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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비도 잦고 꿉꿉할 때는 블루스를 자주 듣게 된다. 블루스는 한국에서 ‘부르스’로 불리며 남녀가 껴안고 추는 느린 춤을 총칭할 뿐, 대중적 음악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블루스는 그런 어둠침침한 음악이 아니다.
▼김목경 - ‘거봐 기타치지 말랬잖아’
블루스는 미국 흑인의 노동요에서 시작해 미국인 전체의 음악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각종 음악 축제에는 반드시 블루스 뮤지션이 등장하고, 이때 관객들은 무대 앞으로 쏟아져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블루스는 끈적한 느낌의 느린 박자 곡들도 많지만, 4분의 2박자 빠른 곡들도 매우 많다. 그렇기에 리듬에 맞춰 춤 추기 좋다.
그보다 더 중요한 블루스의 특징은 장음계에서 특정음들을 반음 낮게 연주하는 이른바 ‘블루스 스케일’에 있다. 이 음들을 활용한 블루스 코드의 음색 때문에 특유의 서정을 띠게 됐다. 미국 노예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 흑인들이 밭일 하면서 부르는 노래들이 박자는 빨라도 슬픈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축축한 날씨에 블루스가 더 귀에 쏙 들어오는 이유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김목경은 한국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블루스에 천착해 온 뮤지션이다. 그에 견줄 만한 사람은 서울에서 오랫동안 ‘저스트 블루스’라는 라이브 클럽을 운영한 채수영 정도인데, 음반 한 장만 내고 클럽 운영자 겸 연주자로 활동하던 그는 201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거봐 기타치지 말랬잖아’는 외롭게 블루스 기타를 연주해 온 김목경의 자전적 노래처럼 들린다. “기타를 치면/ 얼마나 돈을 벌을까/…/ 한 푼도 없네/ 나는 그냥 밥만 먹고 살았네/…/ 기타를 치면/ 얼마나 사랑을 해볼까/…/아무도 없네/ 모두 다 도망가 버렸네/ 기타를 치면/ 얼마나 유명해질까/…/ 아무도 몰라/ 히트곡이 하나도 없다네” 하는 가사가 흥겨운 리듬과 묘한 모순을 이룬다. 이 노래 라이브 3분 30초쯤부터 1분 넘게 이어지는 기타 솔로가 흥겨운 블루스 기타의 전형이다. 처음 듣는 사람조차 이 부분에서 고개를 까딱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로 유명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조선닷컴)가 최근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김목경도 새삼 조명을 받았다. 그가 이 노래의 원곡자이기 때문이다. 김목경이 영국 유학 당시 작곡한 이 노래는 그러나 블루스가 아니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의 노래가 포크 가수 김광석에 의해 빛을 보고 트로트 경연에 나온 임영웅 덕분에 다시 인기를 얻었으니 김목경이 “거봐 기타 치지 말랬잖아”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김목경 블루스 가운데 가장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가 ‘Play The Blues’(☞조선닷컴)다. 분명 블루스 스케일을 기반으로 쓴 곡인데 어쩐지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를 갖고 있다. 한국 현대 대중음악이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뮤지션들에게서 시작돼, 서양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에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9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어쩔 수 없이 블루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다만 블루스라는 장르로 독립돼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다.
▼김목경 - ‘여의도 우먼’
서울 여의도에서 오래 살아 온 김목경의 명곡 중 하나는 ‘여의도 우먼’이다. 이 곡은 보컬리스트와 악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번갈아 노래하는 듯한 블루스의 전형이다. 목소리를 일부러 극단적으로 찌그러뜨린 김목경이 “여의도 우먼/ 날 좀 쳐다봐” 하고 노래하면 그의 기타가 바통을 이어받아 노래를 한다.
끈적거리는 느낌의 기타 사운드도 이 노래에 등장한다. 이 라이브에는 기타가 두 대 등장하는데 김목경의 기타와 세컨드 기타의 소리가 확연히 다르다. 김목경 기타는 좀 중얼중얼하는 것 같은데 다른 기타는 쨍쨍하고 날카롭다. 이런 연주를 들으면서 ‘그 남자’가 ‘여의도 우먼’에게 드디어 말을 걸어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린다(실제로 원곡에서는 김목경과 여자 가수가 서로를 ‘여의도 우먼’ ‘여의도 맨’으로 부르며 노래한다). 가사 없는 기타들의 연주이지만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노래를 들으며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면, 이미 블루스의 세계에 한 발 깊숙이 담근 것이다.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김현철 ‘City Breeze & Love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