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1992년 12월 첫 직장으로 조선일보 입사해 올해로 30년째 기자로 살고 있습니다. 현재 논설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기자 생활 중 대략 3분의 2를 문화부에서 일했습니다. 책 담당 기자를 오래 했습니다. 그 중 5년은 문학을 취재했고요. 시 에세이집 ‘가족의 시’를 출간한 적도 있네요. 뛰어난 동료 기자들과 지내며 늘 뒤쳐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지냈습니다. 남들보다 앞서가지는 못해도 따라가는 거라도 잘하자는 마음으로 읽고 쓰면서 산 것같습니다.
2. 다독가로 유명한데요. 한권의 책을 보통 얼마동안 읽으세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문제는 집이 넉넉하지 않아 책이 없었다는 건데요. 책 읽는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책장에 꽂힌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같은 책을 하나 둘 빌려다 읽었습니다. 어느 친구 엄마는 “내 아들 읽으라고 사줬더니 걔는 거들떠도 안 보고 네가 다 가져다 읽는구나” 하며 한탄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 친구의 미움을 샀지요.
사실 신문사에서 책 담당 기자를 하고부턴 즐거운 마음으로 책 읽는 재미를 잃었습니다. 어찌보면 직업병. 문학 기자로 지낼 때는 최소 1주일에 두 권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습니다. 1년이면 100권쯤 읽은 겁니다.
제가 자부하는 게 있다면, 그런 책을 대충 읽거나 보도자료 읽는 거로 대충 파악하지 않고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를 인터뷰할 때 책을 들고 나가는데, 책 수십곳이 접혀 있고 곳곳에 밑줄치고 메모하고 한 걸 본 저자들이 약간 놀란 눈으로 저를 볼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서평이나 인터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왕 읽는 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게 쌓이면 좀 큰 밑천이 됩니다. 서평을 하거나 칼럼을 쓸 때 인용을 풍부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3. 책 읽는 습관, 자녀에게도 권하세요?
저는 집에 서재를 따로 갖고 있는데요. 안방은 아내의 공간이고 저는 퇴근하면 주로 서재에서 생활합니다. 그 방 3면이 서가로 둘러싸여 있는데, 거기서 아무리 책읽는 모습을 보여줘도 아이들이 따라하지 않더라고요.
독서 리스트를 만들어 읽으라고 준 적도 있고, 아이들과 독서 토론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고리타분해 하더군요. 어느덧 둘 다 스물 넘은 성년이 되었으니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큰아이는 커가면서 기타와 드럼을 좋아하더군요. 독서는 타고난 성향이란 게 제 결론입니다. 마치 음악에 대한 제 아들의 사랑이 타고난 것이듯.
4. 몇번이고 읽어도 새로운 책이 있나요?
‘읽을 때 줄을 쳤던 모든 책이 다 새롭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줄을 많이 치는 편입니다.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주는 새로운 지식이나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절묘한 상황, 멋진 표현 등을 만났을 때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가끔 줄친 책들을 무작위로 꺼내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습니다. 그러면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추가되기도 하고, 까맣게 잊었던 내용을 마치 처음 읽는 듯 만나 당황하기도 합니다.
5. 정말 읽기 힘들다, 어려운 책은 어떤 것이었나요?
독서에도 취향이 있습니다. 저는 신화나 역사, 전쟁을 다룬 인문서를 좋아합니다. 신화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좋아하고, 역사물은 개인적으로도 관심 있지만 직업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역사물이나 전쟁을 다룬 책은 글 쓸 때 인용하거나 아는 척하는 데 유리합니다.
어릴 적엔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저술가 다치바다 다카시는 문학을 세계관이 정립되는 시기에 읽고 그 후엔 인문서를 보라고 권하는데, 저도 그 의견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중년 이후에는 아무래도 감수성이 무뎌지고 삶을 대하는 자신만의 원칙도 생기니 이야기보다는 지식을 추구하는 독서를 하게 됩니다.
과학이나 수학을 다룬 책은 읽지 않습니다. 외서는 번역의 품질이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싫어하는 번역 스타일도 있는데요. ‘~말이다’라는 표현이 무더기로 쓰인 번역서를 만나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서 읽기 싫어집니다. 어떤 책은 ‘~말이다’가 한 페이지에 두 세개 들어 있기도 합니다.
6. 좋아하는 작가가 따로 있나요? 이를테면 궁극의 성취를 이룬 작가라면?
훌륭한 작가도 전성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작가도 전성기가 지나서 쓴 작품은 대개 실망을 안기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성기 지난 작가를 퇴물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단 한 권이라도 좋은 책을 쓴 작가는 모두 위대한 작가입니다. 다만, 저는 문학을 이념의 수단으로 삼는 작품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다가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작가가 미리 답을 정해놓고 독자를 그 방향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책은 아무리 스토리가 흥미진진해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반면 인간의 위선, 나약함, 독선을 고발하거나 조롱하거나 연민하는 작품, 내면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을 만나면 호감을 갖게 됩니다. 가령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처음 읽었을 때, 나태하고 용렬하며 비겁하고 무기력한 제 내면에 거울을 비춘 것같아 마구 빠져들었습니다.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당신들의 천국’, 이문열의 여러 장·단편들, 김애란 소설 등도 좋아합니다.
벽돌책으로 가장 먼저 독파한 것은 중학생 때 읽은 펄벅의 대지 3부작이었습니다. 삼국지 못지 않은 재미를 선사한 작품이었습니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난관이 호랑이처럼 입을 딱 벌리고 나를 잡아먹을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면 오히려 그 고난 때문에 내가 썩어 문드러지지 않고 살아서 팔딱팔딱 움직일 수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파이 이야기가 그런 통찰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7.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시나요?
소설 원작을 극화한 드라마와 영화는 좀 의심하는 편입니다. 극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왜곡되거나 생략 과장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로 든 파이 이야기만 해도 영화는 절대 소설 원작의 풍부한 층위를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원작자인 트루먼 카포티에 대한 모독입니다. 물론 소설 원작의 좋은 영화들도 꽤 있습니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와 장아이링의 ‘색계’, 스티븐 킹의 ‘샤이닝’ 등을 명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8. OTT를 보시나요? 드라마, 영화, 다큐 장르 불문 추천작을 꼽아주세요.
OTT 입문한 지 1년 됐습니다. OTT 입문하면서 남들이 다 본 ‘도깨비’를 뒤늦게 봤는데 단숨에 OTT의 몰아보기에 걸려들어 며칠을 폐인으로 지냈습니다. ‘한국 드라마 잘 만드네’하며 본 작품입니다. ‘메시아’는 영화로 분류되나요? 신성모독 혐의가 농후하지만 작품으론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물로는 ‘로마제국’을 역사 교양물로 권하고 싶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유럽연합 가입 투쟁과 친러파 대통령 축출 과정을 기록한 ‘윈터 온 파이어’는 숙연한 마음으로 시청했습니다. 2013년 겨울, 우크라이나인들이 유럽연합(EU) 가입을 정부에 촉구합니다. 친러파가 장악한 정부가 이를 무산시키자 분노한 시민들이 수도 키예프의 독립광장에 쏟아져 나와 외칩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국가다.” 정부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렇게 외치는데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핑계 삼아 침공했는데요. 우크라이나는 9년 전 EU 가입이 좌절된 데 이어 이번엔 나토에 가입하려다 침공까지 당했습니다. 자유 인권 독립 같은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투쟁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망작이 많더군요. 남들은 얼마전 방영된 화제작 ‘돈룩업’을 꼽는데, 저는 좋은 점수 못 주겠습니다. 진지해야 마땅할 상황을 너무 장난스럽게 처리해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드웨인 존슨이 주연한 ‘레드 노티스’는 빵점을 주고 싶고요. 돈을 물쓰듯 펑펑 쓴 게 보이는데 정작 내용은 킬링타임 꺼리도 안 되는 졸작이더군요. 개인적 취향입니다만, 좀비 영화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합니다. 스토리는 빈약한데 영상만 자극적이어서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합니다.
9. 지식인의 글쓰기, 어때야 할까요? 글을 오래 쓰시나요?
지식인이란 말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지식인이 되면 평생 지식인 대접받던 시절은 소셜미디어 세상이 열린 뒤 과거사가 되어버렸다고 봅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잘 알면서도 필력을 갖춘 재야의 고수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과거 신문이 매체의 전부였던 시절엔 기자와 일부 학자들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 발언했지만 이제는 특정 이슈가 부상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글쓰기를 평생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겐 이런 상황이 위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변화가 지식의 생성과 유통 방식을 정하는 시대에 지식인은 단기적으로 쓰이고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0. 다시 보고 싶은 영상물은 무엇이 있나요?
다시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으면 모를까, OTT와 유튜브, 구글 검색을 통해 언제든 찾아내 볼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드네요. 옛 작품을 대상으로 회상하기, 그리워하기, 간직하기 같은 덕목이 더는 필요 없어보입니다. 그냥 검색하면 되는 세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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