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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 앨범아트

극장에서 영화 시작을 기다리는데 광고 한 편이 눈길을 끈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엄마가 서울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아들을 떠올리며 말한다. “넌 어릴 때부터 소고기보다 황태미역국을 좋아하는 아이였지. 오늘 생일인데 어디서 미역국이라도 먹었는지….” 정작 아들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코를 박고 있다.

단편영화처럼 뭉클하기까지 한 이 음식 배달앱 광고는, 뚝배기가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을 넣고야 말겠다는 이상한 고집이 거슬리지만, 당장 누군가에게 맛있는 밥 한 그릇 보내줄까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 광고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 밴드 ‘혁오’의 ‘Love Ya’다.

제목처럼 ‘I love you’라는 가사가 후렴에서 계속 반복되는 이 노래는 비교적 단순한 멜로디와 혁오의 카랑카랑한 기타, 긴장을 끌어가는 드럼이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주요 매체는 물론 포털사이트에서조차 ‘음악’이란 분류가 사라졌고, 어느 구석에 있다 해도 음악 소식이라곤 없다. 그러니 ‘Love Ya’ 같은 노래는 광고에 쓰이지 않으면 알려질 방도가 없다.

뮤직비디오도 신선하다. 여자와 남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람과 개, 아버지와 아들 같은 갖가지 사랑의 관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사랑한다고 되풀이 노래한다. 혁오의 리더인 오혁은 중국 국제학교에서 초·중·고를 다녔고 중국어와 영어, 한국어로 노래를 쓰고 부른다.

혁오의 ‘Gang Gang Schiele’ 뮤직비디오는 요즘 한국의 젊은 뮤지션들의 실력은 물론, 창작 방식과 패션, 스타일까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역시 가사가 영어인데 몇 년 전 남북 평화 무드 시절에 쓴 곡이다. 노래 제목은 ‘강강술래’를 그렇게 표기했다. 베를린에서 작업하다가 ‘술래’ 대신 에곤 쉴레의 ‘쉴레’가 떠올랐다.

스튜디오가 아니라 야외에서 원테이크로 녹음한 것으로 들리는 이 노래는 얼핏 구성이 헐거운 연습곡 같기도 하다. 그건 아마도 이 노래가 지향하는 화해와 용서의 분위기를 은유하는 것 같다. 혁오의 음악은 기존 한국 대중음악에 없다시피 한 스타일이며 인디음악에서도 매우 독특하다. 영미권 얼터너티브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도 중국도 아닌 동양적 멜로디와 화음이 뒤섞여 있어 그 독창성이 드러난다.

혁오는 뛰어난 록 밴드이기도 하다. 중국어 가사로 된 노래 ‘Wanli’는 뮤직비디오만 보면 티벳의 록 밴드 음악 같다. 압도적인 풍광의 황무지를 배경으로 찍은 이 영상에서 혁오는 록을 중국풍으로 만들어도 얼마든지 로킹(rocking)하다는 걸 들려준다. 가사 또한 당시(唐詩)처럼 관조적이다. “저 멀리 달이 참 기묘하다/ 바다에 배들은 보이지 않는데/ 어제의 후회는 다 잊었네/ 오늘 일도 다 잊었네” 하고 노래한다. 이 노래의 압권은 오혁과 코러스가 “에에 에에 에에 에에” 하고 추임새를 넣는 부분이다. 다른 노래였다면 혁오는 이 부분을 기타 솔로로 연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혁오 최고의 노래 ‘톰보이’가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얼떨결에 나가 연예인 대접을 받은 뒤 쓴 노래다. 그 가사며 처연한 멜로디가 21세기 한국 대중음악 100선에 미리 꼽힐 만하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하는 부분이 하이라이트다. 작사가 이주엽은 “오랫동안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으로 진부한 또는 저급한 동어 반복을 해왔던” “반지성주의의 늪에 빠져있던 주류 음악계에 날리는 통쾌한 지적(知的) 일격”이라고 했다. 가수의 탈을 쓴 연예인들이 나이테도 생기기 전에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머는 사이, 혁오는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하며 자벌레처럼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김민기 ‘아침이슬’

🎧조용필 ‘사랑해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Rocky Trail’

🎧Ssing Ssing ‘NPR 콘서트’

🎧한예리 ‘Rain Song’

🎧한영애 ‘봄날은 간다’

🎧들국화 ‘사랑한 후에’

🎧롤러코스터 ‘어느 하루’

🎧소히 ‘산책’

🎧윤석철 트리오 ‘즐겁게,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