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가 14일(현지 시각) ‘빅 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기준금리를 연 4.25~4.5%로 높였다. 지난 6월 이후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던 고속 질주에서 벗어나 6개월 만에 금리 인상 속도를 낮췄다. 지난 6월 9.1%까지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이 11월에 7.1%까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누그러지면서 연준이 보폭을 줄인 것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추긴 했지만 이날 빅 스텝으로 미국 기준금리는 2007년 12월 이후 15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은행 기준금리(3.25%)보다 1.25%포인트까지 벌어지면서 자본 유출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한·미 금리 격차 커지면 원화 가치 하락 위험
1.25%포인트인 한·미 간 금리 차이는 2000년 10월 이후 22년 만에 가장 큰 격차를 보이게 됐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내년에도 계속 금리를 올리겠다고 예고하면서 내년에는 금리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연준 위원 19명은 내년 말 금리를 연 5.1%(중간값)로 예고했다. 19명 가운데 17명이 내년 말 기준금리를 연 5% 이상으로 전망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지난달 24일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25%로 올리면서 이번 금리 인상기의 최종 금리를 연 3.5% 정도로 예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2명이 3.75%, 3명이 3.5%, 1명이 3.25%를 최종 금리로 제시해 3.5%에 무게를 실었다. 앞으로 한 차례 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을 한 뒤 금리 인상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계속 연 3.5%를 이번 금리 인상기의 정점으로 삼고, 연준이 이날 새로운 전망치에 부합해 연 5~5.25%로 금리를 올리면 한·미 간 금리 격차는 1.75%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도로 양국 간 금리가 크게 벌어진다. 한·미 간 금리가 큰 폭으로 역전된 상태로 오래 지속될 경우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있다.
◇한은 최종 금리 3.5%보다 높이나
만약 금리 격차로 인한 자본 유출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고 경제 성장률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때 1400원대까지 올랐다가 최근 1200원대 후반까지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고 있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다시 오를 개연성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를 자극하고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한은이 금리를 4%대까지 올리지 못하면 양국 간 금리 격차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외환시장에 달러 여유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환율이 급등하면서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은은 연준과의 금리 차이가 과도하게 벌어지지 않기 위해 보폭을 맞출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연준이 내년에 금리를 올릴 때마다 한은은 최종 금리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8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미국보다 금리 인상을 먼저 종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한은 입장에서는 마냥 미국을 의식한 금리 추격전을 벌일 수 없는 처지라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 자금시장 경색이 나타났고, 내년에는 경기 둔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높은 금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금리가 오를수록 187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도 커진다.
다만 금리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는다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론도 있다. 외환 위기 이후 3차례 한·미 간 금리 역전기에 두드러진 자본 이탈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창용 총재는 “외환보유액이 세계 9위 수준으로 충분하다”며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이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과 달리 (지금은 우리나라가) 순채권국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신용위험을 걱정할 우려는 없다”고 강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