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의 시녀들. 붉은 옷과 얼굴을 가린 흰 모자가 이들의 상징이다./웨이브

요즈음 한국 사회를 ‘디스토피아’에 빗대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종종 들린다. 전쟁과 기근에 시달리는 국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꼴찌’라는 통계는 우리나라가 더는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경고일지 모른다.

가까운 미래를 다룬 디스토피아 작품들이 흔히 그렇듯 미국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속 위기는 묘하게 지금의 현실과 겹친다. 전혀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최대한 비극적으로 과장해 묘사한 이야기로 보인다. 미국 OTT 서비스 훌루(HULU)에서 2017년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했다. 올해 한국 OTT 플랫폼에 정식으로 들어왔다.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발표한 소설 ‘시녀 이야기’가 원작. 전 세계에서 1000만부 이상 팔렸는데, 우리나라에선 덜 알려진 편이다. 34년 만에 출간된 후속작 ‘증언들’이 2019년 영국 부커 문학상을 받았다. 드라마 흥행도 책만큼 성공했다. 2017년 첫 방영 당시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69회 에미상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에미상 8관왕을 기록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작품이 최초로 에미상 작품상을 받은 사례다.

'아주머니'들에게 붙잡혀온 주인공 오프브레드./웨이브

드라마의 배경은 현대 미국이다. 환경오염과 전쟁, 각종 질환으로 이 시점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불임(不姙)이다.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해 국가 소멸 위기가 다가오자 미국은 혼란 상태에 빠진다. 이때를 틈타 성경과 가부장제를 내세우는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 공화국’을 수립해 국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한다.

지배계급이 귀한 것을 독점하는 전체주의 국가. 멀쩡히 살아있는 ‘아기’는 그 자체로 최고의 명예이자 자산이다. 인구 재생산과 국가 재건을 내세워 집권한 길리아드는 여성들을 신체적 기능에 따라 네 개의 계급으로 분류해 착취한다. ‘아내’ ‘아주머니’ ‘하녀’ ‘시녀’. 소수의 고위층 남성을 위해 ‘아내’와 나머지 계급들이 헌신하는 구조다. ‘아주머니’는 시녀를 교육하고, ‘하녀’는 허드렛일을 담당한다.

주인공 준(왼쪽)은 딸 해나를 데리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향하려 하지만 실패한다./웨이브

드라마는 한때 남편·딸과 가족을 꾸리고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던 평범한 한 여성의 회고록이다. 이름과 가족, 직업을 모두 빼앗기고 홀로 사령관댁에 ‘시녀’로 배정된 그의 원래 이름은 준 오즈번(엘리자베스 모스). 이곳에선 ‘사령관 프레드의 소유’라는 의미의 ‘오브프레드(offred)’로 불린다. 후엔 주인이 바뀌며 ‘오브조지프(ofjoseph)’가 된다.

주인공 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세계에서 모든 가임 여성들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자궁’이다. 임신이 불가능한 ‘아내’들을 대신해 강제로 ‘시녀’가 되어 고위층 남성의 아이를 가져야 한다. 아이를 낳으면 사령관과 부인에게 넘겨주고, 또 다른 집에 배정된다. 임신을 못 하거나 거부하는 여성들은 ‘비여성’으로 분류돼 ‘콜로니’라는 지옥에서 죽을 때까지 가혹한 노동을 한다.

시녀 교육기관 ‘레드센터’에서 의례를 교육받는 시녀들의 모습./웨이브

거북한 설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임 여성들을 징집해 재교육시키는 ‘레드 센터’는 존재 자체로 충격이다. 이곳에선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법, 자신의 위치와 의무를 아는 법, 자신에게 진정한 권리는 없지만, 얌전히 순응한다면 어느 정도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반항하거나 도망칠 수 없는 가임 여성의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세뇌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 ‘아주머니’들은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오른 눈이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 등 구약성서 구절을 그대로 해석해 반항적인 여성의 눈알을 뽑아버리는 식이다. 가장 중요한 교육은 ‘의례(ceremony)’의 절차다. 한 달에 한 번씩 사령관 아내의 다리 사이에 누워 팔목이 잡힌 채 사령관과 관계를 가지는 법을 배운다.

주인공 준(왼쪽)과 운전수 닉./웨이브

네 개의 시즌으로 펼쳐지는 방대한 서사는 더 이상 이름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 강간당하지 않을 권리, 내가 ‘나’로 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시녀’와 ‘하녀’들의 반란기다. 주인공 ‘오브프레드’가 머무는 방 한구석에 이전 시녀가 목숨 걸고 새겨놓은 글귀가 있다.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그 빌어먹을 놈들에게 절대 짓밟히지 마라”는 뜻이다.

드라마 속 여성들은 생각하고 읽고 쓰는 것을 모두 금지당해 지적 허기에 시달린다. 서로 대화하는 것조차 금지된 이들의 투쟁은 몰래 서로 이름을 주고받으며 시작된다. ‘오브(of)’ 아무개가 아닌 진짜 이름. 회차를 여러 번 거듭하는 동안 시녀들은 끝없이 포기하고 실패한다. 조금이라도 반란에 연루된 자는 그 가족까지 참혹하게 죽어나간다. 보는 이들마저 힘겨운 이 과정을 견디게 하는 건 실패를 통해 강해지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는 이들의 연대다.

주인공 오브프레드를 소유한 워터필드 부부./웨이브

다소 급진적이고 엽기적인 설정이지만 작가는 가상의 전체주의를 통해 현대의 성차별과 양극화 사회가 심화할 때 벌어질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고자 했다. 그는 지난해 후속작 ‘증언들’을 출간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폭력엔 역사적 선례가 있다며, 모든 사건은 뉴스 스크랩과 소스가 있다고도 밝혔다. 단순 가상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온몸을 부르카로 가리고 10대 초반에 강제로 결혼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탈레반의 집권으로 수십년 후퇴한 아프간 여성 인권을 생각하면 이 소설이 영원히 먼 곳에 있을 디스토피아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비단 아프간뿐일까.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정폭력, 성 학대, 착취가 늘어났다는 통계들이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유례 없는 초 저출산 시대를 겪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의 한 장면./웨이브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이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로 전복되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었다. 숨죽인 채 세력을 모으고, 치밀하게 설계해 기회를 노렸다. 일부 민감한 이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저항했지만, 대부분은 침묵하고 방관했다. ‘곧 지나갈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반란의 날, 대처할 새도 없이 여성들의 계좌를 동결해 남편이나 아버지의 소유로 만들고, 직업을 갖는 걸 금지했다. 여성뿐 아니라 체제에 저항하는 남성들까지 모두 죽여 담벼락에 매달았다.

1939년에 태어나 2차 세계 대전 중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확립된 질서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변화는 번개처럼 빠를 수도 있다”고 했다.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자유의 소중함과 책임을 잊었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길리어드 수립 전 미국에선 평범한 삶을 살던 준(왼쪽)과 모이라. 이후 시녀 계급으로 강제 동원된다./웨이브

작품엔 ‘여성 해방’의 메시지 뿐 아니라 환경 파괴와 근본주의 종교의 위험성,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대한 경각심이 모두 담겼다.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을 ‘페미니즘 작품’ 이란 틀에 가두려는 시도를 경계하고 있다.

애트우드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페미니즘 소설이 글 속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이 천사이거나, 너무 희생적이어서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뻔한 소설을 말하는 거라면,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성격과 행동 양식을 가진 흥미롭고 중요한 여성이 등장하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책의 주제·구조·줄거리에 결정적이라면, 맞다. 그런 관점에선 많은 책이 ‘페미니즘 소설’이다.”라고 썼다.

/웨이브

개요 드라마 l 2017~2021 l 미국 l 시즌 4 l 41~52분·8편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특징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평점 로튼토마토🍅83%, IMDb⭐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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