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전국에서 문을 닫은 은행 점포는 1300곳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은행들의 점포 축소 경쟁은 더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만 311곳이 사라졌다. 두 은행이 공동 점포를 쓰고 점포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등 공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19개 시중은행의 총 점포수는 6094개(2021년 말 기준)이다.
시중은행과는 거꾸로 MG새마을금고는 현재 본점 1297곳, 지점을 포함하면 3242곳이 운영되고 있다. ‘독도 빼고는 없는 데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점포 효율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새마을금고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2018년 150조원이었던 자산은 올 2월 기준 250조원으로 성장했고 고객수는 2150만명에 달한다. 새마을금고의 DNA도, 성장 공식도 다른 은행과는 다르다. 새마을금고에 각각의 점포가 갖는 의미는 영업장 이상이다. 주민 사랑방에서 문화센터, 공유 공간까지 새마을금고는 금융을 넘어 그 역할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 4년 임기의 회장직 연임에 성공, ‘시즌2’의 막을 연 박차훈(65)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을 만나 그 의미와 성공비결을 들었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농어촌, 소외지역의 지점을 없애면 지역주민들과 고령층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점포의 효율화보다 금융소외계층을 위한 포용금융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농촌지역에만 500개의 점포가 있습니다. 그런 곳은 새마을금고가 사라지면 금융서비스를 전혀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박 회장은 “1963년 경남 산청에서 협동조합으로 탄생한 새마을금고에 ‘지역공동체’ ‘생활공동체’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라면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고 상생하는 것이 새마을금고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1997년 동울산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시작으로 25년째 새마을금고와 함께하고 있는 박 회장은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알고 있다. ‘주민을 살리는 일이 곧 금고를 살리는 일이다’라는 것을 일찍 확인했다고 한다. 동울산새마을금고 시절 박 회장은 ‘느티나무 복지재단’을 만들었다. 전국 금고 중 1호 사회복지법인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를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요양원, 노인복지회관, 아동청소년 발달센터와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했습니다. 노인복지회관 같은 경우는 1000원만 내면 당구도 치고 헬스도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주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금융기관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와 동고동락하는 느티나무와 같은 휴식처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주민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봉사는 ‘성과’로 돌아왔다. 시설을 이용한 부모로부터 “너무 고맙다” “은행 가려면 새마을금고로 가라”라는 말을 들은 자식들이 신규 고객이 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의 새마을금고에서는 ‘느티나무 복지재단’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앞다퉈 찾아왔다. 박 회장은 동울산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146억원이었던 금고의 자산을 5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카페로 문화센터로 갤러리로
전국의 새마을금고가 지역민과 상생하는 법은 흥미롭다. 지역 특성에 맞춰 금고의 공간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체국이 없는 지역에서는 우편취급국을 운영하고, 노래·서예·드럼·댄스 등 문화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스포츠센터, 요양원, 노인복지관,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지역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 금고가 갤러리가 되기도 한다. 북카페와 놀이방을 만들어 주부들이 아이를 맡기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돕는 곳도 많다. ‘해결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스마트폰 작동을 못 해 문제가 생겼을 때 달려가는 곳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기기 작동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삼성전자와 손잡고 금고에서 사용법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의료기관이 부족한 곳에서는 병원과 연계해 독감 예방접종을 할 수 있게 하고 3차 의료기관과 연계해 노인들을 대신해 예약을 도와주는 곳도 있다.
주민들과 밀착돼 있다 보니 호칭도 다르다. 일반 은행에서는 “고객님”이라고 부르지만 새마을금고에서는 “어머님” “아버님”이 일반적이다. 이웃집 드나들 듯 출근 도장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금고 직원들은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기상도’를 대충 눈치챈다. 박 회장은 “워낙 고객들을 잘 알다 보니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경우도 많다”면서 얼마 전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남원새마을금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단골 주민이 금고에 들어오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면서 정기예탁을 중도해지해 달라고 했다. 창구 직원이 이상해 “요즘 보이스피싱이 많은데 혹시 전화 받으신 거 없냐”고 물어도 조용히 하라는 손짓만 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조용히 밖으로 데리고 나가 물으니 “자식이 납치됐고 돈을 찾아오라고 했다. 휴대전화를 절대 끊지 말라고 했다. 가방 속에 전화기가 있고 지금 다 듣고 있을 거다”라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직원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고 경찰관이 출동,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디지털 시대, 역설적으로 새마을금고의 공간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금고가 없어지면 주민들의 거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터넷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금융 격차에 대한 우려도 동네마다 버티고 있는 새마을금고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주민들 삶 속에 자리 잡은 새마을금고는 사회적 자산인 셈이다.
새마을금고의 ‘상생’ DNA는 해외에도 이식되고 있다.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으로 2016년부터 미얀마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새마을금고가 세워지고 있다. 박 회장은 “현재 미얀마, 우간다, 라오스 등에 총 53개 새마을금고가 설립됐고 피지, 네팔, 캄보디아 등으로 확대해 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K팝, K드라마 이어 K금고가 간다!
‘Uganda is gonna be better with Saemaul Geumgo.
친구야 우간다는 더 나아질 거야. 새마을금고와 함께라면 더 좋아질 거야.’
아프리카 우간다에서는 이런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다. 음피지주에 위치한 봉골레새마을금고의 회원으로 뮤지션인 카이랑가 가드윈씨가 만든 노래이다. 새마을금고를 접한 가드윈씨는 ‘절약, 저축, 협력’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노래를 만들어 전파하고 있다고 한다. 봉골레새마을금고의 회원은 현재 1386명에 달한다. 그동안 통장조차 만져본 적 없고, 돈을 모을 줄도 모르던 사람들이 새마을금고를 통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간다의 수도인 캄팔라로부터 서쪽 르완다로 이어지는 마사카로드를 2시간여 달리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20여분 더 달려야 도착하는 오지 마을 티리보고에서도 새마을금고가 마을을 바꾸고 있다. 현재 이곳 새마을금고 회원은 744명인데 사실상 마을 주민 대부분인 셈이다. 박 회장은 “태국에서도 MOU를 맺어 새마을금고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고 베트남 측에서도 새마을금고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만남이 약속돼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의 해외 사업은 지난해 한국 공적개발원조(ODA)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새마을금고가 개발도상국 곳곳에서 ‘K금고’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2018년 중앙회장에 선출된 박 회장의 ‘시즌1’ 목표는 ‘성장’ 이었다. 자산도 조직도 목표 이상으로 일궈냈다. 2019년 1월 디지털금융 선포식을 개최한 이후에 IT센터 구축, 모바일뱅킹 고도화, 종이 없는 창구를 구축해 젊은 새마을금고를 만들고 있다. 빅데이터 및 마이데이터 서비스 사업 등을 확대해 디지털종합금융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위한 발걸음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숫자’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통’이었다. 전국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1300명이 넘는다. 과거엔 지원기관인 중앙회의 문턱을 넘는 것이 어려웠다. 그만큼 중앙회와 현장 간의 소통이 막혀 있었다. 박 회장은 그 문턱부터 없앴다. 이사장들을 수시로 불러모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필요한 지원은 즉시 하고 각 금고에 ‘자율경영’을 하게 하자 경쟁력이 쑥쑥 커졌다. ‘소통’의 효과가 선순환을 만들며 결국 ‘숫자’로 이어진 것이다.
박 회장의 ‘시즌2’ 목표는 새마을금고중앙회도 ‘신용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반 새마을금고는 은행의 모든 업무를 하고 있지만 중앙회의 경우는 금고의 감독기관 역할에 무게 중심을 두고 신용업무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박 회장은 “신협, 수협 등은 중앙회도 신용사업을 하고 있는데 새마을금고만 안 열어주고 있다”면서 “법, 제도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신용사업을 통해 온전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