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아이돌 음악을 중심으로 기획 음악이 대중음악의 대세가 되면서 ‘명반(名盤)’의 시대도 저물었다. 일단 음반(또는 앨범)의 개념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한 두 곡씩 디지털로 발표했다가 나중에 곡들을 묶어 재발매하는 것은 마케팅 행위일 뿐이다. 앨범이 사라지면서 한 앨범에 몇 곡을 수록할 것인지, 어떤 곡으로 시작해 어떻게 맺을 것인지, 타이틀곡은 몇 번 트랙에 넣을 것인지 고민하는 행위 역시 거의 사라졌다. 그렇게 명반은 20세기 유물이 되었고 더 이상 새로운 명반의 탄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 산업화·장르화한 1960년대부터 20세기의 손꼽을 만한 명반을 순위 없이 부정기 연재한다. <편집자>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읽어보세요.
▼해바라기 - 시들은 꽃
한국 대중음악사에 ‘해바라기’는 이정선이 이끌었던 혼성 4인조 그룹과 이주호가 리더인 포크 듀오가 있다. 이주호는 1977년 이정선의 해바라기 1집에 참여하면서 데뷔했는데 군에 입대하면서 이광조로 대체됐다. 제대 후 이주호는 유익종과 함께 포크 듀오 해바라기를 만들어 1983년 첫 앨범을 발표했다. 이런 경우 이주호가 해바라기란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이 상례인데, 어찌된 일인지 두 팀은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정선의 해바라기는 이정선·한영애·김영미·이광조 멤버로 1986년 세번째 앨범을 낸 뒤 해체했으나 이주호의 해바라기는 지금도 활동중이다.
▼해바라기 - 그날 이후
‘그날 이후’는 이주호의 해바라기 2집 앨범이다. 1집에서 함께 했던 유익종이 팀을 탈퇴하고 이광준이 합류해 작업했다. 이후에도 유익종의 귀환과 재탈퇴가 이어졌고 다른 멤버들이 오갔지만 해바라기는 이주호에 의한 이주호를 위한 이주호의 팀이었다.
두 남자가 기타 케이스를 들고 낙엽 위를 걷는 뒷모습의 재킷부터 무척 인상적인 이 앨범은, 녹음 퀄리티에서 상당한 수준에 다다랐다. 1집에 실렸던 곡 중 네 곡이나 다시 녹음한 것 역시 더 나은 음질의 앨범으로 남기려던 의도가 아닌가 싶다.
▼해바라기 - 행복을 주는 사람
이 앨범에는 히트곡이 수두룩하지만 덜 알려진 곡 중에도 수작(秀作)이 많다. 그 가운데 ‘시들은 꽃’을 최고로 꼽을 수 있다. 해바라기 노래 전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이 노래는 중간에 조와 박자가 바뀌며 가사의 서정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이 곡에 비하면 해바라기의 대표곡 ‘사랑으로’는 이주호라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범작(凡作), 심지어 히트곡 작법에 충실히 만든 태작(駄作)으로 들릴 지경이다. 바리톤 보이스의 이주호가 고음에서도 뛰어난 창법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작사가 이주엽은 이 노래 가사 중 “하늘 높이/ 흰구름 둥실 떠가며/ 내 마음 볼까 봐/ 고개 숙이네” 부분을 두고 “이 아름다운 슬픔의 길을 열어준 이주호의 특별한 감성에 감사한다”고 했다.
▼해바라기 - 모두가 사랑이에요
해바라기는 당대 젊은이들의 찬사를 받지 못했다. 대학가에서 해바라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랑 타령’이라는 이유였다. 이제 스무살 갓 넘긴 청년들은 스스로 투사 내지 혁명가를 자처했으므로 사랑 읊는 노래를 듣는 것은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골방에서 해바라기를 듣지 않은 청춘도 없었다. 캠퍼스에서 농민가나 죽창가만을 부르던 시대에도 골방에서는 사랑 타령이 이어졌고,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는 청춘을 위로한 노래는 운동가요가 아니라 해바라기였다. 골방에서는 지극히 사랑받았으나 광장에서 불리지 못했던 해바라기의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음악 중 하나였다.
‘그날 이후’는 그나마 대학가에서 가끔 들리던 노래였다. ‘졸업’이란 부제가 붙은 이 노래는 해바라기 곡 치고는 멜로디가 밋밋하지만 대학가에서 불렸던 것은 그 가사 덕분이었다. “젊음의 고난은/ 희망을 안겨주리니/ 매화꽃 피어난 화원에/ 찾아오소서” “가슴에 맺힌 슬픔과/ 설움을 버리고 안녕히/ 친구여 안녕히” 같은 가사가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줬던 것이다.
▼해바라기 -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
1집에서 이미 히트한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이나 2집에 다시 실리며 비로소 히트한 ‘모두가 사랑이에요’를 비롯해 말 그대로 어느 한 곡 빼놓을 수 없지만, 들을수록 깊은 맛을 주는 노래는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이다. 1985년이면 녹음할 때 음정을 보정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도 없었을 텐데, 이주호 중저음의 피치(pitch)는 오선지 줄 또는 빈 칸에 정확히 꽂힌다. 이 노래는 한영애 버전도 있는데, 이주호의 노래가 교복 입은 모범생이 부른 것이라면 한영애의 노래는 바람 부는 들판에서 머리칼과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부르는 것 같다.
▼한영애 -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
이 앨범 마지막엔 ‘기쁨이 있는 오늘’이란 소품이 한 곡 실려있다. ‘생일축하곡’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당시에는 말 그대로 고명처럼 얹힌 노래로 느껴졌는데, 들을수록 사랑스러운 노래다. 가사를 살펴보면 연인이나 친구의 생일 축하 노래는 아닌 듯하다. “조심스레 자라/ 꽃이 피어나고/ 아름다운 색을 가지며/…/ 기쁨이 있는 오늘/ 사랑 속에 보내겠네/ 따뜻한 입김으로/ 축하해” 같은 가사는 돌쟁이 아가의 생일 축하연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발표 당시 이주호 나이가 29세였으니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가사다. 이런 곡을 기타나 우쿨렐레 같은 악기로 연습해 두었다가 누군가의 생일에 불러주면 아주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해바라기 - 기쁨이 있는 오늘
해바라기는 엄혹한 시대에 청춘들의 숨통을 틔우는 노래들을 불렀다. 외국 음악은 제국주의 음악, 우리 음악은 사랑 타령이라며 또 다른 획일주의 세계를 만들어가던 대학가에 한국 포크의 미학을 알려준 뮤지션이었다. 누구나 사랑 타령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인생의 마지막에 부를 노래 역시 사랑 타령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박지성 응원가 ‘개고기 송’ 원곡…19세기 찬송가 ‘춤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