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인터뷰 장소에 앉자마자 길 대표는 자랑스럽게 제로브이를 꺼냈다. /더비비드

“제가 생각해도 황당했을 것 같아요. 원장이 갑자기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살균기기 스타트업 ‘내일엔’ 길민수(47) 대표의 직전 이력은 ‘길 수학학원 원장’이다. 운영하던 학원을 직원들에게 인계하고 택한 길이 발명가다. 2020년부터 1년 반 동안 엘리베이터 버튼 살균기 ‘제로브이’를 포함해 7개 제품의 특허를 출원했다. 두 달 반에 하나꼴로 발명을 한 것이다. 걸어온 길을 한순간에 전환한 길 대표의 발명기를 들었다.

◇자외선으로 엘리베이터 살균

제로브이 제품과 설치된 모습 /내일엔

길 대표가 개발한 제로브이는 자외선을 활용해 엘리베이터나 출입문의 버튼을 살균하는 기기다. 살균력이 검증된 UVA(장파 자외선)과 UVC(단파 자외선)을 쏘여서 살균한다. 버튼판 상단에 설치해 아래에 있는 모든 버튼을 살균하는 방식이다. 코로나 등 유해 바이러스를 99.9% 없앤다.

찢기거나 뜯어질 위험이 있는 항균 필름과 달리 영구적이고, 버튼이 잘 보이지 않는 문제도 저절로 해결했다.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oxH0eM)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스스로 그만둔 일산 유명 수학학원장

수학학원 강사 시절 길 대표 /본인 제공

전북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거침없는 성격 덕에 친구들에게 ‘별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2001년 대성그룹(에너지 사업 전문 기업)에 신입사원 대표로 입사했는데, 동기 중 가장 먼저 퇴사했다. 고분고분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상사의 부당 대우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2002년 수학 실력을 살려 학원 강사로 취직했다. 5년 후 ‘길 수학학원’을 스스로 차렸다.

-원래부터 무언가를 기획하는 걸 좋아했나요.

“ROTC 출신인데, 군 생활 할 때 행사기획서를 하도 많이 써서 뭔가를 기획하는 건 도가 텄어요.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입사 20일 차에 사고 예방 교육을 맡았어요. 이전 사고 기록을 요일, 시간, 성별, 나이별로 분석했죠. 점심 먹고 졸릴 시간인 1~2시에 사고가 제일 많이 나더라고요. 그때 ‘졸지 말고 커피 한잔하고 오세요’ 같은 안내방송 하는 걸 제안했어요. 그런 기획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현재 제로브이는 고양시의회, 서울 부민병원을 포함한 5곳에 설치돼있다. /내일엔

-수학 강사를 그만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산에서 꽤 유명한 학원이었어요. 고양외고로 출강도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재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기 싫어 2019년 말, 학원을 직원들에게 넘기고 계획 없이 쉬었어요. 건설 현장 일용직도 뛰었죠. 오랫동안 학원에만 있었으니까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3개월 동안 공백기를 가지며 ‘재밌으면서도 유용한 일’을 찾아 나섰어요. 목수, 기중기 운전사 등의 직업을 탐색했는대, 적성에 맞지 않더군요.”

-창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에 항균 필름이 붙기 시작하더군요. 취지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필름에 때가 묻잖아요. 미관상 좋지도 않고, 진짜 방역 효과가 있는 건지도 미심쩍고요. 저도 찜찜해서 어느 순간 손가락 대신 차 키로 버튼을 누르고 있더군요. 문득 ‘자외선을 엘리베이터 버튼에 비추면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어요.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아서 자외선, 그 중에도 단파 자외선(UVC)이 살균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자외선이 커튼처럼 내려와 엘리베이터 버튼 바이러스 사멸

길 대표가 개발한 엘리베이터 버튼 살균기 '제로브이'. /본인제공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로 결심하고 2020년 2월 내일엔을 설립했다. 개발 관련 기초 지식을 쌓은 후 같은 해 6월, 엘리베이터 버튼 살균기 ‘제로브이’ 개발에 착수했다. 설립 1년만인 지난 2월 특허 등록을 마쳤다.

-어떻게 살균되는 건가요.

“인체에 무해한 UVA(장파 자외선)와 살균을 할 수 있는 UVC(단파 자외선)를 함께 이용했어요. 엘리베이터 버튼 판 윗부분에 부착해서 작동하면 자외선이 조명처럼 내려와서 버튼 부분을 살균해요. 6초 만에 균을 죽일 수 있죠. 항균 필름은 균이 서식할 수 없도록 서서히 환경을 바꾸는 방식이라 이렇게 빨리 효과를 낼 수 없어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실험에서 99.9% 살균 효과를 검증받았습니다.”

반사각을 이용하지 않으면 빛이 고르게 퍼지지 않는다. /본인 제공

-개발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선 아이디어를 도안으로 그려봤어요. 공부를 엄청 했죠. 각종 자료를 통해 자외선과 살균 효과에 대해 샅샅이 찾았어요.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후 외부 업체를 통해 제품 디자인, 실물 모형 제작, 자외선 성능 실험 등을 거쳤어요. 이 업체 저 업체 가보면서 발품을 팔았죠. 제품 수정 과정만 수십 번 거쳤습니다. 시제품을 집 정수기에 붙여보는 등 곳곳에 제품과 관련된 것들이 나돌아다녀서 아내가 싫어했을 거예요.”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물론 있었죠. 제품을 처음부터 다시 갈아엎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어요. 사기도 당했죠. 제품 설계하고 실물 모형 만드는 데 3000만원을 달라 하더라고요. 40만원이면 되는 거였는데, 모르니까 눈 뜨고 코 베였죠. 쓰라린 기억이지만 전화위복의 계기도 됐습니다. 그 후부터 개발과정에 대해 더 악착같이 공부하게 됐으니까요.”

길 대표가 제작한 제로브이 도안 /본인 제공

-제품 개발에 적용한 원리가 있다면요.

“자외선이 골고루 분사되게끔 하는 게 어려웠어요. 원하는 부분에만 자외선이 가야 하는데, 파장 특성상 사방팔방으로 빛이 퍼지더라고요. 2차 곡면의 원리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반사판을 넣어서 각도를 15도 틀어주니 빛이 일직선으로 고르게 나오더라고요. 안에 붙어있는 반사판에 자외선을 쏘는 거죠.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그 반사된 자외선이 비치는 거고요.”

-혼자 개발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일단 제품의 원리는 아니까 자신 있게 뛰어들었는데, 세부적인 제작 과정엔 문외한이다 보니 힘들었죠. 저는 혼자인데 거래처는 여러 군데니까 ‘몸이 10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제가 잘 알고 있어야 주문을 정확히 내릴 수 있잖아요. 사소한 디자인부터 제조 과정까지 다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한 공장과는 회의만 70번 가까이했어요. 이제는 한 팀처럼 그분들이 피드백을 주세요.”

제로브이가 설치된 모습 /내일엔

설치가 간편하다. 버튼 상단을 깨끗이 닦은 후 제품 뒷면의 보호필름을 제거하고 붙여주면 된다. 배터리로 작동하는데, 3~4주에 한 번만 충전하면 된다..

제품 출시 후 다양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고양시의회 등 여러 대형 건물에서 단체 주문이 들어 오고 있으며, 서울부민병원 등 병원에 잇따라 출시됐다.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oxH0eM)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주요 타깃은 어디인가요.

“코로나19가 잠잠해져도 위생을 철저히 신경 써야 하는 병원에 집중하고 있어요. 병원 측에서도 ‘살균 효과는 물론이고 확실히 깔끔해 보여서 값어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개발한 제품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두 달에 발명 하나씩

길민수 대표 /더비비드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고 했다. 제로브이 출시 후 신제품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프로마커(골프공 마커), 선샤인(주방용 살균기), 메디박스(백신 등 의약품 운송박스), UV샤워(내시경 장비 살균기), 수도계량기 동파방지 장치 2종 등을 잇따라 개발했다. 골프공 마커는 특허 등록을 마쳤고, 나머지 5가지는 출원 상태다.

-요즘 주력하는 제품은 뭔가요.

“주방용 살균기 ‘선샤인’입니다. 제로브이와 마찬가지로 UVA와 UVC를 이용했어요. 부착된 센서로 움직임을 감지해요. 싱크대를 이용하고 있을 때는 살균이 멈췄다가 사람이 가고 나면 자동으로 30분 동안 살균이 돼요. 저희 집에 설치해봤는데 곰팡이가 없어지더라고요. 주부들에게 호응이 많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주방용 살균기 '선샤인', 집에 직접 부착해보며 개발했다. /본인 제공

-학원 원장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아직 개발한 제품들로 수익이 나지 않으니까 지금 당장은 학원 원장이 경제적으로 나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진정 발명가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해요. 이제 막 박차를 가했으니까 앞으로 내일엔이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가 큽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계속 현실화해서 일상을 편하게 해주는 발명왕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창업 전 관련 분야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세요. 요즘엔 옛날처럼 책만 보고 공부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저는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보면서 다양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그리고 직접 발로 뛰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발품을 팔면서 이리저리 조언도 구하고 꼼꼼히 따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