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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해철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인공지능에게 신해철의 생전 라디오 방송 11년치를 들려주고 학습시킨 결과, 신해철의 음색 뿐 아니라 말투와 습관까지 재생해냈다고 한다. 7년 전 그가 허망하게 떠나버렸을 때가 생각났다. 살면서 가끔 의외의 임종을 목격하지만 신해철의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허무했다.
▼KT 기가지니 - AI DJ 신해철과의 만남(30초 듣기)
그를 인터뷰할 때는 질문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말도 잘하면서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뮤지션이었다. 노무현을 공개 지지하고도 ‘노무현의 사람들’에 끼이는 걸 싫어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문화부 장관 후보 운운하는 루머에 대해 “내가 장관 나부랭이를 하려고 음악을 해온 줄 아느냐”고 일갈했던 그였다. TV 토론에 나가 대마초 합법화, 학교 체벌 금지, 간통죄 폐지 같은 민감한 주장을 서슴없이 했다.
그는 ‘마왕’이란 별명으로 불렸고 또 그 이미지에 걸맞게 행동했지만, 그의 명곡은 대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담긴 발라드에 있었다. 신해철 최고의 앨범인 2집 ‘Myself’ 수록곡 중에서도 ‘나에게 쓰는 편지’가 단연코 최고의 노래가 아닐까 한다.
▼신해철 - 나에게 쓰는 편지
그의 데뷔곡인 ‘그대에게’가 그렇듯이 신해철 노래들은 대개 전주에서 승부를 본다. ‘나에게 쓰는 편지’의 전주가 매혹적인 것은 멜로디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서 받쳐주는 베이스 덕분이다. 이 곡이 발표되던 1991년에 이런 베이스 라인을 만드는 국내 뮤지션은 거의 없었다. 이런 전주를 듣고도 노래를 듣지 않을 사람은 없다. 신해철은 이 노래에서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하고 고백한다. 이것이 마왕의 본 모습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같은 앨범에 덜 알려진 노래 ‘50년 후의 내 모습’이 있다. 이 곡에서도 신해철은 “강철과 벽돌의/ 차가운 도시 속에/ 구부정한 내 뒷모습…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월에 떠다니고 있을까” 하고 노래했다. 그는 현실에서 늘 쾌활하고 수다스러웠지만 그런 낙관적 모습 뒤에는 늘 모든 것을 비관적이고 회의(懷疑)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스물세살의 신인 뮤지션이 73세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는 노래를 한다는 건, 세계 대중음악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고작 마흔여섯에 세상을 등진 그의 이 노래를 다시 듣자니 새삼 쓸쓸하다.
▼신해철 - 50년 후의 내 모습
신해철은 온갖 장르를 섭렵하고 믹스한 뮤지션이었으나 그가 특히 애정을 표한 분야는 테크노와 재즈였다. 어찌 보면 상극인 두 장르를 끊임없이 뒤섞고 변주했다. 급기야 2007년에는 옛 노래들을 빅밴드 재즈로 리메이크한 앨범 ‘The Songs For The One’을 냈다. 그가 이 앨범에서 최희준의 ‘하숙생’을 불렀을 때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이 악동을 어떻게 하나, 하는 난감함 같은 것이었다.
▼신해철 - 하숙생
‘크롬’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 발표한 ‘일상으로의 초대’를 들었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제목만 봐서는 이 노래가 연인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하는 노래였다. 이런 사랑 노래에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 신해철의 방식이었다. 그는 정말 얄밉도록 영리했다.
▼크롬 - 일상으로의 초대
넥스트, 비트겐슈타인, 윤상과의 작업인 ‘노땐스’까지 신해철은 음악적 욕구를 끊임없이 분출하는 사람이었고 또 그를 감당할 만한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조용필 같은 분을 어떻게 ‘형님’이라고 부르겠느냐며 “조 장군님” 하며 술자리에서 너스레를 떨던 그가 생각나서, 그의 음반을 모조리 꺼내놓고 듣는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노래 ‘Here, I Stand For You’도 되풀이해서 들어본다.
▼신해철 - Here, I Stand For You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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