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범택시'에서 범죄자를 때려잡는 잘생긴 택시기사 '김도기'. /모범택시

최근 ‘방구석 코난’이란 단어가 화제다. 한강에서 사망한 의대생 손정민(22)씨의 사건을 두고 수많은 이들의 추리와 추측성 루머가 쏟아지면서다. 유명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 빗댄 이 단어는 수사기관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만의 논리에 매몰돼 특정인을 범인으로 매도하는 음모론자를 멸칭하는 속뜻을 담고 있다.

이같은 방구석 코난들의 대거 등장 배경에는 ‘수사기관에 대한 짙은 불신'이 깔려 있다. 이 불신은 그간 ‘버닝썬 사건', ‘이용구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등을 거치며 견고해져 온 것이기도 하다. 이번 정부 들어 경찰은 ‘견찰’, 검찰은 ‘떡검’과 ‘개검’이란 별칭으로 불려온 지도 오래다. “권력과 유착해 비리를 묻어버리는 수사기관은 못 믿겠으니, 내가 대신 진실을 밝혀내겠다”, 이것이 현재 수많은 방구석 코난들을 한강으로 향하게 만드는 명분이다.

이 같은 현실 속 불신을 토대로 스토리를 그린 드라마가 있다. 바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SBS 드라마이자 OTT매체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 ‘모범택시’다. 다만, 이 드라마 속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과 대처방법은 더 처절하고, 격렬하다. 강력범죄 희생자들이 모여 무능한 수사기관 대신 악랄한 범죄자들을 모범택시로 납치해 사설 감옥에 잡아 가둔다는 내용이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던 이들, 택시를 몰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에게 달려들다가 경찰에게 제압 당한 김도기와 그를 지켜보는 무지개운수 장성철 대표. /모범택시

이야기의 시작은 2017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특전사 대위였던 ‘김도기(배우 이제훈)’는 휴가 차 집에 돌아왔다가 어머니가 살해된 모습을 목격한다. 이후 체포된 범인의 현장 검증을 보러 갔던 도기는 자신의 어머니를 찌르는 모습을 흉내내며 웃는 그의 모습에 크게 분노해 달려들다가 경찰의 테이저건으로 제압당한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무지개운수 대표 ‘장성철(김의성)’은 자신 또한 부모님이 살해 당한 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모범택시로 범죄자를 처단하는 일을 함께 하게 된 김도기와 장 대표. /모범택시

이후 장 대표는 한강에서 몸을 던지려던 도기를 설득해 자신과 함께 피해자들 대신 범죄자들에게 복수하는 ‘모범택시’ 사업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이 세운 범죄 피해자 후원단체 ‘파랑새재단’을 통해 ‘안고은(표예진)’ ‘최경구(장혁진)’ ‘박진언(배유람)’ 등 여러 범죄 피해자 또한 택시운수업을 가장한 복수대행서비스 ‘모범택시’를 함께 몰게 된다.

◇사적 복수,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드라마에선 무지개 운수 직원들이 ‘사훈’으로 여기고 있는 이 문구를 여러 차례 보여준다. 억울한 이들에게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 드립니다’란 문구가 적힌 명함을 돌리는 이들이지만, 절대 복수를 강요하진 않는다. 철저히 문방구 앞 오락기로 복수 여부를 선택하게 하고, 피해자를 대리해 범죄를 단죄하는 정의의 사도 역할만 자처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극 중 무지개운수 직원들은 피해자에게 연락이 오면 일단 그를 김도기가 모는 모범택시에 태운다. 이후 피해자는 김도기가 녹음하는 동안 택시 안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문방구 앞 오락기를 통해 복수를 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오락기는 복수를 시행하는 동안 택시 미터기가 계속 켜져 있고, 추후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안내해주는데 참고로 이 안내 목소리를 연기한 사람은 '배우 이영애'다. /모범택시

그러나 이 같은 원칙은 ‘백성미(차지연) 사장’과 ‘사설 감옥’의 결함을 통해 서서히 무너진다. 극 중 장 대표는 범죄 이력이 있는 대부업계의 큰손 백 사장과 손을 잡고 자신들이 잡아온 범죄자를 가두는 사설 감옥을 만든다. ‘범죄자에게 범죄자를 감시하게 한다’는 개념부터가 자신이 정한 사훈과는 어긋난 것이지만 자신이 이 죄수들을 철저히 관리할 수 있다며 자만한다. 그러나 극이 전개될수록 백 사장은 장 대표가 맡긴 수감자들을 자신의 장사에 악용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무지개 운수 직원들은 백 사장의 범죄만 도왔다는 자책감에 괴로워 한다.

극이 전개 될수록 백 사장과 대립하며 위기에 빠지는 김 도기와 장 대표. /모범택시

‘사설 감옥’의 인권 유린적인 행태도 이들이 하는 사적 복수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장 대표는 잡아온 범죄자들을 교화시키겠다며 고개도 들기 어려운 좁고 축축한 공간에 가두고, 밥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남의 자식을 죽인 살인마에게는 “네 자식이 살인마 부모를 둔 걸 세상에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법의 단죄도 비웃던 살인마가 그런 그의 협박에 벌벌 떨며 용서를 비는 모습은 통쾌하긴 하지만 이런 ‘눈눈이이’ 식의 단죄는 엄연히 불법이다.

◇드라마의 한계, 현실의 한계

극 중 회사 내에서 세그웨이와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직원에게 갑질을 일삼는 박양진 유데이터 대표. 과거 비슷한 혐의로 논란이 되었던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과 이름, 외모, 전동기구를 타고 사내를 자주 활보했다는 목격담까지 꼭 닮은 캐릭터다. 어어부 프로젝트, 방백 등으로 알려진 가수 백현진이 배역을 맡아 비슷한 외모 연출은 물론 '진짜 생활 속 악덕 사업주 같은' 연기로 싱크로율을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모범택시

드라마는 특히 실제 사례가 연상되는 범죄자들의 처단 장면을 수차례 보여준다. 사건 취재를 다루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 ‘박준우’ PD가 연출을 맡은 드라마라서 그런지 일부 에피소드는 대놓고 현실 사건을 그대로 오마쥬하기도 한다.

일단 첫 화부터 등장한 ‘미성년자 성폭행범 조도철’과 ‘젓갈 공장 노예 사건’ 에피소드는 각각 ‘조두순 사건’과 ‘신안 염전노예 사건’을, ‘유데이터 직원 폭행 사건’ 에피소드는 ‘양진호 웹하드 회장 갑질 사건’, ‘오철영 연쇄살인 사건’ 에피소드는 ‘연쇄살인마 이춘재’를 떠올리게 한다. 이밖에도 보이스피싱, 학교폭력 등 현실에서 피해자들의 피해가 쉽게 회복되지 않아 큰 공분을 불러왔던 여러 범죄들이 드라마에 등장해 무지개 운수 직원에게 단죄 당한다. 이를 반복해서 보면 자연히 시청자들 입장에선 무지개운수 직원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젓갈공장 노예사건을 돈 받고 무마시켜준 비리 경찰의 순찰차를 화려한 운전 실력과 특수장비로 전복시켜버리는 김도기. 드라마 상에서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미션을 완수하는 멋있는 장면이지만 현실에서 저런 장비를 갖고 다녔다간 법의 심판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보배드림 등 커뮤니티 수사대가 출동해 목격담을 올리고 경찰에 신고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모범택시

여기에 이 드라마에서 경찰과 검찰은 비리를 일삼거나, 윗선에 휘둘리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그나마 극 초반 다른 검사와 달리 열정적으로 수사하고, 정의감에 불타며 무지개운수의 위법 행태를 막으려던 강하나(이솜) 검사조차 극 후반부에는 이들의 가장 큰 조력자가 돼버린다. 드라마 속 무지개운수 직원들을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만일 무지개운수 직원들이 잡아온 범죄자 중 무고한 이가 섞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드라마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점에 대한 의심이나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현 정부와 수사기관 고위 관계자들에게 ‘내로남불'이란 비판이 이어지고, 부패를 척결할 ‘정의의 영웅’에 대한 기대가 커진 요즘 이 드라마속 무지개운수 직원들의 행동이 통쾌하게 느껴질 순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실은 드라마와 달리 김도기처럼 잘 생기고, 매사 의롭고, 범죄자를 솔선수범해 때려잡는 히어로가 항상 존재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Stream it. 영화 ‘택시’가 떠오르는 독특한 액션히어로물. 각 캐릭터들의 사연이 고루 어우러져 에피소드마다 흡입력이 강함. 현실 고구마 사건들을 사이다처럼 통쾌하게 단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안성맞춤.

Skip it. 군데군데 결코 현실적이지 않은 극 전개와 진짜 현실이 되면 큰일 날 것 같은 무리한 설정이 튀어나옴. 뭘 해도 주인공 무리는 ‘절대 선'이란 설정 때문에 ‘권선징악’ 결말이 뻔히 보이는 구조가 식상할 수 있음. 이게 싫다면 플레이 버튼에서 손 뗄 것.

개요 드라마 l 한국 l 2021 l 16부작

등급 19세 이상 관람가

특징 현실 속 사건들과 비교하면서 보면 더욱 재미있는 독특한 ‘택시’ 히어로물.

평점 ⭐IMDb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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