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문화부에서 건축, 디자인, 해외문학을 담당하는 김미리 기자입니다. 기자 하기 딱 좋은 이름이라고들 하는데 실상은 반대입니다. 늘 마감 시간에 슬라이딩해서 이름값 못 하고 삽니다. 미리는 못 하지만 “1미리라도 다른 시선으로 생각하고 쓰자”고 다짐합니다.
2. 문화부 기자를 오래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2000년 입사 이후 기자 생활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보냈습니다. 문화부 막내 필수 코스라는 방송부터 미술, 건축, 디자인, 해외문학, 라이프 등을 거쳤습니다. 2007년 선견지명 있던 당시 데스크가 디자인을 담당해 보라고 했습니다. 국내 일간지 최초로 ‘디자인’이란 면머리를 단 지면이 생겼고, 어쩌다 일간지 첫 디자인 담당 기자가 됐습니다. 패션 디자인, 헤어 디자인 등으로만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주로 소비될 시절이라 막막했지만 무주공산에서 기사 발굴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이런 게 기사야?” 하던 것이 “이런 게 기사지!”로 바뀌는 희열을 맛봤습니다. 그 맛을 못 잊어 런던에서 디자인 큐레이팅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3. 그동안 만난 인터뷰이 중에 여운이 남았던 사람이 있나요?
여운 없는 사람 꼽는 게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생각나는 사람은 배우 최진실. 이혼으로 맘고생 겪고 2005년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했을 때 만났습니다. 최진실씨가 사는 빌라 정원에서 김밥 까먹으며 인터뷰했습니다. 당시 아들 환희가 네 살, 딸 준희가 두 살.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으로 그녀는 “아이들에게 일하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된 두 자녀의 소식을 요즘 접할 때마다 그날이 떠오릅니다. 취재원과 좀처럼 사진을 안 찍는데 그날따라 같이 간 사진기자 선배가 카메라에 둘을 담아줬습니다. 그 사진이 책장 구석에 꽂혀 있습니다.
건축가로는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피노키오의 제페토 할아버지를 닮은 선한 분이셨는데 어찌나 인자하고 겸손하시던지요. 오사카에서 만난 안도 다다오는 반전 인물. 얼굴 근육을 잔뜩 굳히고 심오한 건축 철학을 말하다가 끝나자마자 “김 상, 기념사진 찍읍시다” 하더군요. 먼저 사진 찍자는 거장은 처음이었습니다. 까칠한 건축가가 순간 옆집 아저씨처럼 바뀌었습니다.
4. MBTI 성향이 무엇인가요?
혈액형? 안 믿습니다. 사주? 돈 주고 본 적 없습니다. 너무 무심하거나 아니면 팔랑귀거나. 주변에서 하도 물어 한 번 해봤습니다. ENFJ.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유형과 딱 반대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 0.9%인 유형이라네요. 좀전에 다시 해봤습니다. INFP. 역시 믿을 게 못 됩니다.
5. OTT에 돈을 지불하고 계시나요?
넷플릭스. 어쩌다 긴 넷플 사슬의 계주가 되었답니다. 끊고 싶어도 딸린 식솔 때문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도 합니다. 왓차, 티빙은 간헐적 단식. 끊었다 봤다 반복합니다.
6. ‘아 이건 영화나 드라마 찍을 감이야’라고 느꼈던 취재기가 있다면?
도쿄에서 화가 이중섭의 아내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 여사를 인터뷰했습니다. 이중섭과 살 비비며 산 건 7년. 생이별 후 그 짧은 세월을 연료 삼아 두 아들을 기르며 70년 버틴 분이십니다. 올해로 101세이십니다. 안타깝게도 남편처럼 의지했던 큰아드님이 몇 해 전 세상을 뜬 다음 기력이 쇠해 병원에 계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분의 영화 같은 삶이 진짜 영화로 꽃 폈으면 합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에서 열린 이중섭 100주년 기념전 홍보대사가 지금은 세계적 스타가 된 이정재 배우였습니다. 젊은 날의 이중섭과 이정재씨가 많이 닮았다고들 했죠. 아니나 다를까, 이정재씨와 잠깐 대화를 했는데 그러더군요. 언젠가 영화 만들면 꼭 이중섭이 되고 싶다고. 이정재 주연의 영화 이중섭, 기대해 봅니다.
7. 미술품이나 건축물이 아름답게 그려진 드라마나 영화가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우디 앨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를 가장한 미술, 건축 투어 영상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듭니다. 로댕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 수련 연작부터 모네의 지베르니 연못까지 유명 미술관과 작품, 배경을 망라합니다.
‘콜럼버스’
-이번에 드라마 ‘파친코’를 만든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 데뷔작입니다.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 꼽히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건축가 에로 사리넨의 ‘밀러하우스’, 그의 아버지인 엘레엘 사리넨이 설계한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 등 유명 건축물이 빼어난 영상으로 담겼습니다. 강박적으로 대칭을 맞춘 화면을 보고 있으면 울퉁불퉁했던 마음도 고요해집니다. 멍 때리고 싶을 때, 야금야금 봅니다.
히치콕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서스펜스의 고전으로 유명하지만 당시 ‘신상’이었던 1950~60년대 모더니즘 건축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대 최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오스카 니마이어가 국제주의 양식으로 설계한 뉴욕 유엔본부 건물이 배경으로 나옵니다. 얼마 전 BTS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바로 그곳입니다.
건축에 워낙 조예 깊은 히치콕은 내부 촬영이 안 되자 거의 똑같이 세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의 하늘에서 내려다본 유엔본부 모습은 히치콕의 독창적 시선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저택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작인 주택 ‘낙수장(falling water)’을 본떠 만든 것이고요.
이타미 준의 바다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을 다룬 다큐. 건축을 전공한 정다운 감독이 한 편의 시 같은 건축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수풍석 박물관, 방주 교회, 포도호텔 등 자연 속에 남은 건축가의 분신을 보고 있노라면 숙연해합니다.
8. 인터뷰나 기획 기사, 칼럼을 쓸 때 ‘영감’을 어떻게 얻나요?
영감이라니 거창합니다. 관찰할 뿐입니다. 꼬꼬마 시절 엄마와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던 간판을 보면서 한글을 깨쳤습니다. 버스가 속력을 내면 새떼처럼 휙휙 지나가는 간판 글자들을 놓치지 않으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렸을 때부터 디테일 관찰을 좋아했습니다.
9. 현재 보고 있거나 푹 빠져 있는 작품들이 있으세요?
넷플릭스 ‘앤디 워홀 일기’. 나오자마자 봤습니다. 한없이 화려했지만 한없이 외로웠던 한 개인의 인생.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극 중 나희도(김태리)보다는 백이진(남주혁)에 감정이입 하게 됩니다. 백이진이 기자 시작하던 때가 제가 막 기자가 됐을 무렵이거든요. 와이파이는커녕 랜선도 없어 기사 전송하려고 전화선 찾아 헤매던 생각이 났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한 ‘H마트에서 울다’ 저자 미셸 자우너의 인디 음악(https://youtu.be/KmXnuD-JpOs). 올 그래미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는데 노래들이 참 좋습니다.
10.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중 추천하고픈 작품 3편만 꼽아주세요.
독일 드라마 ‘다크’
-제 기준으로 타임슬립 장르물의 최고봉입니다. 독일은 드라마도 이렇게 철학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드는 걸까요. 타임패러독스, 시간여행, 평행 세계 등 심오한 주제를 담았지만 충격과 반전을 넣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니체, 아인슈타인, 쇼펜하우어의 명언이 드라마 대사로 나올 수도 있다니!
넷플릭스 ‘앱스트릭트: 디자인의 미학’ 중 ‘건축 비야케 잉겔스’ 편
-건축설계사무소 BIG를 이끄는 덴마크의 천재 건축가를 다룬 다큐입니다. 이런 건물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파격 건축을 보여주는 괴짜인데 “인셉션의 다큐 버전이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처럼 역시 재밌습니다. 덴마크 ‘레고 하우스’를 설계했을 때 현지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범상치 않았습니다. 머리가 큰 자신을 닮아 레고 피규어를 사랑한다는 유쾌한 건축가였습니다. 한때 만화가를 꿈꿨던 그가 만화로 그린 작품집 ‘Yes is More’도 강력 추천합니다.
더 크라운
-웰메이드 영국 왕실 대하드라마.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 스토리 외에 자신의 성을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었던 ‘여왕의 남편’ 필립공의 고뇌,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 마거릿 공주와 타운젠트 경의 비극적 사랑 등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