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무용품을 팔고 있는 A씨는 지난해부터 사람들의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주문이 늘었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정산받지 못한 판매 대금 때문이다. 상품을 발송하고 정산받기까지 길게는 두 달 이상 걸리면서 판매 상품 재고를 추가로 확보할 여력이 없다. 대출이라도 받아 상품 구입 대금을 마련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사업 준비 과정에서 받은 대출금이 있는 데다가 신용 점수도 낮아 추가로 대출을 더 받기가 쉽지 않았다.
현대캐피탈은 A씨처럼 판매 대금 정산이 늦어져 걱정하는 중소상공인 등을 위해 온라인 플랫폼 11번가, 이동통신사 SK텔레콤과 손을 잡았다. 판매 품목과 구매자 리뷰 등 비금융 데이터를 신용 평가에 활용해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한 중소상공인에게 금융 혜택을 주는 게 골자이다.
◇구매자가 구매 확정 안 해도 판매액 80% 자동 정산
현대캐피탈·11번가·SK텔레콤 3사는 지난해 5월 중소 온라인 판매자 지원 서비스인 ’11번가 이커머스 팩토링’을 출시했다. 팩토링은 금융기관이 기업의 매출채권을 매입한 후 이를 바탕으로 대출해주는 제도다. 최근 서비스에 ‘자동 선정산’과 ‘미래 선정산’ 기능을 추가했다. 자동 선정산은 11번가에서 구매한 물품을 판매자가 발송 완료하면 판매 금액의 80%를 자동으로 정산해주는 서비스이다.
통상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판매 대금 정산은 구매자가 물건을 받고 ‘구매 확정’을 해야 이뤄진다. 구매자가 결제 후 주문을 취소하거나 물건을 받은 후 반품·교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매자가 물건을 받고 구매 확정을 한 뒤 판매 대금을 정산해줘야 하는데 업체마다 정산 기간이나 주기는 내부 정책에 따라 다르다. 국내 한 전자상거래 업체는 판매 대금을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 범위로 산정하고, 다다음 달 5~10일에 정산을 해준다. 만약 판매자가 이달 1일에 물건을 판매한 경우 최종적으로 돈이 들어올 때까지 60일 이상 걸리는 셈이다. 고객이 구매 확정을 해도 며칠이 지난 후 판매 대금 일부만 정산해주고 나머지는 다다음 달 1일에 지급해주는 전자상거래 업체도 있다. 또 다른 업체는 신규 회원에게만 제한적으로 정산을 빨리 해주기도 한다.
11번가 등은 구매 확정 다음 날 판매 대금을 지급하고, 고객이 구매 확정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배송 완료 7일 후에는 자동으로 구매를 확정해 정산했다. 여기에 지난 2월부터 현대캐피탈·SK텔레콤 등과 발송 완료 후 판매 금액의 80%를 매일 자동 정산해주는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판매자 편의가 커진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최장 일주일까지 기다리기 전에 판매 대금 일부가 들어와 자금 회전에 도움이 된다. 이 같은 자동 선정산 서비스는 최대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제공된다. 수수료는 최초 3개월까지 무료이고 업계 최저인 0.1%를 제공한다.
◇매출·반품 이력·리뷰 분석해 중소상공인 자금 융통 지원
현대캐피탈은 11번가·SK텔레콤과 ‘미래 선정산’ 서비스도 출시했다. 판매자의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예상 매출을 산출하고 이를 대출 한도와 금리에 반영해 빌려주는 서비스이다. 기존 금융권 대출은 금융 정보를 기반으로 신용 평가를 하는데, 사업 자금 마련이 어려운 중소상공인을 위해 매출, 정산, 주문 취소 및 반품 이력, 구매자 리뷰 등 비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을 평가하는 것이다. 개인신용평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중소상공인이 이용 중인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등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도 추가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 판매자 미래 매출을 최장 6개월까지 한 번에 정산해준다. 일례로 11번가에서 월 매출 1000만원대인 한 판매자는 매출 실적에 근거해 4000만원을 이용하고 판매 수익 등으로 3개월 만에 이를 상환하기도 했다.
이 서비스는 11번가에서 판매 경력이 1년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고, 온라인 신청 당일 심사 승인을 받으면 30분 내로 입금이 이뤄진다. 업계 최대 수준인 7000만원 한도까지 가능하며, 수수료는 월 0.46% 수준이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온라인 판매로 생계를 꾸리는 중소상공인은 물품을 들여오기 위해 목돈이 필요하지만 기존 신용 평가 제도 아래에선 사업 자금 융통에 한계가 있었다”며 “제도권 신용 점수가 높지 않은 중소상공인들이 매출 실적만으로 목돈을 조달할 수 있어서 판매자들에게 호응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