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브리즘의 성우석 대표와 브리즘 안경점에 진열돼 있는 안경들. /더비비드

안경은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물건이다. 사람마다 귀의 위치, 얼굴형, 눈 사이의 거리, 코의 높이 등이 모드 다른데 안경테 크기는 동일하다. 불편할 수밖에 없다.

안경 스타트업 ‘브리즘’은 맞춤형 안경테의 부재에 의문을 던졌다. 얼굴 스캔 정보를 3D 프린터에 입력해 맞춤형 안경테를 생산한다. 무모하게 던진 물음은 통했다. 2017년 시작해 지금까지 1만2000명이 브리즘의 맞춤 안경을 이용했다.

올해 매출은 30억원을 돌파해 작년 대비 2배 가까이 성장했다. 내년 1월 열리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안경 업체 최초로 혁신상도 받는다. 브리즘의 성우석(42) 공동 대표를 만나 안경 제조업에 뛰어든 이유를 들었다.

◇제조업 매력에 눈 뜬 고대 출신 회계사

삼성증권 재직 시설 성 대표. /성우석 대표 제공

브리즘은 스캔한 고객 얼굴 정보를 3D 프린팅 공장에 보내 안경을 제작한다. 탄성이 좋아 잘 부러지지 않는 고급 안경 소재 폴리아미드를 사용한다.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10일 정도 걸린다.

색상, 테 디자인(림), 사이즈, 코 받침, 안경다리(템플) 길이, 모양 등 수많은 요소를 소비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 한번 스캔을 해두면 저장된 정보를 통해 디자인, 색상만 달리한 다른 안경을 제작할 수도 있다. 서울 을지로, 강남, 여의도 등 브리즘 매장에서 안경을 맞출 수 있다.

성 대표는 브리즘에서 재무와 3D 프린팅 안경 제조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은 3D 프린팅 전문가지만, 원래 회계사였다. 고려대 통계학과 98학번으로, 대학교 4학년 때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2002년부터 삼일회계법인에서 3년간 회계 감사, 컨설팅 업무를 했다. 군 제대 후 IBK투자증권, 삼성증권의 인수합병팀에서 6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재무 전문가다.

-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인 회계사를 그만둔 이유가 있을까요.

“일은 재미있게 했습니다. 제가 원해서 공부한 자격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몇 개월씩 걸리는 프로젝트가 많았거든요. 계산해보니 주당 100시간 가까이 일을 하고 있더군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상태가 됐습니다.

당시 인수합병팀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여러 분야의 기업가를 만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창업’에 관심이 갔습니다. 적어도 돈 관리는 확실하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었죠.”

성우석 대표는 지난 달 독일 세계 최대 3D 프린팅 전시회 폼넥스트에 다녀왔다. /성우석 대표 제공

- 제조업에 눈 뜬 계기는요.

“어렸을 때부터 제조업과 친했어요. 아버지께서 모터, 펌프 제조업에 종사하시거든요. 증권사에서 일할 때도 고객사 공장을 방문해 공정 둘러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기업 감사를 하다 보면 독점 기술을 갖춘 제조 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돼요. 이런 자극들 덕에 제조업 창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아직 불모지이면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나섰죠. 관련 책도 많이 읽었어요.”

- 독서에서 답을 찾은 건가요.

“인수합병 관련 일을 했기 때문에 산업 조사를 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2013년 퇴사하고 쉬면서 우연히 ‘메이커스’라는 책을 읽었는데, 온통 3D 프린팅 이야기만 하더군요. 제조업 불모지가 바로 ‘여기다’ 싶었습니다.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넓고 사람들이 많이 도전하지 않은 분야이기도 했죠. 그 이후부터는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서재에 컴퓨터 한 대 두고 종일 캐드, 솔리드웍스, 라이노 등 3D 모델링 프로그램(3차원의 사물을 수치화하는 과정)을 공부하고 연습했어요. 회계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는데, 저도 모르게 새로운 분야를 고3 학생처럼 공부하고 있더군요.”

◇3D 프린팅에 안경을 접목했더니 벌어진 일

3D 프린팅 출력실 모습. /브리즘 제공

2015년 더메이크라는 3D 프린팅 대행 서비스 업체를 창업했다. 중소기업의 시제품 목업(mock-up: 실물 모형)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기업이었다.

- 처음부터 안경으로 3D 프린팅의 세계에 입문한 건 아니네요.

“디자이너 친구와 함께 프린팅 대행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주로 중소기업에 목업을 납품했고, 휴대폰 케이스를 맞춤으로 제작하는 사업도 했어요. 근데 공장을 갖추고 창업한 것이 아니고 유럽의 3D 프린팅 공장에 디자인을 맡기는 방식이라 순이익이 터무니없이 적었어요. B2B 영업도 쉽지 않았고요.”

- 남들은 비전공자가 도전했다가 ‘피 봤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오히려 오기가 생기던데요. 당시 유럽에서 받아본 3D 프린터 출력 결과물들은 품질이 매번 다르고 오류도 많았어요. 3D 프린팅을 활용한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후가공’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요. 유럽에서 오는 제품이 성에 안 차서 ‘후가공’ 기술을 공부했어요. 모델링 프로그램 공부에 더 매진해 정밀한 품질 조절법도 연구했고요. 그래도 욕심이 생겨 2016년엔 기술보증기금의 도움으로 3억원짜리 3D 프린터를 들여왔습니다. 그 프린터가 지금 브리즘의 안경을 전량 생산하고 있어요.”

브리즘은 3D 프린팅 기법으로 안경을 생산한다. /콥틱 제공

- 안경 산업에 발 들인 계기는요.

“한 분야의 제품을 전문적으로 제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고등학교 선배를 통해 브리즘 공동창업자인 박형진 대표를 만났어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이미 안경 유통 체인 사업으로 한 번 성공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었는데, ‘안경 제작’에 대한 갈증이 있던 분이었죠. 저희 둘 다 3D 프린터와 안경의 만남에 대찬성했고, 이후 매주 만나 대학생 조모임처럼 각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 안경과 3D 프린터의 만남에 찬성한 이유가 궁금한데요.

“안경테는 왜 비싸고, 가격이 천차만별일까. 이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사실 원가보다 안경점의 ‘재고’가 문제입니다. 안경점마다 안경테가 진열장에 가득 들어 있는 모습 많이 보셨죠. 보통 안경점은 개업할 때, 수천 장의 재고를 안고 시작해요. 초기 개업 비용이 다른 사업 대비 큰 거죠. 안경점 문을 닫게 될 때까지 재고를 모두 소진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래서 안경점들이 원가 대비를 마진율을 높게 잡아요. 반면 3D프린터는 개인 맞춤형 물건만 만들죠. ‘선 주문 후 제작’ 방식으로 재고가 있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비용 부담을 덜어 내 여유 자금을 품질에 재투자 할 수 있는 선순환이 가능한거죠.”

◇맞춤형 제품은 비싸다는 인식 깨

얼굴 스캔을 통해 전문 안경사가 상담을 진행한다. /브리즘 제공

두 사람은 2017년 5월 콥틱을 창업하고 ‘브리즘’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성 대표의 ‘더메이크’는 자연스럽게 브리즘의 안경 생산 공장이 됐다. 같은 해 12월까지 시중에 있는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얼굴 정보를 안경 제작에 입력하는 모델링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했다.

2018년 1월 을지로에서 연 팝업스토어를 시작으로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매장 운영을 담당하고, 성 대표는 안경 품질 관리, 공장 운영, 자금 관리를 맡고 있다.

-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나요.

“브리즘 안경점에서 얼굴을 스캔한 정보를 3D 프린팅 공장에 보내 맞춤 안경을 제작해주는 서비스예요. 색상, 테 디자인(림), 치수, 코 받침, 안경다리(템플) 길이, 모양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하고 선택할 수 있죠. 테 디자인만 43가지입니다. 모든 특약점은 전문 안경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안경사분들이 구매과정을 돕고 렌즈 상담도 진행하고 있죠.”

- 얼굴 스캔의 원리가 궁금해요.

“아이폰 시리즈의 페이스 아이디(Face-ID)의 원리랑 비슷합니다. 전면 카메라와 적외선 빛을 사용자의 얼굴에 쏘아 굴곡, 크기, 생김새를 기록하는 기술이죠. 브리즘 매장에 비치한 전문 스캔 장비는 아이폰의 페이스 아이디 장치를 크게 키운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얼굴 정보를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해 안경을 제작하는데 활용할 정보를 구축합니다. 스캔 장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앱도 개발했습니다.”

브리즘의 성우석 대표. /더비비드

- 맞춤형 제품은 비싸다는 인식이 있을 텐데요.

“그 틀을 깨기 위해 정찰제로 판매해요. 안경테 하나당 21만 8000원이었던 가격을 10월부터 17만8000원으로 인하했어요. 주문이 늘어 원료 손실률이 낮아진 덕이죠. 받은 제품이 자신에게 맞지 않을까 하는 소비자의 불안을 덜기 위해 60일간 제품을 무상 보증하고 환불, 수리도 해줍니다. 서울 을지로, 강남, 여의도 등 브리즘 매장에서 안경을 맞출 수 있습니다.”

- 기업 입장에서 채산성이 떨어지지 않나요.

“3D 프린터의 최대 장점은 수백 장의 안경을 동시 생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100명 치의 얼굴 데이터를 수집하면, 100가지의 안경을 한 번에 만들 수 있어요. 이용자의 얼굴 스캔 정보를 입력하면 폴리아미드라는 분말 형태의 나일론 계열 소재에 레이저를 동시다발적으로 쬐어 안경을 생산하는 방식이거든요. 보통 맞춤 제품이 고가인 이유는 대량 생산이 불가하다는 점 때문인데, 브리즘의 안경은 맞춤이면서 대량 생산도 가능해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앱 발판으로 미국 진출 목표

벨기에 협력사 공장에서 성우석, 박형진 대표. /콥틱 제공

올해 10월까지 누적 이용자 1만2000명, 매출 30억원을 돌파했다. 작년 대비 2배 가까이 성장한 기록이다. 서울대기술지주, 나이스, 신한캐피탈, 일룸,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등에서 45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스마트 글래스가 아닌 안경으로 CES 혁신상을 받는 최초의 기업이 됐다. 수상을 발판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요.

“궁극적인 목표는 ' 투명한 안경 산업 문화’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어디서든 같은 가격,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우선 시장을 더 넓히고 싶어요. 얼굴 스캔 앱 개발을 완료했고, 내년 1월 미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앱으로 해외 이용자의 얼굴 정보를 수집해 한국 공장에서 제작,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안경 소재도 다양화할 계획이고요.”

-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팝업 스토어 개시 첫날, 을지로 위워크 건물에 찾아와주신 20분의 손님을 잊지 못해요. 그때 찾아와주신 분들을 통해 맞춤 안경의 가능성을 엿봤고, 그때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창업 아이템을 찾고, 공부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 창업을 시작했던 마음을 상기하며 힘든 시기를 버텨내는 것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