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품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구성품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걸 해낼 수 있는 기업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계 2위(출하량 기준) TV 제조사인 중국 하이센스의 데이비드 골드 미국법인장은 9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미국의 대중(對中) 기술 수출 규제가 어떤 영향을 주는가”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첨단 TV 제조에 필요한 각종 기초 부품부터 고성능 반도체까지 모두 ‘중국산’을 쓰는 기술 자립을 실현, 공급망 고립이라는 악재를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이날 하이센스는 자체 설계한 TV용 인공지능(AI) 반도체를 탑재한 110인치 초대형 TV 신제품을 공개했다. AI 반도체를 탑재하면서, 장면에 따라 자동으로 화면의 명암과 대비가 조절된다. 여기에 100인치가 넘는 큰 화면이 더해지면서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듯한 압도적 화질도 구현했다. 중국 화웨이가 지난해 자체 개발한 고성능 모바일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 신제품을 내놓은데 이어, 첨단 TV도 중국의 ‘기술 자립’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첨단 기술 따라잡은 중국
중국 테크 대기업들은 화려한 신기술들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중국 TV·가전 제조업체 TCL은 세계에서 가장 큰 115인치 ‘퀀텀닷 미니 LED TV’ 신제품과 차세대 증강현실(AR) 안경인 ‘레이네오 X2 라이트’ 등을 내놨다.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의 자회사 ‘샤오펑후이톈’은 페라리를 닮은 수퍼카에 8개의 프로펠러 모터가 달린 나는 콘셉트 카를 내놨다. 샤오펑 관계자는 “2030년 상용화가 목표”라고 밝혔다.
중국 PC 제조업체 레노버는 AI 기능 활용에 최적화된 고성능 노트북 신제품을 선보였다. 인텔의 최신 중앙처리장치(CPU)와 함께 AI 소프트웨어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자체 칩이 탑재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 키보드에 새롭게 추가한 AI 실행 버튼(코파일럿 키)도 적용했다. 이 키를 누르면 챗GPT를 활용한 MS의 AI챗봇 코파일럿 서비스가 바로 실행된다.
중국 스타트업들도 다양한 기술적 발전을 과시했다. 중국 전기 모빌리티 업체 호르윈(Horwin)은 운전자의 몸에 맞춰 자동으로 차량의 높이와 좌석의 기울기 등을 조정, 운전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미래형 오토바이 시제품을 선보였다. 중국 로봇업체 드리미는 날씨를 감지하는 센서를 이용해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세지면 스스로 충전소로 들어가 있다 날이 개면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AI 잔디깎이 로봇’을 선보였다.
◇”미국 시장 포기 못해”
중국 기업들은 CES에서 마케팅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한 TV 업체 관계자는 “중국 내수 시장만으로는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세계 최대 TV 시장인 미국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대한 많은 관람객과 대화하고 연락처를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다른 중국 업체 직원들도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붙잡고 말을 걸며 부스로 안내했다. CES로 돌아온 것이 결국 생존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일부 분야에서는 중국의 발전 속도가 눈에 뜨이게 느려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알리바바그룹은 이번에 자사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생성형 AI 챗봇 기술을 선보였다. “AI 덕분에 24시간 언어 장벽 없이 글로벌 고객을 응대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기능은 지난해 챗GPT가 등장한 이후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도입한 것을 모방하는 수준이다. 현장에서 만난 미국 이베이 임원은 “중국의 생성형 AI 기술 도입 수준이 미국과 비교하면 1년 이상 늦은 것 같다”고 했다. 중국 3D 카메라 기술 업체인 오르벡 관계자는 “(미국의 기술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체 칩 사용을 늘리려곤 하지만, 성능 격차가 심해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조선미디어그룹 CES 특별취재팀
조선일보 ▷팀장=정철환 파리 특파원, 조재희·정한국·김성민·임경업·오로라·유지한·이해인 기자
TV조선 ▷김지아 기자
조선비즈 ▷팀장=설성인 IT부장, 최지희·고성민·권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