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동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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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상 떠난 가수 이동원은 늘 청바지에 재킷 차림이었고 헌팅캡을 쓰고 무대에 올랐다. 히트곡이 많지는 않았으나 정지용 시에 곡을 붙인 노래 ‘향수’를 테너 박인수와 함께 불러 시대를 뛰어넘는 명곡으로 만들었다. 스무살 안팎이던 1970년대 초 명동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는 같은 또래의 다른 가수들보다 숫기가 없었고 데뷔도 늦은 편이었다. 그 당시 가수들의 돈벌이 수단이었던 이른바 ‘밤 무대’에도 서지 않았는데 그에 대한 자긍심이 컸다. “내 음악은 그런 무대에 맞지 않는다. 그런 무대에 서지 않았기에 내 목소리를 지킬 수 있었다. 가수는 공연과 음반으로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동원·박인수 - 향수

‘향수’는 꽤 진통을 겪고 탄생한 노래였다. 이동원이 정지용 시집을 읽다가 노래로 만들 생각을 했고 재즈 가수 김준이 박인수 교수를 소개했다. 당시 최고의 작곡가인 김희갑에게 작곡을 의뢰했는데 거의 10개월만에 곡이 나왔다. 이동원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곡을 받고 감격했는데 생각처럼 노래가 잘 되지 않았다. 김 선생이 노래를 듣다가 ‘오늘은 그만 하자’고 해서 너무나 창피했다. 열흘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차 안에서 노래 연습을 했다. 그렇게 녹음을 하고 김 선생의 ‘OK’를 받았다.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며 그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동원 - 이별 노래

이동원의 창법이 잘 드러난 노래는 정호승 시에 곡을 입힌 ‘이별 노래’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하고 시작하는 도입부는 이동원만이 낼 수 있는 느낌이 물씬하다. “나 그대 위해” 부분의 성량과 음압을 들어보면 그의 미성이 얼마나 큰 울림통에서 절제돼 만들어진 소리인지 알 수 있다. 그는 평소 시 읽는 것을 좋아했다. 정호승의 시는 어떤 회사 사보에서 우연히 봤다. 당시 잡지사에서 일하던 정 시인을 찾아가 시를 가사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후에도 정 시인의 다른 시에 곡을 붙인 ‘또 기다리는 편지’ ‘봄길’ 등을 발표했다.

▼이동원 - 헤이

‘이별 노래’가 담긴 앨범엔 ‘헤이’라는 노래가 실려있다.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히트곡을 번안한 노래다. 별다른 편곡 없이 원곡과 흡사하게 불렀는데, 이글레시아스의 창법이 밝게 열려있는 톤이라면 이동원의 노래는 약간 스산한 느낌을 준다. 사실 이동원의 모든 노래엔 쓸쓸한 뒷맛이 있는데 그것은 고음이나 하이라이트에서 내지르지 않고 오히려 절제하는 창법 때문인 것 같다.

▼이동원 - 비는 내리는데

이동원은 프랑스 가수 미셸 폴나레프의 노래 ‘Ca N’arrive Qu’aux Autres(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도 ‘비는 내리는데’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불렀다. 4분의 4박자이던 원곡을 8분의 6박자로 편곡해 부른 이 노래도 발표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이별 노래’가 워낙 인기를 얻어 다소 가려졌다. 이 노래는 훗날 전인권이 ‘다시 이제부터’라는 제목으로 다시 번안해 발표했다.

▼전인권 - 다시 이제부터

‘이별 노래’의 인기 때문에 덜 알려진 노래로 ‘장미 그리고 바람’이 있다. ‘따로 또 같이’의 이주원이 쓴 곡으로 이동원이 먼저 불러 발표했다. 이 노래 역시 당시 이동원을 라디오로만 듣지 않고 앨범을 사서 들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많이 불리던 노래다. ‘따로 또 같이’는 이 노래를 1988년 뒤늦게 발표했는데, 이동원 노래와는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이동원 - 장미 그리고 바람

이동원은 스스로를 ‘시를 사랑하는 가수’라고 불렀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힘을 준 것도 시였다고 한다. 천상병 시 ‘귀천’도 노래로 만들었는데, 그는 “소풍 가기 전날 설레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했었다. 이제 소풍을 끝낸 그가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동원 - 귀천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캐논볼 애덜리 ‘Autumn Leaves’

🎧해바라기 ‘그날 이후’

🎧배호 ‘마지막 잎새’

🎧정밀아 ‘꽃’

🎧신해철 ‘Here, I Stand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