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41)씨는 ‘사내(社內) 1호 코로나 확진자’가 될 것을 두려워해 몰래 코로나 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달 전 자신이 다니던 직장 근처의 헬스장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사무실 동료에겐 비밀로 한 채 근처 병원에 가서 자비 11만원을 들여 코로나 검사를 받은 것이다. 김씨는 “확진자와 헬스장 이용 시간과 경로는 달랐지만 ‘1호 확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공포감에 어쩔 수 없이 남몰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음성 판정이 나온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일러스트=안병현

코로나가 연일 확산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코로나 낙인(烙印)’ 공포가 ‘코로나 확진’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해 누적 확진자가 4만명까지 돌파한 상황에서, 이제는 ‘따가운 시선에 대한 공포’를 치유할 심리적 방역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11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0’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우리 사회의 ‘코로나 낙인’에 대한 두려움은 코로나란 감염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공포를 넘어설 정도였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올해 총 7차례에 걸쳐 성인 남녀 1000명씩을 상대로 ‘코로나 국민인식조사’를 시행한 결과, 올 상반기엔 대체로 코로나 낙인 두려움이 코로나 확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 정도로 공포감이 컸다. 조사 설문 가운데 ‘확진될까 두렵다’와 ‘확진이란 이유로 비난받고 피해 입을 것이 두렵다’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지난 3월의 경우 각각 58.3%와 68.3%로, 낙인 공포가 확진 공포보다 10%포인트 높았다.

이 같은 코로나 낙인 공포는 4월과 5월 조사에서도 60.2%와 57.1%로 60% 안팎을 유지했다. 이후 8월 이후 코로나가 재확산하고, 10월 들어 다시 확산세가 이어지며 ‘낙인 공포’를 느끼는 이들도 더 늘었다. 지난 10월 말 조사에선 10명 중 7명 정도(67.8%)가 낙인 공포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에 생업이 걸린 자영업자들도 ‘코로나 가게’로 찍히지 않으려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 마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송모(35)씨는 “혹시라도 ‘코로나 식당’이란 낙인이 찍힐까 봐 세정제를 하도 썼더니 손에 습진이 생길까 봐 걱정될 정도”라고 했다.

이번에 발표된 통계 조사에선, 우리나라 국민이 ‘방역’과 ‘인권’이 충돌할 때 대부분 ‘방역’을 지지했다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유럽이나 미국 일각에선 사교 모임 자제나, 휴대전화 위치 정보 활용 등을 인권침해로 보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잖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유 교수팀의 국민인식조사 2차 설문에서 ‘방역 대책이 강화돼야 할 때라면 인권 보호는 후순위로 미뤄둬야 한다’에 찬성하는 응답은 10명 중 8명(78.2%)에 달했다.

앞서 지난 3월 갤럽 인터내셔널이 28국 성인 2만46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자의 80%가량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의 권리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미국(45%), 독일(71%), 영국(72%) 등에 비해 높았고, 28국 평균(75%)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였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교수는 “‘코로나 낙인'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감염 경로를 밝히기 어려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자발적 진단 참여를 회피하게 만들 수 있어 자칫 코로나 확산이 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인식조사를 진행한 유 교수는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치료를 잘 받으면 전파력이 점차 줄어들고, 완치 이후엔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도 대중에게 잘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