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대어(大漁)로 기대됐던 케이뱅크가 내년으로 상장을 미루고, KT 계열사인 ‘밀리의 서재’가 상장을 철회하면서 공모주 시장이 사실상 마감하는 분위기다.

예년에는 비상장 기업의 연간 실적이 확정되는 3월 이후부터 상장 절차가 시작돼 10~11월은 IPO 시장의 성수기로 통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증시가 흔들리면서 상장 예비 기업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상반기에도 IPO 시장의 활기가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갑게 식어버린 IPO 시장

지난해 IPO 시장은 넘쳐나는 유동성의 영향으로 역대 최고 호황기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1년 유가증권시장의 IPO 공모 금액은 17조원이었고, 공모 가격으로 평가한 신상장 기업의 시가총액은 87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각각 8조8000억원과 36조6000억원이었던 종전 기록을 2배가량 웃돌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크래프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대어급’ 회사 20곳이 신규 상장했다.

하지만 올해는 글로벌 긴축 정책으로 열기가 사그라들었다. 올해 11월까지 코스피·코스닥 신규 상장 기업은 총 72곳이다. 보통 12월에는 IPO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새로 상장한 기업(89곳)에 비해 20%가량 줄어든 것이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연초부터 코스피 시장의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에 이어 최근 코스닥의 라이온하트스튜디오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뒤 상장을 철회했다”며 “심사 승인까지 완료하고 중단한 현대오일뱅크, 심사 단계에서 미승인으로 끝난 교보생명, 청구서는 내지 않았지만 신상장 후보군에 있었던 CJ 올리브영, SSG 닷컴 등의 상장 계획 연기까지 포함하면 더욱 아쉽다”고 했다.

◇4조 거론 ‘컬리’ 1조로 뚝

증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하반기 IPO 최대 기대주였던 케이뱅크와 컬리(옛 마켓컬리)는 상장 시기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이달 초 주요 재무적 투자자(FI)에게 상장 목표 시점을 내년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은행 중 유일하게 상장한 카카오뱅크의 주가 하락이 케이뱅크가 상장을 늦추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업체인 카카오뱅크 주가가 1년 사이 70% 이상 빠지자 지금 상장할 경우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는 것이다. 비상장 시장에서 케이뱅크의 주가는 올 초 2만1000원대에서 이달 1만1000원대로 50%가량 하락했다.

컬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컬리는 매달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적자 상태여서 신규 자금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기업 가치 평가는 작년에 비해 크게 쪼그라들었다. 컬리는 지난해 4조원 규모의 가치를 인정받아 사모펀드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이하 앵커PE)에서 2500억원을 투자받았지만 지금은 추정 시가총액이 1조원대로 떨어졌다. 실제 비상장 시장에서 컬리 주가는 올 초 11만2000원에서 17일 기준 2만9000원까지 하락했다. 시총은 1조1148억원 규모다. IB 업계 관계자는 “컬리는 여러 차례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이 낮아져 주식 담보대출도 어렵기 때문에 상장 외에는 답이 없을 것”이라며 “상장 예심 통과 후 6개월 안에 상장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내년 2월 전에는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중소형사 상장은 꾸준

규모가 작은 기업들의 상장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당장 필요한 자금을 수혈해야 하는 데다 내년까지 미룬다고 해서 더 높은 가치에 상장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서만 여덟 기업이 수요 예측에 들어가거나 공모를 진행했다. 유진형 DB증권 연구원은 “올해 IPO 시장 부진은 인플레이션 위험 확대와 금리 상승이라는 거시 변수가 주된 원인”이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이 일단락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IPO 시장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