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넷플릭스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Saving the Capitalism)’는 넷플릭스가 2017년에 만든 다큐멘터리다. 갈수록 소수에게 부(富)가 집중되는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파헤쳤다. 다큐가 나온 후 4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한국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반추하며 본다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지난 4년 간 한·미 두 나라의 경제정책을 굳이 좌우 이념적 측면에서 따져 보자면, 도널드 트럼프 정권 4년 동안 미국은 다분히 우경화됐고, 한국은 좌경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동안 객관적인 지표로 따졌을 때 경제 성과는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나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우파적 경제정책이 경제성장 면에선 우월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결코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미국 경제가 트럼프 정부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법인세와 소득세를 크게 낮춰주고 기업가와 자본가의 편을 대놓고 들어 준 트럼프 정부의 정책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책이 잉태시킨 부작용이 앞으로 얼마나 더 터져 나올지도 단언하기 어렵다.

반면,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고 부동산 세금 등을 폭등시키며 사회 소외 계층 편에 섰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4년 간 지속된 후, 한국의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한·미 경제 성적표의 이 같은 차이를 오로지 정책의 차이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할 때 이 다큐는 상당한 시사점을 던진다.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된 로버트 라이시의 저서 '자본주의를 구하라'./넷플릭스

이 다큐는 1년 먼저 출간된 로버트 라이시의 동명(同名) 저서를 바탕으로 한다. 다큐에는 라이시가 직접 출연해 자신의 겪었던 여러 일들을 증언하고, 발언하고 설명한다. 라이시는 현대 자본주의의 병증(病症)을 진단하고 그 치료법을 제시한다. 라이시에 의하면 현대 자본주의는 죽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자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자유를 잃게 되는 이유는 돈이 점점 더 소수에 쏠리고, 돈을 가진 소수들이 정치 권력까지 사들이고, 이 권력을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어서 다수의 자유가 박탈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소수의 부유층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가게 되고, 소수의 부유층은 그 돈을 이용해 정치권력까지 사고, 그 정치권력이 소수 부유층으로 돈을 더 몰아주게 되는 악순환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대 장점인 자유를 대다수의 시장 참여자가 누릴 수 없게 됨으로써 자본주의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을 끊고, 자유를 잃어가는 빈곤층을 살려내야 한다는 게 라이시의 핵심 주장이다. 그 구체적 방법론은 많은 사람이 조직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목소리를 내 정치적 영향력을 찾아와야 한다고 봤다.

라이시의 이런 주장을 표면적으로 따진다면 다분히 좌파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라이시는 진보적 학자에 속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지만 첫 4년 임기만 마친 후 사임한다. 저임 노동자 임금 인상과 기업 자본가 지원 축소 등 자신의 철학과는 반대로 정부 정책이 흘러간다는 게 사임 이유 중 하나였다. 하버드대, 브랜다이스대, UC버클리 등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수퍼자본주의(Supercapitalism)’,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shock)’, ‘1대99를 넘어(Beyond Outrage)’ 등을 썼다. ‘수퍼자본주의’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균형이 어떻게 무너졌으며, 자본주의는 수퍼자본주의가 되고, 민주주의는 이에 압도당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1대99를 넘어’에서는 상위 1%에 부(富)가 집중되는 불평등의 원인을 파헤쳤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직원 과달루페. 시급 12달러 55센트를 받는다. 월급 1200달러 중 월세로 900달러를 쓰고 단기 소액 대출을 받아 각종 요금을 내며 근근이 버틴다./넷플릭스

다큐 자본주의를 구하라에는 다양한 현장과 사람, 눈에 쏙쏙 들어오는 데이터들이 등장해 어려운 경제 얘기를 쉽게 와닿게 해준다. 1947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기업 이윤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노동임금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이는 중산층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을 통계로 보여준다. 1970년대에 비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역시 70%에서 20%로 급락했다.

작은 가게 4개를 큰 회사로 만들어낸 사업가도 다큐에 출연해 갈수록 기회와 가능성이 줄어드는 미국 사회의 기업 환경을 전한다. 자신이 20대였을 때와 비교해 지금의 20대들은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패스트푸드 가게 직원은 열심히 일해도 한 달에 1200달러(약 135만원)밖에 벌 수 없고,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가끔 단기소액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증언한다. 라이시는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서 그 누구도 상근직으로 일하면서 생존에 대한 걱정을 하게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넷플릭스

라이시는 또, 미국 CEO(최고경영자)들의 평균 임금이 일반 근로자의 100배가 넘었는데도 미국은 그들에 대한 세금 우대 정책을 고수하고 CEO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정부와 의회에 로비를 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초우량기업인 구글에까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결국 중산층의 주머니에 이 부담을 다 떠넘기는 모순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한다. 미국인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의료비 지출이 많지만 제약회사와 의료보험회사들 간의 담합,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는 법 제도로 인해 약값은 비싸지고 치료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나라가 됐다고도 지적한다. 속도는 느린데 비싸기만 한 인터넷, 항공회사의 폭리로 인한 비싼 항공료,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보험료 등등.

라이시는 일반 시민 거의 모두가 지지하는 법이 입법화될 확률은 30%였고, 대기업과 부자가 지지하는 법은 지지 정당과 관계없이 60%의 확률로 입법화됐다는 통계자료도 제시했다. 그는 “일반 미국 시민이 공공정책에 끼치는 영향은 0에 가까울 뿐더라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넷플릭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이 원하는 정책이 입안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의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라이시가 말하는 자유다. 무엇이 진정한 자유이며 자유의 상실을 어떻게 해소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라이시는 최저임금을 올리고 대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라고 하지만 핵심적인 주장은 ‘창의적인 지식산업, 고급 일자리가 생길 수 있는 기반을 확충하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가 다른 주에 비해 높은 최저임금을 수용할 수 있는 이유도 이 같은 산업적 역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라이시는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경제체제 그 자체는 ‘부도덕하다, 도덕적이다’, ‘좋다, 나쁘다’를 가를 수 없어요. 어떻게 조직됐는지가 문제죠. 국민을 위해 조직된 체제라면 도덕적인, 좋은 체제가 될 수 있죠.”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경제적 자유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2017 l 73분

등급 12세 관람가

특징 상위 1%의 독주를 멈추는 법

평점 로튼토마토🍅100% l IMDb⭐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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