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강도살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당시의 데일 시글러./넷플릭스

‘살인’에도 선악의 꼬리표를 가려붙일 수 있을까? 법조인들은 법정에서 항상 이와 같은 물음과 함께 ‘살인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무엇인가’란 딜레마에 봉착한다고 말한다. ‘살인’이란 행위 자체를 용납할 수 없음에도 ‘살인의 이유’ 만큼은 살인자의 형벌을 더하거나 덜하는 명분이 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 ‘나는 살인자다’는 이 같은 딜레마를 피해자가 아닌, 실제 미국 교도소에 수감된 ‘살인자들의 입’을 통해 풀어내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이 다큐 제작진 카메라 속에 담긴 살인자 21명은 저마다 자신들의 ‘진짜 살인’ 이유를 털어놓는다. 물론 “꼭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특히 이 다큐가 가장 최근에 공개한 시즌 ‘나는 살인자다: 출소 그 후’ 편에서는 “30년 전 법정에서 말할 수 없었던 ‘진짜 살인의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형수 데일 시글러가 등장한다.

◇30년 전,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던 진실?

자신의 이야기를 제작진에게 털어놓는 데일 시글러. /넷플릭스

수감번호 999005번의 사형수 데일 웨인 시글러. 그는 1991년 미국 텍사스 알링턴의 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원 ‘존 젤트너’를 계획적으로 강도살해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와 수사당국은 데일이 고작 400달러(한화 약 45만원)를 훔치려고 존에게 총을 여덟발이나 쐈고, 그가 친구들에게 평소 “젤트너가 동성애자라서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으며, 살인 사실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점에서 그의 죄가 악질적이라고 판단했다. 데일 역시 재판 과정에서 거론된 자신의 살해 혐의와 동기를 인정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뒤, 텍사스의 배심원 선정법이 개정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된다. 바뀐 배심원 구성으로 다시 재판을 받은 그에게 사형 판결이 거둬지고 대신 무기징역이 재선고된 것. 이후 30년 뒤 데일은 모범수로 지냈다는 이유로 ‘가석방’ 대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결국 2019년 출소하게 된다.

그리고 출소 직후 데일은 다큐 제작진의 카메라를 향해 “자신이 법정에서도 말하지 않았던 존을 죽인 진짜 이유를 밝히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10대 시절의 데일 시글러. /넷플릭스

데일은 특히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함께 학대를 받았고, 10세 때 성추행을 당한 경험도 있어 트라우마가 컸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술과 마약에 절은 20대를 보냈고, 도중 만난 존이 자신에게 잠자리를 제공했지만 자신이 잠든 사이 강제추행하려 했으며, 동성애자가 아닌 자신이 이를 거절하자 “내 말대로 안 하면 너랑 나랑 즐겼다고 소문 낼거야”라며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살인자의 입, 믿을 수 있을까

캐럴을 '두 번째 엄마'라고 부르며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그녀의 발을 씻기는 데일. /넷플릭스

제작진은 이런 데일의 주장을 묵묵히 카메라에 필터 없이 담아낸다. 자칫 ‘살인을 미화한다’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모습이긴 하지만, 데일의 주장 직후엔 그만큼이나 피해자 유족과 수사 당국의 일침을 가감 없이 배치해두었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실제 법정에 앉은 배심원이 되어 피고와 원고의 주장을 번갈아 듣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큐에선 쉽게 믿기 어려운 데일의 주장에서 진정성을 느낀다는 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가장 먼저 데일에게 손을 내민 건 그가 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 받은 71세의 ‘캐럴 화이트워드’였다. 캐럴은 “데일이 편지에서 보여준 선함을 믿는다”며 심지어 출소한 데일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하며 직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 캐럴을 데일은 ‘두 번째 엄마’, ‘캐럴 마마’라고 부르며 발을 씻겨주는 등 극도로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교도소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데일은 교회에서도 자신이 존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러 차례 간증한다. “많이 뉘우쳤고, 앞으로 선한 일을 행할 것”이라는 데일의 말에 교인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심지어 일부는 눈시울까지 붉힌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며 처음에는 데일이 자신의 할머니 집에 사는 걸 꺼려했던 캐럴의 손자들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이해하게 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작 진실을 말할 수도, 직접 용서할 수도 없는 피해자

문제는 이 같이 데일의 진정성을 믿는다며 도움을 자청한 이들이 살해된 존과는 일면식도 없거나,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이들 뿐이란 점이다. 정작 피해를 입은 유족들과 데일을 직접 수사했던 검사와 형사는 “데일이 뉘우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의 말을 액면대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데일이 "존이 자신과 동성연애를 하라고 협박해 그를 죽였다"고 말하는 녹취록을 듣고 있는 '토미 르누아' 형사. /넷플릭스

다큐 제작진은 특히 데일이 자신이 존을 죽인 이유를 밝힌 녹음본을 30년 전 데일의 살해 혐의를 조사했던 담당 경찰 ‘토미 르누아’에게 들려준다. 이를 들은 토미는 “위험하고 비이성적인 사고”라며 “데일이 역할을 바꾸고 있다”고 비판한다. 데일이 존 젤트너를 악당으로 만들고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며 소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미는 “그는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데일의 담당 검사였던 ‘그렉 밀러’ 역시 “데일이 말한 게 사실이라도 사람을 죽일 이유는 못 된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 쉽다”고 말한다.

◇살인자에게도 진실을 말할 권리는 있다?

"살인자에게도 진실을 말할 권리는 있다"고 주장하는 데일 시글러. /넷플릭스

다큐 말미에서 제작진이 “살인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냐”고 묻자 데일은 “그건 항상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거다. 그걸 연연해 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대꾸한다. “왜 법정에서 이유를 말하지 않았냐”는 물음에는 “사람들은 어떤 고통과 고난으로 살인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변호사는 비웃었고, 사법제도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데일은 특히 다큐 내내 자신이 “충분히 죗값을 치렀고, 앞으로도 죄의 책임을 질 것이며, 주님의 은혜로 용서 받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도 아니고, 누굴 악당 만들거나 변명하는 게 아니다. 진실을 알 뿐이다”라며 “살인자는 진실을 말할 권리가 없냐”며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큐는 데일이 살해 동기를 뒤늦게 ‘강도'에서 ‘피해자의 협박’으로 바꿨다는 걸 피해자의 유족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짚는다. 법적으로 가석방 된 사형수가 피해자 가족을 찾아갈 수는 없게 돼 있긴 하지만, 과거 재판 과정에서나 출소 이후에나 한 번도 데일이 피해자 가족에게 직접 자신의 사정을 알리거나 용서를 구하려고 노력한 적이 전혀 없었다는 걸 암시한 것이다.

실제 다큐 내내 카메라 속 데일은 자신이 “주님께 용서 받았다”고 하지만, 단 한 번도 “유족에게 미안하다”거나 “그들에게 용서받았다”고는 언급하지 않는다. 유족들 또한 “그가 뉘우치는지도 모르겠다. 절대 용서란 없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우리 형은 살아나지 않는다”며 데일의 가석방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살인자 스스로가 자신의 살인이 ‘이유 있는 살인’이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피해자 유족에게 남은 건 그저 ‘사람을 죽인 살인’이란 진실 뿐이다.

◇'나는 살인자다’

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2018~2020 l 시즌1(10회), 시즌2(10회), 나는 살인자다: 출소 그 후(3회)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특징 살해 동기가 변명인지, 진실인지 직접 가려내는 배심원 대리 체험

평점 로튼토마토🍅68%(팝콘지수) IMDb⭐7.4/10

<나는 살인자다: 출소 그 후> 바로 보기

<나는 살인자다 시즌 1, 2>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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