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잣돈 4500만원을 3000억원대로 불려 개미들의 전설로 통하는 박영옥(62) 스마트인컴 대표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는 요즘 기업 대표와 임원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오고 있다.
박 대표는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총 12개 상장사를 상대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제안을 해놓은 상태다. 회사로선 껄끄러운 제안이니 “제발 좀 거둬들여 달라”고 찾아오는 것이다. 현재 5% 미만 지분을 가진 기업만 50여 곳, 1% 미만 지분을 투자한 기업까지 합치면 총 100여 곳에 달한다.
그는 농부가 볍씨를 고르듯 좋은 기업에 투자해 기업과 함께 커간다는 생각으로 주식을 사들인다는 철학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주식 농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박 대표는 전북 장수의 전기도 안 들어오는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했다. 섬유가공 공장에서 4년여, 이후 또 신문 배달을 하면서 번 돈으로 가족 생활비를 부쳤다. 늦깎이로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들어간 게 주식과의 첫 만남이었다. 대신증권과 교보증권을 거쳐 2001년 전업투자자 생활을 시작했다.
◇10여년 전부터 주주 제안
그는 10여 년 전부터 주주 제안을 해왔다. 교보증권·현대증권·대신증권 등에 “배당을 통해 성과를 공유하라”고 요구해왔고, KT&G에는 주주환원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KT&G는 2021년 말 3년에 걸친 1조7500억원 규모 배당 대책을 내놓으면서 대표적인 ‘배당주’가 됐다. 기관투자자가 아닌 소액주주가 직접 검사인을 선임해 회사(조광피혁)를 상대로 주주장부 열람을 신청하고 법원에서 인용된 것도 박 대표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제까지는 주주제안을 해도 그해 주총에서 바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고 했다. 최근 해외 사모펀드 출신들의 잇따른 주주제안에 이어 일반 개미들까지 힘을 모아 나서는 공격까지 등장하면서 주주 행동주의 물결이 국내에서도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까지 순수한 주주로서 제안을 해왔는데, 기업들의 역공세가 만만찮았다. ‘누구와 특수관계다’ ‘대주주 음해 세력이다’ 같은 오해 속에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았고, 내용증명도 숱하게 받았다”며 “그런데 요즘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다더라.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특히 2005년부터 투자하기 시작한 조광피혁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다. 현재 2대 주주인 그는 이 회사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소송을 내 7일 승소 판결을 받았다. “내가 피혁 공장에서 일해봐서 알아요. ‘한물간 사양산업’이라 생각들 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산업입니다. 소 부산물이 가방·신발뿐만 아니라 건자재나 차 내장재 등에도 두루 쓰이죠. 그런데도 대주주가 회사를 발전시킬 생각을 안 해요. 기업가의 시각, 주인 된 시각에서 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주주 행동주의는 1400만 개미의 힘”
그는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펀드 붐이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해 “1400만 개미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500만~600만명 수준이던 국내 개인투자자 숫자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1400만명까지 불어났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선진 자본주의를 경험한 ‘젊은 투자자’가 많아진 것도 분위기를 바꿨다고 봤다.
그는 “주주 행동주의를 ‘한탕주의’나 ‘약탈적 자본주의’로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기업은 하루아침에 돈 벌지 않습니다. (주주 제안을 한 뒤) 금세 사고팔고 하지 말고 3~4년은 시간을 주고 기다리고, 성과를 공유해야 그런 소리(한탕주의)를 안 들어요. 남에게 돈 맡긴다는 것은 믿는다는 거예요. 우리 자본시장에 신뢰 기반이 약하니까 단기적으로 사고팔고 하는 것이겠죠.”
그는 “주주가 없으면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면서 “우리나라 많은 자산가와 정치인들이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지만, 우리나라 회사 주식을 사주는 게 진짜 애국자”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투자 유치하는 것보다, ‘1가구 1사(社) 주주 되기 운동’이라도 해서 우리 기업에 투자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게 진짜 애국하는 길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