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기업을 하지 말라는 법 아니냐.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는지 모르겠다.”(강승구 케이원전자 대표)
“IMF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한 것은 유보소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보소득이 없었다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정달홍 성보엔지니어링 대표)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초과 유보소득 과세 관련 현장 간담회’에선 “제도를 폐지하라”는 중소기업인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 때문에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비상금’과 같은 유보소득까지 세금을 떼어가면 생존조차 위태롭다는 것이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이른바 ‘초과 유보소득세(배당간주세)’는 오너 일가 지분이 80% 이상인 회사(개인유사법인)가 배당가능소득(당기순이익)의 50% 또는 전체 자본의 10%가 넘는 돈을 사내에 현금으로 쌓아둘 경우 그 돈을 주주들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해 소득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오너 일가 지분이 80% 이상인 회사는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인데 이들이 사내에 모아둔 비상금에도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개인이 회사를 세워 소득세를 탈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당초 계획대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경영계에서는 “기업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먼저 정부가 정한 오너 일가의 지분율 80%나 당기순이익의 50% 같은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개별 기업의 사정도 모르는 정부가 어느 정도 유보소득이 적정한지 획일적으로 정해주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했다. 또 실제 하지도 않은 배당을 했다고 ‘간주’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있다.
연구·개발(R&D), 설비 투자 등 기업이 유보하려는 목적은 고려하지 않고 기준만 넘으면 과세를 하는 점도 문제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80% 이상인 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절반에 이른다. 대표 1명이 지분 100%를 가진 1인 기업도 전체 기업의 31%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선 정부가 중소기업을 상대로 세금 쥐어짜기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현금을 많이 쌓아둔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에도 잘 버티고 있다”며 “유보소득이 위기 상황에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오히려 이를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4차 산업으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업들이 유보소득을 충분히 적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유보소득 과세로 잠깐 정부의 세금 수입은 늘 수 있겠지만 기업 투자와 성장이 멈춘다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도 한목소리로 유보소득세의 문제를 꼬집고 있다. 이달 초 열린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정성호 의원(민주당)은 “중소기업, 소규모 가족회사의 부담이 가중된다”고 했고 김태흠 의원(국민의힘)은 “미래에 더 큰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황금알 낳을 회사에 ‘제2 법인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호 의원(국민의힘)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경고했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법인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시행령을 마련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현재 기재부가 검토 중인 시행령에는 고용이나 투자, 부채 상환, R&D에 쓴 돈은 유보소득에서 차감해주는 등 일부 보완책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당해 고용, 투자, 부채 상환, R&D에 쓴 돈이나 앞으로 2년 이내 그러한 목적으로 쓸 돈은 유보소득에서 빼준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보통 기업들은 인건비 비율이 사업소득의 절반 정도가 된다”며 “이를 유보소득에서 빼면 대부분 기업들은 유보소득세를 낼 일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자·배당소득, 부동산 임대료, 산업재산권 사용료 등 본 사업과 관계없는 수입이 2년 연속 총수입의 50%를 넘긴 회사는 이런 예외를 적용해주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벤처기업은 아예 유보소득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기재부는 이번 주 중 시행령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고 12월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1월 초 바로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부 보완책이 가미된 시행령이 나오더라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기재부가 뒤늦게 적용 대상을 줄인다고 하지만 일단 유보소득세를 도입하고 나면 언제든지 정부 마음먹기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 있다"며 “안 그래도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더 힘들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