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J·LG전자·현대모비스·엔씨소프트 같은 국내 대기업 40~50곳은 최근 직원을 가르치는 ‘인공지능(AI) 선생님’을 도입했다. 카이스트 조교 3명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만든 ‘엘리스(elice)’란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동영상 강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래서 시간 때우기 식의 클릭 몇 번으론 통과가 불가능하다. 개인 능력에 맞는 문제를 받고, 스스로 코딩(coding·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짜는 일)해 풀어야 한다. 틀린 부분은 AI 선생님이 설명해주고 학생 수준이 높으면 문제 레벨도 올린다.
5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재원(34) 엘리스 창업자는 “엘리스는 본래 카이스트 학부생 시험을 채점하려고 조교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라며 “프로그래밍은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어서 답안 코딩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잘잘못과 대안을 제시해주는 게 가장 적확한 교육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5년 카이스트 박사과정 시절, 석·박사 과정 조교였던 김수인(31) 이사, 박정국(27, 석사과정) 개발리더와 함께 엘리스를 개발했다.
엘리스는 최근 삼성벤처투자와 산업은행·LB인베스트먼트·알토스벤처스에서 105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매출은 지난해 24억원에서 올해는 40억~50억원으로 늘 것으로 예상한다.
◇손코딩 시험의 벽을 깨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카이스트 코딩 시험은 강의실에 모인 학생 500명이 제시된 문제를 종이에 직접 써 제출했다. 소위 ‘손코딩’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석·박사 등 조교 30~40명이 한 방에서 치킨 시켜놓고 다음 날 새벽까지 채점해야 했다. 학기 중 과제물도 마찬가지로 ‘손코딩’이다. 조교들이 과제물 코딩을 한 줄씩 살펴봐야 했다. 우리나라 이공계 천재들이 모였다는 카이스트의 현실이었다. 김 대표와 같은 조교실 동료인 김수인·박정국이 “인공지능한테 채점을 맡기자”고 뭉친 것이다.
김 대표는 “프로그램명은 한국계 미국인인 지도교수 오혜연 교수의 미국 이름인 엘리스(alice)에서 첫 스펠링만 ‘e’로 바꿨다”며 “‘가상의 선생님’이란 뜻이다”라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엘리스를 실제 과제물 평가에 활용했다. 김 대표는 “같은 학부생이라도 실력 차가 큰데, 일부 학생은 일부러 채점자 능력을 테스트하겠다면서 ‘이것 한번 찾아보라’고 어려운 코딩을 한다”며 “베껴서 제출한 과제물도 잡아내고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면 원격 지원도 가능하게 개발했다”고 했다. 그래도 카이스트는 시험만큼은 손코딩을 고수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닥치자 올 4월과 6월 필수 과목 기초 프로그래밍 중간·기말시험을 학생들이 원격으로 엘리스에 들어와 치르게 했다. 창업 5년 만에 작은 목표 하나를 달성한 셈이다.
◇SK 등 기업 40~50곳서 도입
카이스트에서 검증된 AI 선생님이라는 소문에 대기업과 정부도 손을 내밀었다. 김 대표는 “대기업은 직원에게 인공지능과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 하는데 마땅한 수단이 없었고, 고용노동부도 대학은 취업난인데, 기업은 고용난인 상황을 풀기 위해 취업 준비생에게 인공지능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고객 수십 곳을 확보한 것이다.
회사 분위기는 여전히 조교 연구실 같다. 그는 “창업할 땐 자본금 개념도 몰랐고 네이버가 창업자 3명에게 1000만원씩 준 ‘오픈소스 교육 프로그래밍’ 장학금으로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설립 직후엔 네이버가 1억원을 투자했고, 2018년엔 미국계 벤처캐피털(VC)인 알토스벤처스가 28억원을 투자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다니다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와 워털루대 산업공학과를 나왔다. 캐나다 통신업체 텔러스에서 근무하다 퇴사해 2012년 카이스트 석사로 입학했다. 그는 “인공지능으로 교육자가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돕고, 교육을 혁신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