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라온 안건 가운데 96%는 금감원 담당 부서가 올린 징계안 원안대로 통과된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사건에 비유하면 판사(제재심)와 검사(담당 부서)가 같은 기관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검사를 지휘하는 사람도, 판사를 뽑는 사람도 금감원장이라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제재심은 거수기? 징계 96%가 원안대로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 9월 말 현재 금감원 제재심에 상정된 안건은 모두 1270건이다. 이 가운데 1218건이 금감원 검사 담당 부서가 올린 징계 의견이 제재심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금감원 제재심은 금융회사 또는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논의체다. 사실상 ‘1심 판사’ 역할을 한다. 금감원 제재는 회사 입장에서는 최대 수백억원의 과태료를 내고 신사업 진출 등이 제한될 수 있는 중대한 조치도 포함돼 있다. 임직원 개인 입장에서는 사실상 금융권 퇴출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제재 대상자의 항변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금감원 제재심에 대해서는 ‘제재 대상자가 소명할 기회가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금감원은 지난 2018년 4월부터 대심제(對審制)를 도입했다. 대심제란 금감원 제재심을 마치 재판처럼, 제재 대상자와 금감원 검사 부서 직원이 동석해 제재심의위원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을 말한다. 과거에는 제재 대상자가 의견을 진술한 뒤 퇴장했고, 이후 검사 부서가 다시 답변하도록 돼 있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심제 도입 이후에도 검사 부서 의견대로 징계 수위가 결정되는 건 여전하다. 대심제 도입 전인 지난 2016년부터 2018년 3월에는 제재심 원안 의결 비율이 95.9%였다. 대심제 도입 후(2018년 4월~올해 9월)에도 원안 통과율은 96.9%로 사실상 같다.
이는 제재심 구성 방식상 예견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제재심 위원 21명 가운데 금융 당국 관계자 4명(1명은 파견 검사)은 당연직이다. 나머지 민간 위원 17명은 모두 금감원장이 위촉한다. 위원장은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맡는다. 제재심의위원 전원이 금감원 관련 인사거나, 금감원장이 뽑은 인사라는 뜻이다. 야당은 제재심의위원을 금융위원장·금감원장·은행연합회장·보험협회장 등이 동수 추천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금감원 ‘월권 논란’ 재점화… 금융위원장도 “정당성·투명성 재검토”
물론 금감원의 징계 수위가 적법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윤창현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금융사 및 임직원이 금감원 제재심에 불복해 법원의 판단을 구한 사건 53건 가운데 금감원이 8건에서 패소했다. 금융 당국 제재가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을 중징계인 ‘문책경고’에 처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근거로 “내부 통제 미비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손 회장이 제기한 징계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법상 저축은행 외의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권한은 금융위원회에 있는데, 이 권한이 금감원에 위임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징계가 ‘월권’일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난 12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되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임원에 대한 제재(권한)이 업권별로 다른 부분이 있다”며 “제재하는 것을 금감원에 맡기는 게 맞는지 절차적인 정당성과 투명성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앞선 제재 조치가 적법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야당에서는 “(금융 당국이) DLF 사태 대책을 제대로 못 세우더니, 징계 조치도 제대로 못 한다는 오명을 쓰게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창현 의원은 “감독 당국의 징계는 외과 수술처럼 환부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잘못이 있는 사람을 정조준해 일벌백계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금감원 제재는 중립적이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 및 임직원에 대한 제재 수위를 논의하는 기구. 형식상 ‘금감원장 자문기구’지만, 제재심 결정을 따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금감원 수석부원장(위원장)·제재담당 부원장보·법률자문관, 금융위 안건담당 국장 등 4명이 당연직이다. 민간위원인 17명은 전원 금감원장이 위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