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태식 현대차 책임은 두 달 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든 협업 소프트웨어 팀즈(Teams)를 쓰고 있다. 각종 업무 서류를 MS의 클라우드(인터넷상 저장 공간)에 저장해두면 상사들이 빨리 피드백을 준다. 후배들도 실시간으로 자료를 수정한다. 김 책임은 “그동안 ‘오토독스’라는 사내 업무 프로그램을 써왔다. 보안에 집중하다 보니 작성자가 아닌 사람이 수정하려면 팀장 결재 필요 등 공동 작업에 장벽이 많았는데 팀즈 이후 절차가 훨씬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2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는 지난해 11월 시작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의 고객 센터에 ‘서비스나우’의 클라우드 플랫폼을 도입했다. 이 플랫폼의 소프트웨어는 ‘로봇 직원’과 ‘인간 직원’이 답변할 질문을 알아서 분류하고, 소비자 답변이 끝난 후 추가 조치가 필요하면 자동으로 관련 부서에 통보한다.

/그래픽=김현국

글로벌 대기업부터 직원 다섯 명인 스타트업까지, 요즘 직장인의 업무는 ‘남의 회사’ 클라우드 속에서 돌아간다. 과거엔 우리 회사만을 위한, 우리 회사에 의한 프로그램으로 업무 처리를 했다. 이제는 IT(정보기술) 회사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 회사가 필요한 것을 골라 구독해 쓰는 일이 빈번해졌다. 사내 메신저는 슬랙이나 카카오웍스가, 시커먼 결재철은 서비스나우가, 캐비닛은 노션이, 회의실은 줌과 MS 팀즈가 대체하는 식이다.

회의·결재·업무지시 등 직장인이 하는 모든 업무를 클라우드 속에서 대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계속 개발돼 쏟아지고 있다. 이런 업무 도구를 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한국어론 보통 ‘싸스’라 발음)라 부른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만들어 오다 최근 MS·카카오 등 IT 대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로 물리적인 업무 공간보다는, 가상의 사무 공간이 중요해지면서 SaaS는 요즘 가장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장하는 소프트웨어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10년 전 130억달러 정도였던 SaaS 시장 규모는 올해 10배가 넘는 1570억달러로 불어났다. 3년 후면 2000억달러(약 225조원) 이상으로 불어나리라고 전망된다. Mint가 지금 가장 무섭게 성장하는 소프트웨어인 SaaS의 대표 주자들을 인터뷰해 이 시장의 현황과 전망을 들었다. 맥더멋 서비스나우 CEO, 이반 자오 노션 창업자, 에란 진만·로이 만 먼데이닷컴 공동 창업자, 김대현 토스랩(잔디) 대표, 이석영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부대표 등이다.

◇회의·결재·계약먼… ‘남의 소프트웨어’ 구독해 해결

SaaS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하지 않는다. 구글 크롬 등 인터넷 웹브라우저로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하기만 하면 기능이 구현된다. 둘째, 소프트웨어 사용료를 매달 사용한 만큼 낸다. 전기를 쓸 때 발전소를 사다가 집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망을 통해 전기를 쓴 만큼 돈을 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돈을 벌 수 있고, 기업은 순발력 있게 업데이트되는 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모델이어서 수요, 그리고 공급 모두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오뚜기 등은 부서마다 흩어져 있던 고객 정보를 통합해 관리하려 올해 초부터 세일즈포스 서비스를 쓰고 있다. 대웅제약은 영업사원과 해외 출장자들이 밖에서도 쉽게 보고서를 기안할 수 있도록 협업 소프트웨어 네이버 웍스로 결재를 완료한다. LG화학은 모바일로도 어디서나 업무를 볼 수 있게, 현대자동차처럼 MS 팀즈를 도입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IT 업계에선 상사가 업무를 배분하고 진척 속도를 체크할 수 있는 아사나, 업무용 메신저 슬랙 등 각종 업무 도구 등 10개 넘는 SaaS를 쓰는 스타트업도 흔해졌다.

SaaS 펀드2

“SaaS는 소프트웨어가 출시되는 즉시 꾸준한 현금(구독료)이 들어옵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수익성’이 비교적 쉽게 확보되는 모델이죠." 일정·업무흐름·문서철 기능을 하는 소프트웨어인 ‘노션’ 자오 창업자는 요즘 SaaS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노션은 지난 4월 불과 36시간 만에 투자금 5000만달러(약 620억원)를 전부 모았다. 토스랩의 업무 툴 잔디도 지난 8월 벤처시장이 얼어붙는 와중에 140억원을 모았다.SaaS가 돈을 잘 벌 잠재력을 갖췄단 뜻이다.

◇"Saas 아직 초기, 10배 넘게 성장 예상"

SaaS의 원조 격인 세일즈포스 주가는 올 들어 40% 올랐고, SaaS 기업 중 가장 ‘핫한’ 줌의 주가는 올 들어 7배 넘게 올랐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원격 협업을 쉽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절실해져 가입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주요 SaaS 기업을 모아둔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은 나스닥 지수 상승률의 2배가 넘는다.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는 최근 젠데스크 등 SaaS 기업 여섯 곳 주식을 왕창 샀다. 실리콘밸리와 월가 모두가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것이다.

“간단한 이치입니다. 쓸모없는 걸 굳이 돈 내고 쓸 필요는 없겠죠. 서비스나우 플랫폼은 기업들이 1달러를 내면 평균 5달러를 아끼게 해줍니다.” 맥더멋 서비스나우 CEO는 국내외 사무실의 SaaS 열풍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회사는 여러 부서가 업무를 같이할 때 자동으로 각 부서 간 연락·보고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각자 업무에만 집중하고 타 부서에 업무 요청하며 낭비되는 시간과 부외 업무를 줄여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예컨대 미국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은 이 플랫폼을 고객센터에 도입해 고객 문의를 더 빨리 분류하고, 불필요한 디지털 도구 8개를 버려 연간 운영 비용을 종전보다 250만달러(약 28억원) 줄였다.

로이 만 먼데이닷컴 창업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이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듯 보이겠지만, SaaS는 아직은 경쟁·협력 구도가 불분명한 거대한 진공상태와 같은 초기 상태"라며 “기업들 앞으로 SaaS에 지금보다 10배 넘는 돈을 쓰리라고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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