달로봇에 대한 수요가 높아야 상용화도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배달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이 배달로봇 서비스를 확대하면 상용화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체들이 생각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배달로봇을 팔거나, 구독형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자체적인 배달플랫폼을 만들어 배달 주문당 수수료를 떼는 방식 등 3가지다. 자율주행 로봇 업체들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보다 B2B(기업 간 거래)에 중점을 두고 있다. 로보티즈 관계자는 “B2B는 90%, B2C는 10%로 생각하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500~1000대의 자율주행 로봇을 생산·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뉴빌리티 관계자는 “배달플랫폼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배달플랫폼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B2C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배달플랫폼에서 소비자들이 배달로봇 서비스에 효용성을 느껴야 시장이 커지고, 배달로봇 공급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것이란 진단이다.
해외에선 이미 로봇 배달 서비스가 상용화돼 있다. 미국은 2016년부터 실외 자율주행 로봇 운영을 위한 ‘PDDA(Personal Delivery Device Act)법’을 제정했다. 2017년부터는 배송로봇 관련 규제 철폐를 확대하고 실제 도보 주행 테스트를 본격화했다. 세계 최초의 식료품 배달로봇 제조업체 ‘스타십테크놀러지’를 배출한 에스토니아는 2017년 유럽연합(EU) 최초로 배달로봇이 자율주행으로 인도를 다니고, 센서와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2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 80개 지역에서 활동하는 스타십테크놀러지의 배달로봇은 2014년 설립된 이후 600만건 이상의 배달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관련 규제가 지난해 말 풀리다 보니 업계에선 “규제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배달로봇 발전이 5~7년 정도 늦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환경적으로도 해외에 비해 배달로봇이 도입되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도심지에 고층 건물이 많아 GPS와 같은 센서가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빌리티 관계자는 “미국은 보통 넓은 평지에서 운행하지만 우리나라는 도심지에 고층빌딩이 많다 보니 GPS가 방해를 받는다”며 “실외용 로봇이 돌아다니려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GPS를 받으면서 통신해야 하는데 고층빌딩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고층빌딩이 많다는 것은 실외용 로봇이 소비자의 현관문 앞까지는 배달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래미안 리더스원 아파트에서도 입주민들은 건물 1층으로 내려가 주문한 식음료를 받는다. 이에 대해 뉴빌리티 관계자는 “래미안 리더스원 아파트 1층 공동현관문이 자동문이었다면 통신 장비를 연동해 문을 열 수 있지만 수동문이 있어 팔이 없는 뉴비가 문을 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건물 안으로 못 들어가는 실외 로봇
공동현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는 문제가 있다. 카이스트 무인시스템 및 제어연구실의 한 연구원은 “사물인터넷(IoT)이 설치된 건물은 자동문과 엘리베이터를 로봇이 조작할 수 있지만 이런 인프라가 설치되지 않은 건물이 대부분”이라며 “실내에선 GPS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내 환경 위치추정을 위해선 각 건물에 대한 실내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배달 로봇을 신규 장소에 도입하려면 최소 하루에서 최대 일주일까지의 ‘경로 매핑(mapping)’ 과정이 필요하다. 해외에 비해 더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만큼 도심지에서 문제없이 움직이려면 학습 데이터를 많이 쌓아야 한다. 로보티즈 관계자는 “그동안 사유지나 실증특례 지역에서만 학습 데이터를 쌓았는데 규제가 풀렸으니 혼잡한 시내나 구도심 같은 곳에서도 잘 움직일 수 있도록 관련 데이터를 올해까지 충분히 쌓겠다”며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배달로봇이 상용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배달로봇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심현철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미국은 모든 도로를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해 놨는데 우리나라는 보도의 형태가 울퉁불퉁하고 볼라드(길말뚝)가 불규칙하게 박혀 있어서 배달로봇의 통행이 쉽지 않다”며 “해외는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집 앞에 가게와 편의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얼마나 사람을 편하게 하느냐’와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느냐’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며 “‘라스트마일’ 배달 수요가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로봇 배달이 활성화되면 배달 업계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배달비는 기존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배달앱 수수료를 내야 하는 점주들의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뉴빌리티 관계자는 “주요 배달앱에서 2만원짜리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비와 수수료까지 5000원 정도가 나가지만 배달로봇을 이용하면 카드 수수료만 나가기 때문에 점주들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라스트마일 배달을 로봇이 담당하면 라이더들은 아파트단지 내에서 쓰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며 “더 많은 배달을 수행하면 그만큼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