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의 불량 펀드를 판 증권사 3곳에 대해 경영진 중징계를 예고해 금융권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권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안이지만, 금감원이 자신의 감독 책임은 쏙 뺀 채 금융회사 CEO(최고경영자)의 옷을 벗기는 중징계로 면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사모펀드 관리 감독에 대한 책임 추궁이 예상되자, 금감원이 초점을 흐리기 위해 금융회사 중징계라는 무리한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모펀드 감독책임 피하려 판매사 과잉 처벌하나
금감원은 지난 3월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CEO를 중징계했다가 법원에서 징계 권한이 없다는 판단을 받아 망신당한 적이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DLF 때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이번에도 CEO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런 논리대로라면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젠투 등 환매가 중단된 사모펀드를 판매한 은행·증권사 수십 곳의 CEO도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금융권이 금감원 징계에 대해 소송으로 맞서는 등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금감원은 라임 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대신증권·KB증권 등 3곳에 지난 6일 라임 사태와 관련한 징계안을 사전 통보했다. 이 3곳 전·현직 CEO를 ‘업무 정지’ 등 중징계에 처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연임 금지는 물론 금융회사 재취업을 3~5년 못 하게 하는 사실상 퇴출 통보다. 이를 논의할 금감원 제재 심의 위원회는 오는 29일 열릴 예정이다.
앞서 금감원은 이 증권사들이 투자자에게 펀드 부실을 은폐하고 판매한 혐의, 불완전 판매 혐의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증권사 내부 통제가 부실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실무자가 아닌 CEO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DLF 사태 때처럼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제재 근거로 꺼내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에는 ‘임직원이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시행령에는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제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 입장이다.
◊"무차별 중징계하면 금융계 쑥대밭"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해당 규정을 직접적인 제재 기준으로 삼기에는 너무 모호하다”고 본다. 법원 역시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3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낸 징계 효력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등에 따르면, 저축은행을 뺀 나머지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문책 경고 권한은 (금감원이 아닌) 금융위원회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또 “금융 당국이 금융회사 임원의 제재 조치에 추상적·포괄적 사유만 제시해 구체적·개별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부실 펀드 판매의 경중을 따져 금융회사별로 징계 수위를 달리하는 게 합리적인데, 무차별 중징계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논란에도 금감원이 경영진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밀어붙이면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말 기준 주요 환매 중단 사모펀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젠투·독일 헤리티지·이탈리아 헬스케어·팝펀딩·알펜루트) 판매 금융사는 28곳에 달한다. 은행 8곳, 증권사 20곳이다.
금감원의 ‘면피주의’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 및 판매 과정을 적절히 감독하지 못해 대형 금융 사고를 불러온 책임이 금감원에 있는데도, 금융사에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국회에서 “(사모펀드 사태에) 송구하다”면서도 “사모펀드 사태는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 부실, 투자자 보호 소홀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