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1부셸(27.2kg)당 10달러에 육박하던 대두의 국제 가격은 같은 해 3월 말 8달러 초반까지 하락했다. 코로나로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대두 시장도 싸늘하게 식었다. 하지만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2분기 들어 중국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대두를 비롯한 소비도 살아났다. 이후 상승세를 탄 대두 가격은 현재 당시보다 70% 가까이 급등했다.
원자재·곡물값 급등은 국내 물가에도 직격탄이 됐다. 식품 업체 풀무원은 지난달 두부·콩나물 가격을 10~14% 올렸다. 2년 만의 가격 인상이었다. 대두뿐 아니라 밀 가격도 급등하면서 식품 회사들은 밀가루 등의 가격 인상도 저울질하고 있다. 식품 회사 관계자는 “한파·장마 같은 일시적 이유라면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리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초인플레이션 시대 오나
국제 원자재·곡물 시장에선 가격이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가 어렵다. 국제 옥수수 가격은 부셸당 5.5달러 선으로 작년 4월 대비 72% 상승했다. 설탕 가격은 78% 급등했다. 밀 가격도 30% 정도 상승했다.
곡물뿐 아니다. 산업의 핵심인 철·구리 등의 원자재값도 치솟았다. 특수강의 핵심 재료인 아연 값은 현재 톤당 2600달러로 10개월 만에 40% 이상 올랐다. 알루미늄·니켈 등도 같은 기간 40~60%가량 올랐다. ‘화학의 쌀’인 에틸렌은 톤당 900~1000달러 선에서 오르내리며 거의 3배 수준으로 뛰었다.
최근의 원자재 급등은 2010년대 초 원자재 수퍼 사이클을 연상시킨다. 당시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 자금이 풀리자,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오르내리고, 철광석 등의 값도 치솟았다. 최근엔 코로나 이후 중국·미국이 동시에 대규모 경기 부양에 나서는 데다, 수요 급증에 대한 기대감도 가격 오름세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작년 상반기에만 3조 달러의 긴급자금을 공급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고용 증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안동현 교수는 “이런 상태에서 전 세계적으로 임금 인상이 시작되면 가격이 폭등하면서 초(超)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은 그런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 원자재값 상승이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풍부한 유동성이 주식뿐 아니라 원자재 시장에도 대거 유입됐다”며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원자재 시장에 낀 거품도 꺼질 것”이라고 말했다.
◇中企 수익성에 직격탄
원자재값 상승은 소비자뿐 아니라 중소 제조 업체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부품 제조에 사용되는 고철·구리 등의 가격 상승으로 비용은 치솟는데, 납품 가격은 단기간에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충남 천안에 있는 기계 부품 업체인 S사는 올해부터 생산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작년 말까지 1kg에 400원 초반이던 고철 가격이 올해 들어 500원대 중반까지 뛰었다. 원재료값은 30% 올랐지만, 납품 가격은 단 한 푼도 올리지 못했다. 이 회사 대표는 “코로나로 가뜩이나 주문이 줄었는데, 발주처에다 ‘납품값 올리겠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 한다”고 말했다.
특수강 제조 업체인 K사는 최근 아연을 제때 구하지 못해 생산 차질을 빚었다. 아연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부 업체가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웃돈을 주고 간신히 구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원청 업체와 6개월마다 납품가를 조정하지만, 원자재값 상승분을 모두 반영하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영세 업체로선 견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