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나란히 폭등했던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올 들어 서로 다른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는 작년 최고 가격의 60%쯤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반면, 가스 가격은 연초 이래 계속 하락해 작년 고점의 5분의 1 토막 수준이 됐다. 양대 에너지 자원이 작년엔 ‘한 배’를 탔다가, 올해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금투 업계 전문가들은 “막연히 비슷한 에너지원으로 생각하고 투자했다간, 예상과 다른 가격 흐름에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 지난 3일(현지 시각) 중동 산유국들의 감산 소식에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하루 만에 6.3% 폭등했는데, 같은 거래소에서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반대로 5.4% 떨어졌다. 지난 2주간 추세도 WTI 가격은 약 17% 상승한 반면, 가스 가격은 10% 넘게 하락했다. 단기(短期)이긴 하지만, 둘의 가격이 정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작년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에너지 공급이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원유와 가스 가격이 동반 상승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원유는 ‘등락 반복’, 가스는 ‘계속 하락’
국제 유가는 작년 6월 전쟁 여파로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안정돼 작년 말쯤엔 70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올 들어서는 70~80달러 수준에서 출렁이고 있다. 주로 중동이나 러시아 등 산유국의 감산 소식에 오르다가, 미국의 긴축 행보나 글로벌 경기 둔화 움직임에 주춤하는 패턴을 보였다. 일각에선 지난 3일 감산 여파로 유가가 90달러 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천연가스는 ‘등락 반복’이 아니라 ‘계속 하락’ 추세다. 작년 12월 중순 MMBtu(열량 단위)당 6달러대 중반이었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지금은 2달러대 초반 수준이다. 3분의 1토막이 났다. 작년 한창 고공행진하던 가격(9달러대 후반)과 비교하면 80% 가까이 폭락한 것이다. 작년 가격이 워낙 높아 정상화된 측면이 크지만, 지난 겨울 미국·유럽 등이 예상보다 따뜻했던 여파로 난방용 가스 재고가 쌓이자 가격이 더 떨어졌다.
역대급 천연가스 가격 하락에 관련 금융상품도 출렁이고 있다. 특히 가스 가격을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 상품들이 받은 타격이 큰데, 올 초부터 현재까지 가격이 82~83%나 하락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ETN 350여 종 가운데 올해 수익률 하위 1~14등이 모두 천연가스 ETN일 정도다. 반면 가스 가격을 역(逆)방향으로 따르는 ‘천연가스 인버스’ ETN들은 올 수익률이 최고 200%를 넘는다.
◇전문가들 “원유·가스 동반 상승이 이례적”
원유와 가스 가격이 같이 움직인 작년과 엇갈린 올해 중, 어느 쪽이 ‘정상’일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전쟁이 거의 모든 에너지 가격을 밀어올린 작년이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통상 운송용으로 주로 쓰이는 원유와, 전력 생산이나 난방 등에 쓰이는 천연가스는 용도가 서로 달라서 가격 흐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가는 산유국들의 증산이나 감산 여부에, 가스는 여름철 전력 소비량과 겨울철 한파 여부 등에 각각 민감하게 움직인다.
하헌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가 명백한 호황 또는 불황일 경우 에너지 전반에 대한 수요가 늘거나 주는 ‘공통 변수’가 되긴 한다”면서도 “최근 상황은 경기 회복이나 침체에 대한 시장의 전망이 일치하지 않아 원유와 가스에 뚜렷하게 같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향후 가격 추세도 두 에너지원이 ‘각자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올여름에 전력수요 증가로 천연가스 재고가 소진되면 가스 가격은 반등할 수도 있지만, 원유 가격은 현재 감산 추세가 지속되는지 따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원유와 가스가 다른 시장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면밀히 분석해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