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전세 계약 연장 통보) 행사로 아파트 매매 계약이 중단된 가운데, 매도인인 홍남기 부총리뿐 아니라 매수인과 세입자까지 관련 당사자 3명이 모두 전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로 확인됐다.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새 임대차보호법이 오히려 세입자들을 ‘불의의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제16차 한-중 경제장관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매수자도 집주인 실거주로 방 빼줘야 하는 세입자

16일 홍 부총리 소유의 경기 의왕시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홍 부총리의 집을 사기로 계약한 매수인은 현재 전세를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공인중개사는 “매수인도 전세를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해서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매수인은 전셋값이 너무 올라 “차라리 대출받아 집을 사겠다”며 급매로 나온 홍 부총리의 집을 계약했다가 계약이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유권해석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부터 시행된 임대차보호법 등을 적용할 경우 매수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전세 계약 만료 6개월 전에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마쳐야 한다. 그런데 홍 부총리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의 전세 계약은 내년 1월까지로 돼 있기 때문에 이 요건을 맞출 수 없다.

매매 계약이 무산될 경우 매수인은 ‘전세 난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매매 계약을 한 8월 이후 두 달여간 전셋값이 모두 올랐기 때문이다. 전셋집을 찾기도 어렵다.

매매 계약 당시 나가겠다고 했다가 태도를 바꿔 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임차인도 다른 전셋집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어서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인근 전세금이 2억원 가까이 폭등한 데다 주변의 전세 매물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에 전세 살고 있는 홍 부총리도 집주인이 살겠다고 해서 내년 1월에 집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다. 홍 부총리가 살고 있는 마포 아파트의 전세 가격도 2억원 이상 오른 데다 매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부동산은 매일 ‘을들의 전쟁’"

논란의 핵심은 임차인의 갱신청구권이다. 여당이 지난 7월 31일 갱신청구권을 포함한 새 임대차보호법을 기습 통과시키면서 ‘재앙’이 시작됐다. 임차인은 계약 만료 전 6개월부터 1개월 사이 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2년 더 살 수 있다. 집주인은 실거주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이를 거절할 수 없다.

문제는 유예 기간도 없이 갑자기 지키라고 하니 부동산 시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임대차법 시행 당시 부동산 전문가들이 가장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했던 사례가 바로 이번 경우처럼 세입자가 사는 집을 실거주하려는 매수인에게 파는 경우다. 공교롭게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 수장이 ‘시범 사례’가 되어 전세 난민 처지가 된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아파트로 얽힌 매수인·매도인·세입자 관계

A 공인중개사는 “그동안은 서로 협의하며 문제를 풀었는데 새 임대차법 때문에 엉망이 됐다”며 “모두가 협의를 하는 대신 ‘법대로 하자’며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B 공인중개사는 “모두가 피해자인 가운데 서로 ‘전세 난민’ 폭탄을 돌리는 상황”이라며 “요즘 부동산에선 매일 ‘을(乙)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난 15일 국토부는 매매 계약을 할 때 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땜질 처방’이란 지적이 나온다.

결국 매매가 불발할 경우 홍 부총리는 위약금을 물 수 있다. 이 경우 임차인은 2년을 더 살 수 있지만, 매수인은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을 맞는다. 홍 부총리도 위약금은 위약금대로 물고 1가구 2주택(세종시에 1분양권 보유) 상황은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모두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엔 3자 모두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송도 실효성 있는 방법이 못 된다. 당장 살 집이 곤란한 형편인데 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선 "‘전세 난민’이란 별칭을 얻은 이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김은혜 의원(국민의힘)의 질문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새로운 집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이 법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홍남기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라”고 했고 김 장관은 “정부가 지침을 분명히 해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