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한 한탄강지질공원 센터에 높이 1.8m짜리 의약외품(醫藥外品) 자판기인 ‘구급박스K’가 설치됐다. 대회산리 마을회관 근처다. 이곳은 약국이 최소 7㎞ 이상 떨어져 상처 하나 치료하려고 해도 차 타고 나가야 했던 곳이었다. 자판기 안에는 소독약, 상처연고, 반창고, 파스부터 마스크, 손소독제, 생리대까지 28종의 생활 밀착형 제품을 넣었다. 포천시가 장소를 제공하고, 구급박스K를 개발한 이안로드는 자판기를 무상으로 설치했다. 포천시는 “약국 이용이 불편한 인근 주민들에게 좋은 복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21일 만난 이안로드 권대욱(50) 대표는 “의약외품은 국내 2조원 규모의 큰 시장이지만 시간·장소 제약 때문에 소비자가 정작 필요할 때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판기를 개발했다”고 했다.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의약외품은 별도 처방 없이 약국·편의점 등에서 살 수 있는 간단한 약품·처치도구 등을 말한다. 지난 6월 조달청 심사를 거쳐 ‘벤처나라’ 장터에 등록됐고, 전국 50여 휴게소와 납품 계약을 체결해 이달 말부터 순차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 동네 구급소 역할 기대
이 자판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24시간 연중무휴 동네 구급소' 역할이 가능한 IT(정보기술) 기기다. 전면에 21인치 터치 스크린이 장착돼 있어 간편하게 제품을 고를 수 있다. 반창고·소독약 등 28종 제품 외에 ‘가벼운·심한 상처’ ‘가벼운·심한 화상’ ‘골절’ ‘전염 예방’ 등 6종의 응급 세트를 구비했다. 처치법 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QR코드 안내문도 함께 제공한다. 권 대표는 “급박한 상황에서 어떤 게 필요한지 모를 때 이 세트를 사면 된다”며 “10여 명의 약사 자문단을 통해 자판기에 넣을 제품을 고르고, 직접 처치법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제품 개발에 착수한 것은 3년 전이다. 권 대표는 “밤 11시에 네 살짜리 아들이 열이 많이 나서 해열 시트를 사려고 편의점 10곳을 돌아다녔는데 파는 곳이 없었다”며 “부모의 입장에서 자판기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약국은 휴무일에 자판기를 통해 제품을 팔 수 있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골프장 등에서는 고객에게 특화된 의약외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 미국에 특허 출원
애니로드는 안정적인 제품 공급을 위해 올해 ‘이안마스크’라는 자회사를 만들고 식품의약품안전처 제품 인증도 받았다. 사물인터넷(IoT)을 탑재해 제품 재고가 30% 소진되면 자판기 주인에게 알림이 가고, 60%가 소진되면 자동으로 원격 발주한다. 10월 중 자체 앱을 출시해 소비자가 주변 자판기 위치와 제품 재고 현황을 손쉽게 확인하도록 할 예정이다. 모든 제품 가격은 약국 대비 10% 낮다. 권 대표는 “자판기에 접목한 기술을 토대로 한국과 미국에 특허를 출원한 상태”라고 했다.
자판기를 개발한 이안로드는 2013년 창업한 금융 벤처 회사다.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을 발굴해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모금)이나 스팩(SPAC·특수목적법인을 통한 우회 상장) 등의 방식으로 코넥스·코스닥 상장을 돕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이번에는 직접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권 대표는 “K방역 열풍을 발판 삼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에 진출하겠다”며 “1년 안에 국내에 10만 곳의 구급박스K를 세워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