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ING 예능 프로그램 '환승 연애'의 출연자들./CJ

#1.비연예인이 출연하는 연애 프로그램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방영된 MBC 맞선 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가 있다. 20~30대 남녀가 자기소개와 노래·춤으로 매력을 발산한다. 마지막엔 ‘사랑의 작대기’를 쏘아 마음을 확인했다. 진지한 연애라기보단 방송사에서 판을 깔아준 단체 미팅에 가까웠는데, 시청률 20%대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 있었다.

#2.’사랑의 스튜디오'가 1세대라면, 2세대 연애 프로그램은 SBS의 ‘짝’이다. 당시로선 파격적 컨셉트였다. 결혼 적령기 남녀 10여명이 일주일동안 ‘애정촌’에 머무르며 오로지 짝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교양PD로 구성된 제작진은 이 과정을 예능이 아닌 실험 다큐멘터리처럼 담았다. 남녀 관계의 지질하고 속물적인 속성이 관전 포인트였다.

#3.방송이 본격적으로 비연예인 남녀 사이의 연애와 설렘을 탐구하기 시작한 건 채널A ‘하트시그널’이 원조다. 남녀 여럿이 ‘시그널 하우스’에서 동거하며 서로 ‘썸’을 타고, 패널들이 시청자들과 함께 러브라인을 추리했다. 말과 행동, 눈빛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시청자가 직접 연애하는 듯한 만족감을 줬다. 이게 3세대였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방송된 MBC '사랑의 스튜디오'. 마지막에 이뤄지는 '사랑의 작대기'는 최고의 관전 포인트였다./MBC

사랑의 스튜디오'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짝’ ‘하트시그널’을 거쳐 올해 등장한 프로그램들은 ‘3.5세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평범한 ‘썸’으론 부족하다. ‘관찰’ ‘대리 설렘’ 같은 인기 요인을 그대로 들고가면서, 동시에 금기의 영역을 아슬아슬 건드린다.

커플들이 여행을 떠나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썸을 타보는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 헤어진 연인들이 한 집에서 살며 마찬가지로 다른 상대와 썸을 타는 TVING 오리지널 ‘환승 연애’가 조회수 수백~수천만 회를 기록하며 인기를 끈다.


◇'맞선'에서 ‘썸’, ‘이별'까지… 3.5세대 리얼리티

하트시그널 시즌 2의 출연자들./채널A

‘사랑의 스튜디오’엔 7년 간 2800명의 남녀가 출연했는데, 이 중 47쌍이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하는 커플이 나오면 신문에 기사까지 실렸다. 연애는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했던 시기. 결혼 적령기 청춘의 ‘맞선 프로그램’에 본인 뿐 아니라 가족까지 나서서 출연 신청을 했다.

이런 트렌드가 ‘하트 시그널’부터 바뀌었다. 2014년의 ‘짝’에는 “인생의 반려자를 찾고싶다”는 남녀들이 줄을 섰는데, 2017년의 ‘하트 시그널’은 결혼이란 목표의식 없이 그저 ‘썸’을 탔다. 사회적 압박 없이 순간의 감정 자체에 집중했다. 2021년의 ‘체인지 데이즈’ ‘환승 연애’는 가벼운 ‘썸’을 넘어 연애와 권태, 이별까지 다루고 있다.

출연자의 면면도 다르다. 하트시그널은 여전히 ‘남자는 스펙, 여자는 외모’란 사회적 편견에 따라 출연자를 모집했지만, 2021년의 예능 출연자들은 모든 면에서 평범에 가깝다.

파격적 설정엔 플랫폼의 변화도 한몫 했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이 공중파와 종편, 케이블의 전유물이었다면 요즘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OTT, 웹 예능으로 제작이 몰린다. ‘체인지 데이즈’는 카카오TV가, ‘환승 연애’는 CJ계열 OTT 플랫폼인 ‘티빙(TVING)’이 자체 제작했다. 넷플릭스도 한국판 ‘투핫’, 19금 무인도 연애 리얼리티 ‘솔로지옥’을 준비 중이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예능 프로그램 '체인지 데이즈'의 출연자들./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엔 총 세 쌍의 연인이 등장한다. 만난 지 500일 된 캠퍼스 커플, 권태감에 사로잡힌 10년 차 연인, 1년 6개월을 만났지만 대화가 없어 이별을 고민하는 커플이다. 모두 ‘잃어버린 설렘’을 되찾기 위해 모였다.

세 커플은 일주일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한 공간에서 지낸다. 서로 파트너를 바꿔가며 데이트를 하다, 마지막 날엔 그 중 한 명을 선택해야한다. 그게 지금의 애인이어도 괜찮고 새로 만난 남의 애인이어도 된다. 파격적인 설정 때문에 방영 초기 ‘스와핑(배우자 교환)’을 권장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정도는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이토록 솔직할 수 있을까. 세 커플은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연인 사이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까발린다. “이젠 의리나 정으로 만나는 것 같아” “솔직히 남자친구가 마지막에 날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왜 서로 비난하고 으르렁 대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예능 '체인지 데이즈'의 한 장면./카카오TV

상대를 바꿔 만나는 ‘체인지 데이트’는 합법적인 ‘바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함께 요트를 타거나 낮술을 마시는 건 기본이고, 밤 수영이나 ‘차박’을 하기도 한다. 스스럼없이 손을 잡거나 하이파이브를 하고, 어깨를 기대는 등 과감한 스킨십도 한다. 일탈의 짜릿함 때문일까, 아니면 지긋지긋한 상대에서 벗어난 해방감일까. 예상보다 훨씬 화끈하고 적극적이다.

“난 그래서 네가 좋아” “오늘 여자친구 생각 거의 안했어. 너랑 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그런가…”. 어떤 출연자는 연인을 잊고 새로운 사람과의 데이트를 그저 즐기지만, 어떤 이는 같은 시간 다른 출연자와 데이트하고 있을 자신의 연인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남에게 이토록 말하기 쉬운 것을 왜 내 연인에겐 털어놓기 힘들까’…. 데이트를 통해 본인의 잘못과 문제점을 돌아보기도 한다.

남녀를 나눠 합숙하지 않고 커플끼리 같은 방을 쓴다는 점이 다른 연애 리얼리티와 구별된다. 낮엔 다른 이성과 데이트하고, 밤엔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 셈이다. 결혼 안 한 커플이 자연스럽게 한 방을 쓰는 것도 한국 리얼리티에선 파격적인 설정이다.

이 프로그램엔 연인이나 부부들이 함께 본다는 후기가 많다. 함께하는 기간이 늘어날 수록 설렘은 줄고 호의는 당연해진다. 그런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본다. 이해할 수 없는 출연자들의 행동도, 내 상황을 대입해보면 일면 이해가 간다. “내가 말할 때 당신도 저런 기분이었어?”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잖아”… 대화의 물꼬를 틀 기회다.

개요 로맨스·리얼리티 예능 l 한국 l 총 17회 l 회당 32~40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설렘을 되찾아드립니다

조회수 누적 20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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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의 새 출발을 응원할 수 있을까

TVING 오리지널 예능 '환승연애'/CJ

‘환승 연애’는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나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는 리얼리티다. 이들에게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헤어진 연인과 재결합하느냐, 새로운 사랑을 만나느냐. 제작진은 매일 밤 출연자들에게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혹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란 문자를 보내 상대방의 기류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4년을 만나고 헤어진지 3개월 된 커플부터 만난 기간보다 떨어져있던 기간이 더 긴 커플까지 네 쌍의 ‘X – 연인’이 등장한다. 과거 연인 사이를 드러내는 건 금지된다. 이들은 서로 모르는 척 등장해, 처음 보는 사람처럼 존댓말을 한다. 더 자유롭게 썸을 타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에게 반해 데이트를 하건 헤어진 상태니 문제 없다.

그러다보니 누가 서로의 X인지 추리하고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내 전 연인이 다른 사람과 몸을 가까이 할 때, 단 둘이 데이트를 나갈 때, 데이트를 하고 와서 ‘우리’라는 친근한 호칭을 쓸 때, 흔들리는 눈빛마저 감추진 못한다. ‘내가 갖긴 싫지만 남 주긴 싫다’는 심리도 엿보인다.

‘환승’이란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지만, ‘체인지 데이즈’에 비하면 매운 맛이 덜하다. 대신 출연자들의 만남과 이별 스토리가 더해져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출연자들의 미련 가득한 눈빛 교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TVING 예능 프로그램 '환승 연애'의 한 장면./CJ

이 프로그램은 이별을 후회하는 연인들의 심리를 백분 활용한다. “OO이는 제가 이별을 후회한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새로운 인연보단 헤어진 연인을 다시 보고 싶어 나온 출연자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X의 데이트를 곁에서 지켜봐야하는 출연자들의 감정소모가 상당해 보인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애인을 모르는 척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매일 밤 마시는 술 때문인지. 출연자들은 순간의 감정에 더 몰입하고 솔직해진다. 헤어진지 수 년이 지났는데도 “애인을 뻿겼다”는 감정에 분노하는가 하면 이별의 후폭풍이 몰려와 몰래 숨어 울기도 한다.

깨끗하게 헤어졌다 해도 전 연인의 새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상대와의 ‘썸’은 체인지 데이즈에 비해 조심스럽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에게 ‘X 소개서’를 직접 써 읽도록 하고, X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새로운 사람과 방문하게 한다. 데이트 전엔 상대의 X에게 익명 질문으로 정보를 모은다. 일반적인 연애 관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개요 로맨스·리얼리티 예능 l 한국 l 12회 이상 l 회당 1시간 내외

등급 없음

특징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조회수 무료 공개분 1회 22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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