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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목재업체를 운영하는 김 아무개(56) 대표는 “요즘 나무값이 장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러시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원목과 합판 등을 수입한다. 그는 소송(蘇松·러시아산 소나무) 값이 오르는 걸 보면 무섭다고 했다. 1년 전만 해도 소송 한 재(才) 가격은 13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0원으로 올랐다. 50% 이상 껑충 뛰었다.

소송으로 만들어진 각재나 소할재 등은 실내 벽과 천장 등에 사용되기 때문에 건설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그런데 최근 소송 가격이 폭등하면서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운임이 두 배로 뛰었고 현지 원목 가격도 올랐다. 김 대표는 “수요가 증가한 건 아닌데 공급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게다가 환율까지 오르면 수입처를 동남아 등지로 바꿀 수 있는 대형 업체들은 몰라도 중소형 업체나 개인사업자들은 생존까지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목재를 활용해 집을 짓는 건축업체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대전에 본사를 두고 있는 ㄱ업체는 목조 주택을 전문적으로 짓는다. 작년에 가장 많은 집을 지은 이 업체는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계약을 따낸 지난해 존폐의 위기를 겪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경기도를 중심으로 착공을 많이 했는데 원자잿값이 급등하기 전 계약이 적지 않아 문제였다. 우리 같은 부티크 건축 기업은 고객 평판이 생명이라 손해를 감수하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말로 너무 힘든 한 해였다”고 말했다. 만약 2019년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집을 2022년 지금 지으려면 두 배 정도 예산을 더 들여야 할 정도로 자잿값과 인건비 모두 급등한 상황이다.

3개월간 금리 올린 국가 55개국 달해

전 세계는 지금 수입물가가 껑충 뛰어오르며 인플레이션 고통에 신음한다. 그러다 보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각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환율 경쟁을 펼치는데, 이전과는 달리 자국 통화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안간힘을 쓴다. 환율을 끌어내리는 이런 행태를 두고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처음으로 ‘역(逆)환율전쟁(reverse currency war)’이라고 이름 붙였다.

‘역(逆)’이라는 단어가 붙은 건 지금까지 벌어졌던 환율 전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서다. 보통 한 나라의 통화는 다른 나라의 통화보다 하락해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다. 통화 가치가 낮으면 재화의 가격 경쟁력이 생기고 이 때문에 해외 수요가 증가해 수출과 무역 흑자를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 가치를 하락하는 쪽으로 매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처럼 국가 간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환율 전쟁’의 모습이다.

이 ‘환율 전쟁(currency war)’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2010년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이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의 통화 정책에 항의하면서 만든 말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의 가치가 높아서 위기를 느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나 일본은 달러화나 엔화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면서 강력한 통화 완화정책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에 열받은 브라질 경제수장의 비난은 이랬다. “자국의 통화를 평가절하해 수출을 늘리면서 무역 상대국에는 오히려 ‘실업률’을 수출하고 있다.” 보통 힘이 센 무역 상대국이 화폐 가치를 낮추면 상대국은 피해를 보게 된다. 타국을 희생시켜 경제적 이득을 얻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근린궁핍화정책(beggar-my-neighbor policy)’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이 모든 걸 뒤집었다. 이제는 환율이 높으면 수출이 증가한다는 공식도 통하질 않는다.

우리만 높은 게 아니라 주변국들 모두 자국 화폐 가치가 달러 대비 떨어지면서 같은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조지 콜과 마이클 캐힐은 지난 2월 고객들에게 보내는 투자노트에 이렇게 썼다. “중앙은행이 수출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보여주었던 환율 하락 경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달러 강세에 대응해 자국 통화 가치를 높이는 가장 기본적 방법은 기준금리 인상이다. 미국은 6월에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밟으며 강(強)달러 기조를 한층 강화했다. 3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유로화는 달러화에 비교했을 때 5년 만에 가치가 최저로 떨어진 상황이다.

물론 과거라면 좋았던 상황일 테지만 지금의 중앙은행들 행보는 정반대다. 기준금리 인상을 너나없이 시행 중이다. 지난 5월 29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공개한 자체조사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금리를 올린 국가는 55개국이고, 이들은 60차례가 넘는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특히 신흥국의 금리 인상은 보다 기민하고 미국보다 더 가파르게 이루어진다. 지난해 3월 2.0%였던 브라질의 기준금리는 현재 13.25%가 됐다. 1년 사이에 10%포인트 이상 뛰었다. 미국의 이웃국인 멕시코는 지난 6월 23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며 7.75%에 도달했다.

아시아도 마찬가지. 인도가 지난 6월 8일에 4.4%에서 4.9%로 올렸고 지난 4월 2.5%포인트나 인상했던 파키스탄은 지난 6월 23일 12.25%에서 13.75%로 또다시 1.5%포인트를 올렸다.

FT는 “6개월 안으로 20개 주요 중앙은행들 중 16곳이 금리를 인상할 예정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인상 속도가 가장 빠를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금리 인상만으로는 쫓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이러면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외환 당국이 나서야 한다.

개도국 외환보유고는 지금 감소 중

일단 외환 곳간을 열어 달러화를 시장에 내다 파는 나라가 늘었다. 베트남 현지언론인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베트남 중앙은행(SBV)의 최근 외환보유액은 약 1000억달러(약 129조3300억원)로 알려졌는데 3개월 전만 해도 1100억달러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미 100억달러 정도가 감소했다. 달러를 매도해 자국 환율 하락을 방어하는 실탄으로 사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6월 17일 기준 2214억달러로 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0년 연말 역대 최고치(2581억달러)를 기록했던 때와 비교하면 14% 이상 줄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 5월 기준 외환보유액이 1356억달러인데 2020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계 10위권 외환보유국들도 달러 감소 추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 2위 외환보유국인 일본은 지난 4월 외환보유액이 1조1950억달러였는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7월 1조3190억달러와 비교하면 9.4%가 줄어들었다. 네 번째로 달러가 많은 국가인 인도도 약 반 년 만에 7.9%나 감소했다.

이들 국가의 외환보유액이 줄어든 건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블룸버그는 “일부 국가에서는 환율의 변동성이 과도했을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세계 8위였던 외환보유고 순위는 지난 5월 말 기준 9위로 한 계단 내려왔다. 5월 말 기준 한국 외환보유액은 4477억1000만달러로 전월 대비 약 15억9000만달러 줄었다. 3개월 연속 감소세다. 한국은행 측은 외환당국이 유동성 공급에 나서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한은 관계자는 “달러 강세라는 흐름 속에 우리도 있기 때문에 그에 발맞춰 외환시장에 접근해야 한다. 다만 환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협응이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환율은 꽤나 복잡다단한 문제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는 이유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성장보다 물가에 방점이 찍히면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게 환율 하락이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 가격이 올라 생산자물가를 밀어올리고 이건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은이 지난 6월 9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12월~2022년 5월 사이 1분기 기준, 원·달러 환율이 1%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06%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자국 통화 가치가 높아질수록 수입품 가격은 내려가고 물가 상승을 막을 수 있다는 해답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의 방향에 따라 내부에서는 ‘웃는 자’와 ‘우는 자’가 생긴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환율이 상승할 때 대표적 수출업종인 자동차나 조선 등은 웃는다. 환율 효과가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증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에너지나 목재와 같은 원자재는 외국에서 더 비싸게 가지고 와야 하니 눈물 날 노릇이다.

“역환율 전쟁이 부채 위기 촉발할 수 있다”

이런 승자와 패자는 국제무대에서는 고스란히, 그리고 더 가혹하게 반영된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멤버였던 제프리 프랭클 하버드대 교수는 수개월 전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환율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끌 것이라고 강조해 왔던 인물이다.

그는 “오늘날 달러 강세의 치명적인 패자는 주요 부국이 아니라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달러화로 된 부채를 안고 있는데 이들의 부채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싸우는 데 필요한 재정 지출 탓에 악화됐다. 달러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이들의 부채 상환 비용은 자국 통화로 환산할 때 증가한다. 이런 역환율 경쟁이 부채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달러에 맞서 외환보유고까지 동원하는 통화 방어책이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당장 국내 상황만 봐도 “1달러 1300원은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달러화가 급등할수록 지금 다른 국가들은 키를 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종속 변수가 돼버린다.

물론 이 상황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처럼 수출 비중이 낮은 국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국가들은 수출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통화 가치를 올리기만 해서는 버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역환율 전쟁’의 종식이 중요하지만 그 키를 쥔 것도 결국 연준이다. 프레데릭 뉴먼 HSBC 아시아경제연구소 공동책임자는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 같은 거대한 바람에 맞서고 있지만 미 연준의 긴축 종료 선언과 같은 더 많은 조건들이 있어야 통화 약세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연준의 금리 인상 스케줄이 끝나야 다른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다시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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