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부터 한 카드사가 운영하는 간편결제 플랫폼에 다른 업체 카드들도 등록해 쓸 수 있게 될 전망이다. KB페이에서 KB국민카드가 아닌 현대카드로 결제하거나, 신한페이에서 삼성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주요 카드사들은 지난달 여신금융협회의 카드사 모바일 협의체 회의에서 이러한 타사와의 앱카드 연동에 합의했다. 현재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빅테크 업체가 주도하는 간편결제 ‘페이(pay)’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경쟁사끼리 손잡기로 한 것이다. 간편결제는 스마트폰에 미리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를 등록해두고, 단말기를 접촉하거나 바코드 인식, 지문 인식, 비밀번호 입력 등을 통해 간단하게 결제하는 서비스다.

◇오픈뱅킹 이어 ‘오픈페이’ 시대

은행들이 오픈뱅킹으로 한 앱에서 타행 계좌 입·출금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카드사들도 일종의 ‘오픈페이’ 구축에 나섰다. 서비스는 이르면 연말부터 이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7개 전업 카드사(신한·KB국민·삼성·현대·하나·롯데·우리)와 BC·NH농협카드는 이를 위한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규격을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예컨대 현재 신한페이 앱에서는 신한카드 외에 다른 카드들은 등록할 수 없는데 이를 경쟁사에 열어놓겠다는 뜻이다.

카드사들이 ‘적과의 동침'에 나선 배경에는 카드 업계의 위기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삼성페이는 국내 카드사 대부분을 등록해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네이버페이는 최근 신용카드처럼 월 30만원까지 후불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카드 업계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일평균 간편결제 서비스 건수는 1455만건, 이용 금액은 4492억원이었다. 전년보다 각각 44%, 42% 증가한 규모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쿠페이(쿠팡) 등이 이러한 페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이용 금액 비율은 65.3%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경쟁사 은행 계좌도 ‘페이’에 연동해 결제

현재 5대 금융지주사 모두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를 출시했거나 할 예정이다. 금융지주사들은 그동안 경쟁 업체들과 협력을 꺼렸지만, 판도가 바뀐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간편결제를 경쟁사까지 허용하면 고객 데이터를 뺏기고 시장 선점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며 “하지만 빅테크 업체 공세가 강해지면서 오픈페이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KB금융그룹이 금융지주로서는 처음 간편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아직 카드는 KB국민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지만, KB국민은행 계좌와 연동하거나 KB국민카드 포인트, 상품권 등으로도 결제가 가능하다.

신한금융그룹은 기존 신한카드 모바일 앱 ‘신한페이판’을 지난달 간편결제 플랫폼 ‘신한페이’로 업그레이드했다. 역시 신한카드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신한은행 계좌가 있으면 연동해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신한금융은 계좌 공유 대상을 증권, 제주은행, 저축은행 등 자회사뿐 아니라 지방은행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금융도 연내에 타은행 계좌를 연동하고 교통카드 결제가 가능하게 하는 등의 기능을 넣은 결제 앱 ‘우리페이’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하나금융은 오는 11월 출시할 ‘원큐페이’에 카드 혜택을 신청하고 조회하는 기능이 있는 고객센터 기능 등을 넣어 통합 앱을 만들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