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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글로벌 대표 가치주 ETF(상장지수펀드)와 성장주 ETF가 각각 받아 든 성적표다. 최근 국내외 증시에는 ‘가치 투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기술주가 연일 신고점을 갈아치우는 동안에도 지지부진한 가치주 실적에, 투자자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는 것이다.
지난 100년 간 ‘투자의 정도(正道)’로 여겨진 가치 투자, 이제는 정말 유효하지 않은 전략이 됐을까? 이를 몇몇 회사 주가 흐름만 보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방대한 데이터로 분석해보려는 투자자도 있다. 미카일 사모노프 투센츄리즈 대표는 “올해 미국의 가치 투자 수익률은 수익률이 최정점이었던 2007년과 비교해 60% 넘게 낮은 수준”이라며 “19세기 자료까지 모두 모아 수익률을 분석해봐도 가치 투자의 수익이 이 정도로 낮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본인을 ‘퀀트(수리) 투자자’라고 소개하는 그는 기존 가치 투자의 맹점을 보완해 ‘플러스 알파’를 찾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을 최대한 살려 싣는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올해 가치 투자 실적은 어땠나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일부 재무지표가 낮은 기업의 주식을 골라 투자하는 기법은 올해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가치 투자’는 최근 몇 년간 실적이 안 좋았는데, 올해는 특히나 실적이 저조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주가가 폭락하던 지난 5월 가치투자의 수익률이 실제로 얼마나 안 좋은지 분석해 보기위해 19세기부터 올해까지의 미국의 가치 투자의 수익률을 조사했다. 당시(5월)의 가치 투자 수익률을 가치 투자 수익이 정점을 기록했던 2007년과 비교해보면 59% 낮은 수준이었다. 지난 10월 다시 계산해보니 60% 넘게 낮은 수준으로 더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역대 최악의 수준이고,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왜 이렇게 수익률이 낮아졌을까.
“기업 가치에서 무형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식의 가치를 판단할 때 무형 자산을 고려하는 비중이 대략 10~20%에 불과했다. 많은 기업이 제조업이었기에 공장, 자본, 기계설비 등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PER, PBR에 많은 뜻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무형 자산이 전체 기업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기존 지표들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에 가치주와 성장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도 무형자산을 고려했을텐데.
"맞다. 버핏 또한 이전 세대 가치 투자자와 차별되는, 브랜드 가치 같은 새로운 가치 평가 기준을 도입해 도약했다. 코카콜라에 투자했을 때 공장 가치만 본 것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와 기업 문화, 그리고 경영진 등 무형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높은 점수를 줬기에 투자했던 것이다. 그가 50년 넘게 투자에 성공한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도 상황이 더 달라졌다. 더 많은 대안 데이터를 살펴봐야 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활동부터 내부 혁신 문화, 브랜드 가치, IT 시스템 등 장부에 적히지 않는 무형 자산을 과거보다 4배쯤은 더 고려해야 한다. 이런 가치들이 기업의 미래 성장·생존 가능성과 연관이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갈수록 많은 전문 투자자들이 이러한 무형자산을 고려해 기업의 가치를 매기려 시도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가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기다리고만 있다면, 당신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도 기회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치주 투자 실적이 저조하다면, 투자를 만류하는가.
“아니다. 좋은 가치주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가치주 투자가 외면받을 때 진정한 가치주를 고르는 것이야 말로 ‘역발상’ 투자가 아닐까. 사람들이 올드 이코노미, 즉 전통 산업을 워낙 비관적으로 보고 있기에 가격이 제값도 낮아진 기업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배당을 많이 주면 가치주이고, 혁신에 치중하면 성장주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분류 방식도 버려야 한다.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배당을 많이 주고 재무지표가 훌륭하다고 해서 반드시 ‘질 좋은 기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무지표를 훌륭하게 보이게 하려 혁신을 멈춰버리고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는 기업은 가치주로 보기 힘들다. 혁신과 배당 둘다 잘하는 회사가 있고, 또 둘 다 못하는 회사도 부지기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종목이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바뀌었을까
"가치주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에너지주는 2007년까지 이어진 유가 상승으로 성장주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당연히 아니다. 도리어 테크주는 2000년대 초반 나스닥 거품 붕괴 이후 성장률이 매우 낮았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성장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금의 테크주 열기에 버금가는 투자처는 신흥국 주식·채권이었다. 지금은 대표적인 가치주 취급을 받는 은행·금융주도 2000년대 초반엔 성장주에 가까웠다. 금융 규제 완화 여파로 금융기관들이 빠르게 덩치를 불렸기 때문이다.
또한 가치주로 변했다고 해서 다시 성장주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죽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엔 1990년대 전형적인 기술주이자 성장주였다가 2000년대 들어선 가치주에 가까워졌고, 최근엔 (클라우드로의 사업 전환 등으로) 다시 성장주로 돌아갔다."
어떤 기업이 다음 시대의 성장주일까.
“지금 미국 시장에선 기술 기업 주식들이 주목받고 있고, 특히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온라인 상거래 기업들의 대표적인 성장주로 여겨지고 있다. 다가올 1~2년간은 헬스케어 주식이 지금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마도 에너지주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지도 모른다. 우주 관련주가 더 각광받을 수도 있고, 원자재의 시대가 돌아올 지도 모른다. 아시아도 미국 시장과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렵나
“주가가 얼마나 비싸냐, 싸냐는 문제는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2008년에 보험사인 AIG에서 일했다. 회사가 파산했었고, 끔찍한 일들을 생생하게 겪었다. 투자자로서 2010년~2012년은 끔찍한 한해였다. 강세장이 끝나는줄만 알았다. 그런데 2013년엔 연 수익률이 30%에 달했다. 당시 누군가 나에게 와서 주가가 지금보다 2배는 뛸 것이라고 했다. 미친 소리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의 주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미국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미국 부동산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부동산 가격도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어떤 투자 전략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는가.
“주식이든 채권이든 무형자산 가치가 높은 좋은 기업 주식을 ‘존버(사고 장기간 묻어두기·buy and hold)’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 분산 투자까지 하면 내가 더 해줄 말이 없다. 좋은 가치주를 사두고 10년 후 계좌를 열어본다면 분명 좋은 수익을 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때가 많다. 딱히 버블 붕괴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는 않은 일이다. 불안감과, 긴장감 그리고 저조한 수익율은 프로 투자자든 초보 투자자든 언제나 계획을 흐뜨려트리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더 좋은 투자자가 되려면, 좋은 주식을 가만히 둔 채로 세상의 흐름을 읽으며 기업 평가 방식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주식을 사면서도 버블 붕괴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나 어떻게든 버블 붕괴를 피해보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버블 붕괴를 걱정해 아무것도 안한다면 그것 또한 기회 비용이 발생하는 행동이다. 2~3년 전부터 버블이 붕괴할 것이라며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강세장에서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놓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요리조리 타이밍을 재며 폭락장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다보면 진이 빠지게 된다. 실제 위기가 갑작스레 닥쳤을 때 급격하게 떨어진 주가를 보곤, ‘내 전략이 틀렸다’며 자신감을 잃게 될 것이다.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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