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5월 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반도체 공급망을 끊었다. 미국 기술과 장비를 이용한 반도체를 주문 생산 못하게 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아예 반도체 구매까지 막았다. 세계 통신장비 1위, 스마트폰 2위 회사인 화웨이는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다. 당장 내년부터 최고급 성능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화웨이의 반도체를 주문 제작하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는 타격은 커녕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스마트폰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1위,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는 좀처럼 화웨이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게 한 방 먹은 중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에 10년간 법인세 면제 등 각종 혜택을 주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지금 글로벌 반도체 전쟁 구도는 우리나라에 유리한 구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삼성전자 사장을 지내며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던 진대제(68)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Mint가 최근 서울 양재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정부의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육성 전략을 보면 ‘과연 누가 우리 반도체를 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왜 TSMC가 잘 나가는 건가.

“TSMC는 자기 제품이 없다. 30년간 위탁 생산만 특화해 미국 IT대기업들과 신뢰 관계를 쌓았다. 기술 유출 우려가 없는 것이다. 반면 삼성을 보자.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하지만 스마트폰 등 자체 생산하는 제품도 있다. 애플 같은 회사가 AP(스마트폰 핵심 반도체)를 삼성에 만들어달라고 하겠나? 맡기기 껄끄러운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주춤하면 삼성에 기회 아닌가.

“80%는 유리하고 20%는 불리하다. 삼성은 화웨이와 5G 통신장비,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직접 경쟁을 하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를 때려주면 일단 삼성에게 좋지 않겠나. 그동안 화웨이의 저가 공세로 삼성이 어려운 싸움을 해왔다. 2004년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이집트를 방문해 대통령과 장관을 만나 삼성 통신장비를 사달라고 세일즈를 했다. 중국 장비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화웨이의 반값 공세에 삼성이 밀렸다. 지금이 바로 삼성이 화웨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회다. 20% 불리한 점은, 미국이 우리 반도체 기업에게도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 1등 한다는데.

“시스템 반도체에는 설계만 하는 팹리스 분야와 위탁 생산만 하는 파운드리 분야가 있다. 삼성이 미국의 퀄컴,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된다? 어마어마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게다가 이미 구글, 아마존 같은 회사는 직접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는 마당에 삼성이 설계와 생산을 다 잘한다는 건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정부는 종자돈 뿌려서 팹리스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데… 어려운 일이다. 인공신경망 반도체 하나 개발하는데 얼마 드는 줄 아나? 1000억원이다. 그런데 누가 벤처 기업을 믿고 큰 돈을 베팅할까. 나도 그런건 투자 안 할 거다.(진 전 장관은 현재 사모펀드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의 회장을 맡고 있다)”

-왜 반도체 설계 분야를 키우는 게 어렵나.

“우리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반도체 설계는 저가형 반도체다. 20년전과 비교해보자. 당시에는 MP3, 카메라, 전화기가 다 따로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다 통합됐다. 그만큼 전자제품 종류가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중국 반도체 설계 수준은 미국과 대등한 수준이고, 반도체 생산 분야도 중국 내수용을 충당할 만큼 된다. 결국 내다 팔려면 중국 시장인데, 우리 팹리스 회사는 내다 팔 시장이 없는 것이다.”

-그럼 뭘 잘해야 하나.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건 파운드리다. 7나노(nm, 10억분의 1미터) 이하 미세공정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삼성과 TSMC뿐이다. 큰 수요가 날 곳을 먼저 선점해 그 용도에 맞는 반도체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에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새로운 소비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 다음에 필요한 반도체와 부품이 나오고, 소재가 따라 나온다. 스마트폰처럼 한국 기업이 선도하는 제품이 또 한번 나와야줘야 하는 상황이다.”

(인터뷰 직후인 지난 25일 TSMC가 폭탄 발표를 했다. 세계 최초로, 2024년 2나노 반도체 생산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반도체 성능은 통상 ’나노‘로 표시하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기능이 높다는 뜻이다. 대만은 2나노 반도체를 2024년 전후에 생산하고, 공장은 TSMC 본사가 있는 대만 신주에 짓는다는 계획이다. 20조원을 투자한다. 대만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추후 제품을 사주기로 한 미국의 거대 수요처가 물밑 지원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어젠다를 선점해야 한다. 깃발을 먼저 꽂으라는 거다. 예컨대, 인공신경망 반도체나 자율주행차용 센서 반도체 등 국가가 방향을 잡아주는 식이다. 기업에 돈 뿌리는 것 말고, 선도하는 기업이 잘 뛰어놀 수 있도록, 수재들이 반도체 분야로 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통부 장관 시절, 디지털 TV 1등하자, DMB 육성하자 등 아젠다를 내세웠고 결국 이룩하지 않았느냐.”

-일본과 무역분쟁 1년이 지났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잽만 주고받은 수준이다. 지나고 보니 한국과 일본 모두 산업에는 그리 큰 영향은 미치지 않았지만, 서로 감정적인 치명상만 입었다.”


◇진대제는 누구?

1952년 경남 의령 출생. 서울대를 졸업하고 ‘국비 유학생 1호’로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IBM 연구소에서 일하다 1985년 삼성전자로 옮겨 세계 최초인 16메가(M) D램 개발을 이끌었다. 삼성전자에서 메모리반도체 개발센터장을 거쳐 메모리사업부장(전무)과 시스템LSI 사업부장(부사장)·정보가전총괄(사장)·디지털미디어총괄(사장)을 역임했다. 당시 별명은 ‘미스터 칩(반도체 사나이)’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 투자 전문 기업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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