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6월 이른바 ‘8인치(200mm) 도박’을 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은 주로 6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이용했다. 8인치를 쓰면 생산량은 많지만, 공정이 복잡하다. 기술이 일본 반도체 업체들보다 한 수 아래였던 삼성으로선 실패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8인치 공정을 시작했다. 일본 반도체에 대한 물량전을 거는 선전포고였다. 이 한 수(手)로 이 회장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판을 뒤집었다. 일본 반도체 CEO들이 주판알만 튀길 때 과감한 결단으로 승기를 잡은 것이다. 한때 1~5위를 휩쓸던 NEC,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D램 제조사들은 거의 소멸했고,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약 40%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등을 지키고 있다.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회장에 취임해 2014년 5월 10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질 때까지 9658일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그가 취임할 때 삼성그룹은 매출 9조9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을 내는 동아시아 변방(邊方)의 기업에 불과했다. 2018년 삼성 매출은 39배인 386조6000억원, 영업이익은 359배인 71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30여년 전 1조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396조원으로 불었다. 이 회장이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 20개 첨단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브라운관 TV 버리고 휴대전화 불태워

삼성은 2006년 일본 소니를 꺾고 TV 1위에 올랐다. 그 전까지 한국 브랜드가 일제(日製)를 누르고 세계 1위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TV는 반도체 같은 부품과는 또 다르다. TV는 브랜드 파워, 마케팅, 디자인 등이 맞아떨어져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후발 주자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불량제품은 암” 애니콜 화형식 -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직원들이 불량 휴대폰·팩스·전화기 등을 태우고 있다. 이날 화형식 이후 삼성전자의 불량률은 크게 감소했다. 이 회장은“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불량은 암이다”고 질타했다. /삼성전자

이 회장은 이보다 3년 앞선 2003년 전체 판매량의 27%를 차지했던 브라운관 TV 생산을 중단시켰다. 대신 LCD 등 이른바 ‘평면 TV’에 집중했다. 미래 TV를 둘러싼 ‘게임의 법칙’이 바뀌는 시점에 맞춰, 아날로그를 버리고 디지털만 선택한 것이다. 삼성은 TV 시장에서 지금까지 14년 동안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95년 있었던 ‘애니콜 화형식’은 세계 최고를 이루겠다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1988년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한 삼성은 미국의 모토로라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불량률이 한때 11.8%까지 치솟자, 이 회장은 1995년 3월 9일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휴대전화 15만대(500억원어치)를 모아놓고 불태우도록 지시했다. 그는 당시 “휴대전화 품질에 신경을 쓰자”며 “무선 단말기를 한 명당 한 대 가지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했다.

이는 전 세계에 한 해 3억대 안팎의 스마트폰을 팔고, 폴더블(접히는)폰 등으로 스마트폰 혁신을 주도하는 지금의 삼성 스마트폰을 낳은 사건으로 기록됐다. 삼성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스마트폰 1위를 지키고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이끈 삼성그룹

◇"경영 철학은 기회 선점 전략"

삼성의 위상 변화는 매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명확하다. 1987년 한국 GDP 대비 삼성 매출의 비율은 8% 수준이었지만, 2018년엔 20%다. 현재 삼성 매출은 덴마크 GDP와 맞먹을 정도다. 삼성이란 한 기업이 판 물건값의 합이 한 국가가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합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건설에서 금융, 전자에 이르는 삼성그룹을 이끈 이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에게 항상 기회 선점을 강조했다. 세계 최고 기업이 되기 위해선 7~10년 뒤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예컨대 1990년대 이 회장은 10년 뒤엔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와 같은 지역에서 경쟁사들과 시장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며 지역 전문가 제도를 만들었다. 직원 수백 명을 보내 ‘회사 나오지 말고 그 사회를 알고 돌아오라’고 한 것이다. 2000년대 삼성이 수많은 세계 1위 제품을 탄생시킨 배경에는 이런 성장 시장을 공략할 인재를 미리 육성한 게 큰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초 파격적 연봉 인상과 성과에 따른 보상 체제를 도입해 국내외 인재를 흡수한 것도 이 회장이 추진한 전략이었다. 또 이 회장이 “주상복합 아파트 시대가 곧 온다”며 2002년 타워팰리스를 만들도록 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은 “대만 출장을 같이 갔을 때 이 회장이 대뜸 고급차의 내부를 하나씩 가리키면서 ‘손이 닿는 어느 곳에도 금속이 없다’며 이 정도로 철저하게 디자인을 고민해야 세계 최고가 된다고 했다"며 “지금처럼 복잡하고 힘든 세계 경제 상황에서 꼭 필요한 발언을 더 못 듣게 돼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