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 연합뉴스

지난 7월 말 시행된 새 임대차보호법 때문에 ‘전세 난민’ 처지가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번엔 같은 법에 막혀 의왕 아파트 매각이 무산될 상황에 처했다. 자신이 밀어붙인 정책에 부메랑을 맞아 오도가도 못 하게 된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마포 전셋집은 비워줘야 하고 의왕 집은 못팔게 돼

경기도 의왕 아파트(전용면적 97.1㎡)와 세종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하고 있던 홍 부총리는 1가구 2주택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지난 8월 의왕 아파트를 9억2000만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소유권 이전 등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매 계약 당시 집을 비워주기로 했던 임차인이 마음을 바꿔 “더 살겠다”고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이 아파트 단지의 A 부동산중개사는 “임차인이 당초엔 전세 기간이 끝나면 근처 다른 집으로 이사 갈 계획이었지만,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하자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차인이 나가면 들어가 살려고 했던 주택 매수자는 아직 잔금을 치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 법에 따라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남아있는 전세 기간뿐 아니라 추가로 2년 더 전세 계약을 연장할 수 있어 집주인이 입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밀어붙인 정책에 당해… 오갈데 없는 ‘전세 난민’ 신세로

홍 부총리는 바뀐 임대차보호법의 유탄을 이미 한 번 맞은 상태다.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업무를 보는 홍 부총리는 현재 마포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전세 계약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통보해오면서 이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집주인은 예외적으로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제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임대차법 시행 이후 진행되고 있는 전세난을 시인한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공인중개사 매물란에 전세 매물이 보이고 있다.2020.10.14. /뉴시스

홍 부총리는 근처에 다른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부총리가 이 아파트에 들어올 당시 6억원대였던 전세 시세는 현재 9억원이 넘는 데다 전세 물량도 씨가 말라 돈이 있어도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임대차보호법을 강행할 때부터 예고됐던 재앙 같은 상황이 불과 두 달여 만에 홍 부총리에게 현실이 된 셈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이날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임차인은 주거 안정 효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내년 서울 아파트 공급 올해의 절반으로 ‘뚝’… 전세난 더 심해질 듯

임대차법 개정으로 촉발된 ‘전세 대란’은 내년에 더 심해질 전망이다. 전셋집으로 쓰일 새 아파트 공급이 급감하는 반면, 청약을 노리는 사람들이 전세 시장에 유입되면서 수요는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가 집계한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5120가구로, 올해(4만8719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입주하는 아파트 중에서도 전세로 풀리는 집은 얼마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세제 혜택이나 대출을 받기 위한 집주인의 의무 거주 요건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 주택 공급을 옥죄는 규제가 늘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고 아파트 입주 물량이 늘어나기도 어렵다. 이처럼 수요는 많고 공급은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이니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주 192를 기록, 2013년 9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196.9)에 근접했다. 이 숫자가 100을 넘으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고 숫자가 클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는 뜻이다.

서울 주요 대단지 아파트 전세 매물 현황 및 증감, 임대차법 개정 전후 전세 실거래가 변화 /자료=국토교통부, 아실

정부와 여당은 계약갱신청구권 등이 시장에 안착하고 3기 신도시 등 공급 효과가 나타나면 전세 시장 불안이 사그라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3기 신도시 입주까지 최소한 5년은 걸리는데다, 서울의 주거 수요를 분산하는 효과가 분당·일산 같은 1기 신도시보다 현저히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격까지 밀어 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 심리가 여전한 상황에서 전셋값이 급등하면 실수요자는 물론, 갭투자 등 투자 수요까지 자극할 수 있다”며 “규제를 풀고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