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9년 8월 9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2사업장을 방문해 둘러보는 모습./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을 빌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반도체 부문에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대규모 운영자금을 차입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둔화로 올해 영업이익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예년 수준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다.

14일 삼성전자는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단기 차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차입 기간은 오는 17일부터 2025년 8월 16일까지로, 이자율은 연 4.6%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가 지분 85%를 보유한 자회사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현재 20조원대 유보자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 빌려 반도체 부문에 투자하기로… 자회사서 차입은 이례적

삼성전자가 20조원을 차입한 것은 올해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50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내고, 비슷한 규모의 자금을 반도체 부문에 투자해 왔다. 43조원 남짓한 영업이익을 낸 지난해에도 48조원 가까이를 반도체에 투자했다.

하지만 올해는 반도체 부문이 상반기에 적자까지 예상되는 등 연간 영업이익이 20조원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삼성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자체 유보자금이 100조원이 넘지만 대부분 해외에서 운용 중인 상태”라며 “조달 비용 등을 감안하면 자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빌린 20조원은 전액 반도체 투자에 쓰일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불황으로 경쟁사들이 일제히 투자 감축, 감산, 인력 감원에 나선 상황에서도 투자, 고용을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불황에 투자하면 기술력 격차를 벌리고 향후 업황이 살아났을 때 이를 바탕으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차입 건은 설사 이익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반도체 투자는 계획대로 실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