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신화에 매료된다. 신비한 출생, 기이한 사건들, 영웅의 행적, 종교적 색채, 초자연적 현상, 퇴마 등. 신화 속 구성은 늘 사람들을 설레게 했고, 수천년 동안 많은 이의 입과 글을 통해 널리 읽혀왔다. 그만큼 신화적 구성은 흥행이 보장된 이야기 거리이기도 했다.

악귀 '붉은 눈'과 '쳐녀보살'의 행적을 쫓는 전직 승려 선화(오른편)와 청년 스님 청석(왼편). /넷플릭스

그래서인지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신화적, 종교적 설정으로 가득 채운 오컬트 색채의 영화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관객 544만 명을 끌었던 ‘검은 사제들’의 성공을 시작으로 ‘사바하’, ‘사자’, ‘곡성’ 등 많은 작품들이 신화적 색채 가득한 이야기로 출사표를 던져왔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신화 주제를 내세운 영화가 등장했다. 지난 2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영화 ‘제8일의 밤’이다. 부처가 봉인한 악귀 ‘붉은 눈’과 ‘검은 눈’이 서로 만나면 세상이 악과 고통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 이를 막으려는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개봉 당일 한국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올랐고, 아시아권 순위 10위권에도 들었다. 하지만 한켠에선 ‘용두사미’ 줄거리란 혹평도 나온다.

넷플릭스 영화 제8일의 밤 중 한 장면/넷플릭스

◇'번뇌'와 ‘번민’. 깨어나선 안 될 것이 깨어나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사막 한가운데서 한 고고학자가 전설 속 ‘붉은 눈’이 봉인된 상자를 파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붉은 눈은 ‘검은 눈’과 함께 인간을 괴롭히려 지옥문을 열려고 했다가 부처에게 봉인된 악귀였다. 영화는 부처가 붉은 눈을 사막에, 검은 눈은 한국의 깊은 산속에 봉인시켰고, 두 눈이 다시 만나는 날 세상이 멸망하게 될 것이란 예언을 남겼다고 말한다.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이 깨어났다는 설정 자체는 금기의 선을 넘고자 하는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해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덕분에 이 영화의 설정 설명에 치중된 도입부만큼은 상당히 흡입력 있게 전개된다. 특히 ‘눈’으로 형상화된 두 악귀의 또 다른 이름이 ‘번뇌’와 ‘번민’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인간이 속세에서 겪는 괴로움이 번뇌와 번민으로부터 온다는 불교적 설정을, 누군가를 감시하는 듯한 ‘눈’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영화 제목 속 숫자 ‘8’은 눕히면 ‘무한(∞)’이 되는 숫자로, 사실상 번뇌와 번민이 계속되는 ‘무한의 밤’을 비유한 것이다.

'제8일의 밤'에서 부처에게 봉인 당했다가 풀려난 악귀로 나오는 '붉은 눈'/넷플릭스

영화는 두 눈이 세상에 다시 나올 땐 7개의 징검다리를 건너 제8일에 부활한다는 흥미로운 설정도 하나 더했다. 즉, 하루에 1명씩 징검다리가 될 사람을 살해해 제물로 삼으며 제8일에 검은 눈을 만나 함께 부활해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마지막 징검다리인 ‘처녀보살(김유정)’을 붉은 눈이 죽이기 전 먼저 살해해야만 한다. 이 사명을 받든 전직 승려 선화(이성민)와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청년 스님 ‘청석(남다름)’이 검은 눈을 지키는 동시에 붉은 눈과 징검다리가 된 사람들, 그리고 처녀보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신화가 땅으로 내려왔을 때 드러난 한계

문제는 이 같은 흥미로운 신화적 설정들이 땅으로 내려왔을 때 개연성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내내 기괴하고 흥미로운 설정을 가득 던져주지만, 정작 이것이 왜 등장하고,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불친절하다. 이 탓에 영화 공개 전에는 올해의 기대작이란 호평이 쏟아졌지만 영화 공개 후엔 ‘예고편이 전부였던 영화’란 뼈아픈 혹평이 따라붙기도 했다.

영화 '제8일의 밤' 예고편의 한 장면. 청석이 붉은 눈에게 몸을 잠식당한 소녀를 마주하는 장면으로, 기괴하고 공포스런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개봉 전 큰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대표적 예가 처녀보살로 가는 여섯 개의 징검다리들이 왜 제물로 바쳐져야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제물들이 서로가 연을 맺었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나열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우연’의 연속이라 억지로 꿰어놓은 것 같은 어색한 느낌만 준다.

영화는 이들 징검다리들을 저마다의 ‘업보’를 지닌 인물들로 그리긴 한다. 번뇌와 번민으로 표상되는 붉은 눈과 검은 눈이 사람의 업을 징검다리 삼아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뜻을 담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업보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시도는 하지 않는다. 이들이 왜 이런 업을 짓게 됐는지, 붉은 눈이 왜 이들을 골라냈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 보니, 이들을 살해하는 붉은 눈의 악행들이 깊은 여운을 주진 못 한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이 붉은 눈을 막는 방법도 우연스런 사건들에 기대게 되고, 악귀를 처단하는 결말 또한 통쾌하다기보단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극 중 반전을 숨긴 인물로 나오는 처녀보살 '애란'. /넷플릭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줄거리를 차지한 ‘처녀보살’의 역할을 그저 관객들의 눈을 홀리는 수단으로만 활용한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반전 설정을 지닌 인물임을 감안한다 해도 극 중 활약상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특히 주어진 대사가 “내 이름은 애란” 말고는 전무할 지경인데, 영화 초반에는 이런 묵비권 캐릭터가 신비감을 줬지만, 후반부에선 그저 답답한 인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이 영화, Stream or Skip?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극 중 세상의 멸망을 막고자 고군분투하는 선화가 악귀와 대치할 때 반복적으로 외우는 산스크리트어 주문으로 축약된다. 극 중 발음 상으로는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 한자어로 바꾸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로 여러 영화에서도 자주 차용됐던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미 세상에 진리가 와 있음을 내가 깨닫지 못 했으니, 깨달으려 노력하자’는 뜻의 이 주문처럼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업보를 다스리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만큼 종교적 색채가 뚜렷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 영화를 좋아해온 사람이라면 상당히 흥미로워할 주제다. 특히 비슷한 종교적 색채 영화 ‘사바하’를 재밌게 본 사람들이라면, 상당 부분 사바하의 분위기를 닮은 이 영화를 크게 반길 수 있다. 115분 분량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구조가 단순해져 킬링타임 용으로 보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거창한 주제에 비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뒷심이 부족한 게 아쉽다. 용두사미의 결말로 끝나는 영화를 정말 싫어한다면 피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개요 미스터리 스릴러 l 한국 l 1시간 55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STREAM it 종교적 색채가 강한, 신화 배경의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면.

SKIP it 용두사미 결말을 정말 싫어한다면.

평점 IMDb⭐ 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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