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넷플릭스

2007년 ‘샘물교회’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최근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고, 대통령은 비행기에 현금을 가득 실어 해외로 줄행랑치고, 자녀는 미국에서 호의호식한다는 소식들. 그중에서도 가장 믿기 어려웠던 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박탈당한 아프간 여성들의 비참한 처지였다.

‘부르카’를 안 썼다고 총살을 당하거나 요리를 못 한다고 여성 몸에 불을 질렀다는 소식들은 ‘차라리 가짜 뉴스였으면··· ‘ 할 정도로 참혹하다. 1996~2001년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통치 시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내세워 모든 여학교를 폐쇄하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다. 남성을 동반하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었기에 사회 활동도 불가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을 뒤집어쓰는 부르카 착용이 의무였고, 이를 어기면 공개적으로 매질했다.

2021년엔 다를까. 전 세계적 비난에 맞닥뜨린 탈레반은 대외 홍보에 적극 나서며 이미지 세탁을 꾀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잔혹성이 감춰질 리 없다. 탈레반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이슬람 율법이 보장하는 범위에서’ 여성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슬람 율법에 대한 탈레반의 해석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거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와 매일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파르바나. 탈레반을 만나 말싸움을 벌이게 된다./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에 탈레반의 이런 만행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2017년 캐나다·아일랜드·룩셈부르크의 회사들이 공동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던 수작이다. 유엔 친선대사로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온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작품의 배경은 2001년 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 직전으로 보인다. 캐나다 작가 데보라 앨리스의 책이 원작. 작가는 90년대 후반 파키스탄을 여행하며 전쟁과 탈레반 통치를 피해 도망친 아프간 난민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책을 썼다.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살려낸 이미지는 시내 80%가 파괴된 카불의 현실을 담담하고 처연하게 고증한다.

파르바나의 가족. 투닥댔지만 다섯 가족이 모여 행복한 시간이었다./넷플릭스

11살 소녀 파르바나는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부모·형제 자매와 함께 산다. 전쟁터에서 다리 한쪽을 잃은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나가, 글을 대신 읽고 써주거나 집에 있는 귀중한 물건을 내다 팔며 근근이 살아간다. 여성은 공부해서도 안 되고 큰 소리를 내서도 안 되는 탈레반 통치. 하지만 교사였던 아버지와 작가였던 어머니는 딸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다.

중국·이란·인도·러시아 등 여러 세력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아프간은 늘 제국의 타깃이었다. 근대 영국, 1980년대 소련과 최근의 미국까지 많은 강대국 군대가 들어왔지만 누구도 정복에 성공하지 못했던 ‘제국의 무덤’이다. 파르바나의 아버지는 딸에게 페르시아 키루스 2세,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 마우리아 제국, 징기즈칸까지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고유한 언어를 유산으로 물려주려 한다. 파르바나에겐 축복이자 고통이다.

탈레반에 끌려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부르카를 쓰고 나선 모녀. 남의 도움 없인 혼자 걷기 힘들 정도로 시야를 가린다./넷플릭스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아프간 여성들의 생활상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상으로 보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여성의 명확한 품위를 밝힌다. 혼자 밖에 나가서 불필요한 관심을 끌면 안 된다.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저주받을 것이며…”. 2001년 탈레반 통치 하의 카불은 여성의 무덤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제자였던 한 탈레반 대원과 말다툼을 벌인 후 “여자에게 공부를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잡혀간다. 갓난아이를 제외하면 집안의 유일한 남성인 아버지가 잡혀가자, 나머지 가족들의 생계가 끊겼다. “남자 없이 외출하지 말라”는 법은 이런 상황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동반자 없인 시장에서 음식을 살 수도, 물을 길어올 수도 없다.

소녀일 땐 차갑게 거절당했던 식료품점에서 드디어 음식을 살 수 있게 된 파르바나. 죽은 형의 옷을 입었다./넷플릭스

전신 부르카를 입고 아버지를 구하러 나갔다가 길에서 무참히 폭행당한 파르바나 모녀.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과년한 언니 소라야가 다른 남성과 결혼해 이들 가족 모두를 건사해주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결국 열 한 살 파르바나는 가족을 위해 남장을 하기로 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죽은 오빠의 옷을 입었다. 소녀일 땐 차갑기만 하던 세상이 남자 옷 하나로 180도 달라진다. 파르바나는 ‘불’이란 뜻의 ‘오테시’라는 이름으로 바깥세상에서 살아간다. “남자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함께 소년으로 변장한 친구 델로와르와 함께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빼앗긴 씨앗을 찾아 나선 슐레이만의 여정./넷플릭스

영화는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아버지를 구하려는 파르바나의 여정, 또 하나는 파르바나가 갓난아기인 동생을 위해 만들어낸 ‘슐레이만 이야기’다. 평범한 소년이 사악한 코끼리 왕과 맞서서 억울하게 빼앗긴 씨앗들을 되찾는 이야기. 슐레이만은 무기력하게 굴복하지 않고, 억압에 맞서 싸워 정당한 것을 되찾는다.

두 이야기는 영화 말미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진다. ‘슐레이만’은 파르바나의 죽은 친오빠 이름.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오빠의 옷을 입었지만 아마도 파르바나에겐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어린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두려움을 이겨냈다. ‘코끼리와 맞서 싸우는 슐레이만’은 슐레이만이면서 동시에 파르바나였던 셈이다.

해질녘 이슬람 사원의 모습./넷플릭스

정교하게 묘사된 아프간 카불의 풍경과 시종일관 따뜻한 영상미가 냉혹한 현실과 대비된다. 암울하지만 활기찬 카불 시장의 색감, 해질녘 이슬람 사원의 실루엣, 태양의 높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림자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 작업을 위해 2년 동안 3개국 200명의 아티스트·애니메이터가 참여했다. 기술 감독과 스태프들을 합치면 300명 가까이 투입된 셈이다. 특히 ‘슐레이만 이야기’에 공을 들였다. 종이들을 수천번 움직여가며 연속 동작을 만드는 ‘컷 아웃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했다.

음악엔 전통 아프간 악기들을 사용했다. 전통 악기와 서양 관현악의 조화가 영화를 더 매혹적으로 만든다. 사운드트랙 중엔 카불에서 녹음한 아프가니스탄 국립음악원의 소녀 합창단 목소리도 담겼다. 하지만 모두 옛날 일이다. 탈레반 세력은 예술도 강하게 억압한다. 음악과 춤·오락을 금지하는 탈레반은 음악을 듣다가 적발된 시민을 잔인하게 처벌하고, 집에 악기가 있는 사람을 채찍질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파르바나(왼쪽)와 함께 남장한 친구 델로와르./넷플릭스

아프간엔 파르바나처럼 남장한 채 가족을 돌보는 소녀들이 많다고 전해진다. 파르바나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먼저 남자옷을 입고 돈을 벌던 옛 학교 친구 델로와르 덕분이었다. 아버지를 찾으려는 파르바나와 달리 델로와르는 홀로서기를 꿈꾸며 한푼 두푼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목적지가 달랐던 두 소녀는 결국 헤어짐의 갈림길에 서고, 미래를 기약하며 한 가지 약속을 한다. “델로와르. 네가 말했던 해변에서 만나. 달이 바다를 끌어당기는 곳.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

언젠가 탈레반이 물러가고 새로운 세상이 오면, 그 시기는 아마도 20년 뒤인 2021년, 엽서를 보며 함께 꿈꾸던 휴양지 해변가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그때까지 안녕” 하고 돌아선 소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20년 전으로 회귀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에 마음이 무겁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모습./넷플릭스

개요 애니메이션 l 캐나다·아일랜드·룩셈부르크 l 2017년 l 1시간 33분

등급 12세 관람가

특징 모든 장면이 현실이라 더 비통하다

평점 로튼토마토 관객 평가🍅95%, IMDb⭐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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