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서초동 스마트스터디 본사에 출근한 직원들이 핑크퐁, 아기상어 인형을 안고 활짝 웃고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15년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5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핑크퐁, 아기 상어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적 콘텐츠 기업이 된 직원 260여명의 스마트스터디다. 김민석(39) 대표가 2010년 창업했다.

지난 18일 찾은 서울 서초동 본사는 한산했다. 공동 창업자인 이승규 부사장은 “코로나 이후 전사 재택근무를 권고한 상황인데, 현재 60%가 재택근무 중이고, 나머지 40%는 자발적으로 나와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억지로 재택하라고 하는 게 오히려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각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 장소에서 마음대로 일하라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18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스마트스터디 본사에서 일부 직원들이 출근해 근무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 메르스 이후 6년째 상시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규칙 없는 ‘한국판 넷플릭스’

요즘 서점가에선 넷플릭스 CEO(최고경영자)가 쓴 ‘규칙 없음’이 화제다. 스마트스터디는 규제 촘촘한 한국에서 보기 드문 ‘규칙 없음’의 끝판왕 같은 기업이다. 상시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유급 휴가도 무제한이다. 지난해 가장 길게 휴가 쓴 직원은 27일(근무일 기준)을 쓴 ‘입사 2년 차 디자이너’였다. 일반 기업은 15일이 한도다. 출퇴근 시간, 팀별 회식비·비품 구입비 한도도 없다.

넷플릭스는 규칙이 없지만 저성과자는 잔인하게 해고한다. 그러나 한국은 해고를 맘대로 할 수 없다. 스마트스터디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인사를 총괄하는 최정호 경영지원부문장은 ‘꼼꼼한 채용’과 ‘재배치’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의 인사 원칙과 코로나가 터진 올해 인사 원칙이 다르다”며 “비대면 근무가 더 많아진 만큼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며 회사의 자율 문화를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인지, 협업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갖췄는지, 작은 데서도 문제 의식을 갖고 고쳐보려는 사람인지 등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했다. 부서 재배치도 중요한 수단이다. 같은 직원이라도 팀장이 다르면 성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스터디 공동창업자인 이승규 부사장은 "우리 회사는 천국이라기보다는 정글 같은 곳"이라며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과뿐"이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자율 못 견뎌 나간 이들도

자율은 인재를 불러들였다. 변호사·회계사 같은 전문직들이 고액 연봉을 박차고 합류했다. 특히 직원 267명 가운데 77%가 여성(206명)이다. 최정호 부문장은 “육아에 유리한 사내 문화, 유아·아동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중시한다는 특성이 동시에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김민석 대표는 “자율과 자유를 혼동하지 않을 구성원으로 이뤄진 조직이라 현재 같은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이런 업무 방식을 견디지 못하거나, ‘이 회사는 체계가 없다’며 스스로 나간 사람들도 있다.

22일 재택 근무 중인 스마트스터디 직원들이 화상회의에서 핑크퐁, 아기상어 인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스마트스터디

직원들은 팀 동료와 인사팀에 “오늘 재택근무로 이런 이런 업무를 할 것”이란 이메일을 보낸다. 근무를 마칠 때는 오늘 어떤 성과를 냈는지 공유한다. ‘재택근무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 직원은 “자율주행 같다”고 했다. “신뢰 없이 함부로 쓸 수 없는 기능인데, 재택근무 역시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회사가 쉽게 시행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유일한 규칙은 성과"

이 회사는 ‘지상 천국’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승규 부사장은 “우리 회사는 천국이 아니라 정글”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성과를 내는 것이고, 그게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내 문화가 좋아봐야 소용없다”고 했다. 넷플릭스나 스마트스터디나 성과를 내고 있으니 재택근무도 주목받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 5년 새 매출이 11배로, 영업이익은 23배로 뛰었다. 비대면이 항상, 언제나 좋은 근무 형태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부사장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대면 근무가 낫다"고 말했다.

김민석 대표는 “결국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새 업무 방식을 해나가면서 ‘일을 어떻게 하면 될지’ ‘왜 회사에 나와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에 현재의 성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