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5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핑크퐁, 아기 상어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적 콘텐츠 기업이 된 직원 260여명의 스마트스터디다. 김민석(39) 대표가 2010년 창업했다.
지난 18일 찾은 서울 서초동 본사는 한산했다. 공동 창업자인 이승규 부사장은 “코로나 이후 전사 재택근무를 권고한 상황인데, 현재 60%가 재택근무 중이고, 나머지 40%는 자발적으로 나와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억지로 재택하라고 하는 게 오히려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각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 장소에서 마음대로 일하라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규칙 없는 ‘한국판 넷플릭스’
요즘 서점가에선 넷플릭스 CEO(최고경영자)가 쓴 ‘규칙 없음’이 화제다. 스마트스터디는 규제 촘촘한 한국에서 보기 드문 ‘규칙 없음’의 끝판왕 같은 기업이다. 상시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유급 휴가도 무제한이다. 지난해 가장 길게 휴가 쓴 직원은 27일(근무일 기준)을 쓴 ‘입사 2년 차 디자이너’였다. 일반 기업은 15일이 한도다. 출퇴근 시간, 팀별 회식비·비품 구입비 한도도 없다.
넷플릭스는 규칙이 없지만 저성과자는 잔인하게 해고한다. 그러나 한국은 해고를 맘대로 할 수 없다. 스마트스터디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인사를 총괄하는 최정호 경영지원부문장은 ‘꼼꼼한 채용’과 ‘재배치’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의 인사 원칙과 코로나가 터진 올해 인사 원칙이 다르다”며 “비대면 근무가 더 많아진 만큼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며 회사의 자율 문화를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인지, 협업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갖췄는지, 작은 데서도 문제 의식을 갖고 고쳐보려는 사람인지 등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했다. 부서 재배치도 중요한 수단이다. 같은 직원이라도 팀장이 다르면 성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 못 견뎌 나간 이들도
자율은 인재를 불러들였다. 변호사·회계사 같은 전문직들이 고액 연봉을 박차고 합류했다. 특히 직원 267명 가운데 77%가 여성(206명)이다. 최정호 부문장은 “육아에 유리한 사내 문화, 유아·아동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중시한다는 특성이 동시에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김민석 대표는 “자율과 자유를 혼동하지 않을 구성원으로 이뤄진 조직이라 현재 같은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이런 업무 방식을 견디지 못하거나, ‘이 회사는 체계가 없다’며 스스로 나간 사람들도 있다.
직원들은 팀 동료와 인사팀에 “오늘 재택근무로 이런 이런 업무를 할 것”이란 이메일을 보낸다. 근무를 마칠 때는 오늘 어떤 성과를 냈는지 공유한다. ‘재택근무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 직원은 “자율주행 같다”고 했다. “신뢰 없이 함부로 쓸 수 없는 기능인데, 재택근무 역시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회사가 쉽게 시행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유일한 규칙은 성과"
이 회사는 ‘지상 천국’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승규 부사장은 “우리 회사는 천국이 아니라 정글”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성과를 내는 것이고, 그게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내 문화가 좋아봐야 소용없다”고 했다. 넷플릭스나 스마트스터디나 성과를 내고 있으니 재택근무도 주목받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 5년 새 매출이 11배로, 영업이익은 23배로 뛰었다. 비대면이 항상, 언제나 좋은 근무 형태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부사장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대면 근무가 낫다"고 말했다.
김민석 대표는 “결국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새 업무 방식을 해나가면서 ‘일을 어떻게 하면 될지’ ‘왜 회사에 나와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에 현재의 성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